불이법(不二法)과 생활참선
佛法은 不二法으로 이 세상 모든 것을 둘로 나누지 않는 法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것을 둘로 나누지
않는 法이다보니 가르치는 方便上으로는 둘로 나뉘지 않는 이 眞實의 자리, 모든 존재의 근본성품를 일컬
어 ‘一心’, ‘한마음’이라는 이름을 붙여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오직 이 한마음 뿐이라는
겁니다. 이 한마음을 卽心是佛, 卽心卽佛이라고도 부름니다. 이 한마음을 바로 부처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설명을 해도 또 다시 是非 分別 하기를 좋아하고 즐기는 生覺 妄想 煩惱 想念 意識 마음
卽, 알음알이(識), 분별심 분별의식으로 비교 분별 분석하고 따지고 헤아립니다. 마음 속에 어떤 불성
이 있는가 보다, 혹은 한마음이라는 어떤 특별난 마음이 있는가보다 하고 그림을 그려서 헤아리려고 한단
말지이요. 그래서 한마음, 일심, 즉심시불이라고 그렇게도 안 하고 不二法인 佛法을 그냥 ‘이 자리’, ‘이
순간’ , 그저 ‘이것’이라고도 부릅니다. '이것' '이 자리'라고 말하면 '이것' '이 자리'가 어떤 空間인가
하고 또 分別心으로 헤아리고, '지금 이 순간'이라고 말하면 '지금 이 순간'이 어떤 시간인가 하고 分別心
으로 헤아리기 때문에 그저 그냥 에이 몰라 하면서 ‘이것’이라고 말을 하곤 합니다.
불법, 불이법, 둘로 나뉘지 않는 진실한 자리, 즉심시불, 부처, 일심, 한마음, 이 자리, 이 순간, 이것
이라고 부르는 이 이름들은 마치 꿈과 비슷한데요, 꿈 속에서 우리가 여행도 가고, 먹고, 마시고, 놀고,
뛰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성공하고, 실패를 하는 등의 모든 짓을 다 하더라도 結局 꿈 속 그 모든 일
들은 다 똑같은 ‘하나의 꿈’일 뿐이라는 事實 하나입니다. 꿈 속에서 제아무리 수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
났다고 할지라도 그 일들은 全部 한 바탕에서 꾼 하나의 꿈일 뿐이지요. 事實 이 세상, 이 현실세계, 이
삶도 꿈 속에서 꾸는 꿈과 비슷합니다. 온갖 일들이 이 세상에서 實際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온
갖 일들이 全部 다 제각각 다른 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온갖 일들이 그저 한마음, 한바탕
에서 꾸고 있는 단일한 하나의 꿈일 뿐이지요. 이 세상이 虛妄한 幻想 幻影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꿈 속에서는 분명하게 내가 있고 남이 있고, 우리 나라도 있고 다른 나라도 있고, 사람도 있고 짐승도
있지만, 꿈에서 깨어난 입장에서 본다면 事實 꿈 속에서 일어났던 그 모든 것들은 따로 따로 서로 서로
둘로 분리되어 나뉘어지고 분별되는 것이 아닌 꿈 全切가 단지 그저 하나의 꿈일 뿐입니다. 現實, 삶에서
사람들이 온갖 現象으로 現示되어 있는 이 世上을 너와 나로 나누고, 옳고 그름으로 나누고, 니 편 내 편
으로 나누는 등 끊임없이 일음알이(識), 分別心, 分別意識 즉, 是非하고 分別하기를 좋아하고 즐기는 생각
망상 번뇌 상념 의식 마음으로 따지고 比較하고 分析하고 計算하고 있지만 이런 모든 분리하고 分別하는
짓들이 虛妄하고 헛된 알음알이(認識), 分別心, 分別意識 즉, 衆生心이 벌이는 고정된 실체가 없는 幻想
幻影일 뿐, 眞實한 모습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불교에서는 修行, 參禪을 말하는데, 事實 수행이나 참선은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둘로 나누지 않고 분별
하지 않는 生覺이나 마음을 연습하는 것일 뿐이지 특별난 다른 어떤 행위가 아닙니다. 그래서 日常의
生活 自體가 바로 參禪이고 修行입니다. 평상심이 도라고 하죠(平常心是道 : 일생생활하면서 쓰면서
사는 마음이 바로 道, 부처, 깨달음, 근본성품, 참나, 본래의 나, 근원의 나다). 깊은 산 속 조용한 데
홀로 앉아 있는 것만 參禪이라고 한다면 그런 참선은 벌써 모양을 따라 가서 앉고 서는 것을 둘로 나눠
놓는 것이지요. 그런 참선은 不二法, 佛法이 아닙니다.
누가 나한테 욕을 했습니다. 그 욕을 듣는 그 순간이 참선하는 시간입니다. 남이 나한테 한 욕을 듣고는
‘저 못된 놈이 나를 무시하는구나, 그래서 욕을 했구나, 네 나이가 몇인데 나한테 욕을 해? 저놈이 나를
얼마나 우습게 봤기에 저러지?’하는 등의 是非 分別하는 온갖 生覺 망상 번뇌 상념 의식 마음에 더해서
온갖 가지 生覺 망상 번뇌 상념 의식 마음 즉, 알음알이(認識), 分別心, 分別意識들을 일으킨다면 그런
행위는 이미 벌써 이 세상을 둘로 셋으로 쪼갠 分別心 分別意識일 뿐입니다. 너와 나를 分別하고, 나이
가 많고 적음을 分別하고, 그 소리를 욕이라고 分別하고, 하는 등으로 이 세상을 계속 分別하고 나누는
겁니다.
그러나 상대가 내게 욕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본다면, 그 사람이 나를 우습게 봐서 내게 욕을 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냥 어떤 소리라는 에너지 파동 하나가 일어났을 뿐입니다. 그냥 어떤 소리 하나가 일어
났을 뿐인데 그 소리를 생각 망상 번뇌 상념 의식 마음이라는 분별심, 분별의식, 알음알이(식)으로 是非
하고 分別해서 저 사람이 나에게 욕하고 화냈다고 分別을 한 겁니다. 사실 어떤 말도 그 말 자체는 中立
的인 波動하는 소리에너지일 뿐입니다. 다만 내가 그 말을 좋거나 나쁜 것으로 分別하고 解釋하면서부터
問題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세상을 분리하고 分別하는 생각만 하지 않으면 남들이 나에게
욕하는 그 순간 자체가 佛法, 不二法을 공부하는 시간이고, 그 때가 진정 바로 참선을 하는 때입니다.
누가 나한테 욕하는 그 순간, 그것을 욕이라거나, 무시했다거나,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가보다 라거
나 하면서 욕을 하는 그 상황을 是非하고 解釋하고 分別하지 마세요. 그저 그 소리가 이 宇宙虛空 중에서
잠시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수용해서 허용해 주는 겁니다. 그 상황에 是非 걸지 않고 분별하지 않고
그 상황을 그저 내버려 두고 지켜보는 겁니다. 그런 욕을 한 것은 그 사람 사정이니 그 사람이 그런 욕을
하는 것을 허용해주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나도 내 생각이나 내 마음을 통제하지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그 사람을 통제할 수 있습니까. 통제하려는
욕망, 내 뜻대로 해 주기를 바라는 욕망, 좋은 말만 듣고 싶은 욕심 등을 그저 내려놓고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일어나는 그대로 허용해 주고 수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不二法의 실천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分別없는 알아차림이며, 참선이고 명상인 것입니다.
-법상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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