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마음이 뭘까? 마음은 있나 없나? 석가모니 부처께서 설명한 마음의 작용

장백산-1 2017. 6. 4. 15:57

마음이 뭘까? 마음은 있나 없나?  석가모니 부처께서 설명한 마음의 작용


사람들이 두루뭉술하게 사용하는 마음(心)이라는 용어는, 석가모니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條件에 따라서 심(心), 의(意), 식(識) 세가지로 나뉜다. 


물(水)은 조건에 따라 얼음, 물, 수증기로 불린다. 四大作用(물질의 네가지 근본大 작용; 地 ; 견고한 무거운 작용, 水 ;수축 인력 작용, 風; 팽창 척력 작용, 火; 변화 작용)이 緣起(조건에 따라 상호의존) 작용하여 생겨난 것 자체(H2O)를 체(體)라 한다면, 조건에 따라 얼음, 물, 수증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상(相)이라고 한다. 조건에 따라 얼음일 때는 얼음에 맞게, 물일 때는 물에 맞게, 수증기일 때는 수증기에 맞게 사용하면(用) 인간에게 유익하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설법하실 때 對相과의 關係 맺음을 條件으로, 그 조건에 따른 마음의 작용을 상(相)에 따라 그리고 용(用; 사용처)에 따라 다음과 같이 심(心, citta), 의(意, mano), 식(識, viññāṇa)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다.


- 심(心, 찟따citta) : 맨 마음의 작용 자체(體)

- 의(意, 마노mano) : 정신감각의 작용; 의근(意根, 마노 인드리야)은 인간의 경우 腦를 기반으로 한 정신감각 기능(기   관); '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五根)은 물질을 감각하는 기관(기능)

- 식(識, 윈냐나viññāṇa) : 앎의 작용; 대상에 대해 생겨난 앎, 認識, 알음알이(識, 식온識蘊; 앎의 집적, 쌓임, 무더기)


마노(mano, 意, 六感) 작용은 인간의 경우 뇌를 기반으로 한 정신감각 작용


‘오감五感, 다섯 가지 물질감각' 작용은 생명체에 따라 있거나 없기도 하지만, ‘육감(六感, 意, mano), 정신감각' 작용이 없는 생명체는 없다


마노(mano, 意, 六感) 작용, 정신감각 작용은 외부 대상이 없어도 인식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꽃이 없어도 꽃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몇 년 전에 일어난 일을 돌연 회상하고, 지금 일어난 것처럼 느낌이나 감정을 일으킬 수도 있다. 작년에 죽은 친구와 함께 10년 전 여행 갔을 때를 회상하고 미소 지을 수도 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육감六感, 여섯 번째 감각, 정신감각’ 작용인 마노(mano, 意) 작용이다.


지금까지의 서양과학 지식으로는 오감五感은 있지만 육감六感은 없다. 최근에는 '제육감(第六感, six sense)'이라는 용어도 쓰지만, 이는 영화 ‘six sense’(죽은 사람의 영혼을 본다는 등)처럼 일반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 감각 또는 초월적 인식’에 대해서 사용하는 용어다. 


2,500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인간에게는 육근(六根; 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 의근, 여섯 가지 감각 기능)이 있다'고 가르치셨다. 물질감각인 다섯 가지 감각과 정신감각을 합하여 인간의 감각은 여섯 가지이며, 이 ’정신감각, 여섯 번째 감각(육감六感)‘을 부처님께서는 고대 인도어로 마노(mano)라고 지칭하셨다. 고대 중국인들은 마노(mano)‘를 한자漢字로 '의(意)'라고 번역했다. 


이 여섯 번째 감각(意根, 육감六感) 작용은 결코 (있지도 않은 혼을 보는 등의) ’초월적인 감각 작용‘이 아니다. 意根은 모든 생명체에게 있는 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감각 작용이다. 오감五感 작용은 생명체에 따라 있거나 없기도 하지만 ’육감六感, 마노(mano, 意)‘ 작용이 없는 생명체는 없다. 


마노(mano, 意, 六感) 작용은 개, 고양이, 지렁이, 미생물, 아메바, 바이러스 등 모든 생명체에게 있는 기본적인 감각 작용이다. 뇌세포가 없는 지렁이나 아메바나 바이러스도 주변 환경을 認識하고 생명현상을 지속하기에 적합한 환경인지를 判斷 分別하는 작용을 한다. 뇌세포가 없는 지렁이나 아메바나 바이러스에게도 보거나 듣는 작용은 없을지 모르지만 판단 분별하는 작용인 마노(mano, 意, 六感)의 認識 작용은 있다. 


눈은 빛의 감각만을 인식하고, 귀는 소리의 감각만을 인식한다. 그러나 눈으로 들어 온 빛을 '아름다운 꽃'으로 판단 분별하는 인식 작용은 '의(意; mano)'의 인식 작용이다. 귀로 들은 소리를 '좋아하는 가수의 아름다운 노래'로 판단 분별하는 인식 작용은 '의(意; mano)'의 인식 작용이다. 인간의 경우, ‘오감각의 인식 작용, 전오식(前五識) 작용’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대량의 인식 작용이 ‘의(意; mano)의 인식(識) 작용, 즉 의식(意識) 작용’에서 일어난다.



'인간의 감각 기능(기관)과 인식 작용의 특징은 '오감각의 둔화'와 '마노(mano, 意) 작용의 극대화'


생명체는 종류에 따라서 감각 기능(기관)과 인식 방식은 제각기 다르지만 모든 생명체에는 인식 작용('수상행식' 작용; 마음)이 있다는 점에서는 한 가지다. 지렁이는 눈이 없고 피부로 인식한다. 인간에게도 개에게도 코가 있으나 인간이 코로서 알 수 있는 정보는 개에 비해 매우 적다. 인간은 보통 수 회 이상 연속해서 같은 냄새를 맡으면 그 냄새를 알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인간의 오감각 기관(안이비설신)의 감각은 같은 감각이 계속되면 무뎌진다. 쾌락이든 고통이든 인간의 오감각은 강도가 더 세지거나 다른 종류로 바뀌지 않는 한 둔화된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감각 기능인 ‘의근(意根, 마노 인드리야), 뇌를 기반으로 한 정신감각 기능‘의 작용인 生覺 작용에서는 쾌락이든 고통이든 같은 감각이 계속 재현되거나 오히려 증폭되기도 한다.


모든 생명체에는 인식 작용이 있다. 그러나 인식의 범위나 인식의 質은 생명체에 따라서 매우 다양하다. 인간은 오감각 기능(기관)을 통한 인식 범위가 다른 동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은 동물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다, 위대한 생명체다’라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서) 정말 생각보다 꽤 좁은 오감각의 세계에 살고 있다. 이러한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記憶과 生覺’을 認識의 대상으로 하는 (뇌를 기반으로 한) 정신감각 기능인 의근(意根)과 의근(意根; 정신감각 기능)의 작용(특히 생각 작용)을 극도로 강화한 것이다.


요컨대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좁은 오감각 기능(기관)의 인식 범위와 신체 능력의 단점을 ’뇌를 기반으로 한 정신감각 기능인 의근(意根)과 그 능력(특히 생각 작용의 능력)을 극도로 강화'하여 보완하면서 因果 緣起的으로 進化한 생명체다. 인간에게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지나친 妄想(쓸데없는 잡스런 생각) 작용은 그러한 인과 연기적 진화의 결과(부작용)인 셈이다.


인간은 오감각 기능(기관)을 통해서 인식한 다섯 가지 감각에 대해서 의근(意根)의 인식(識) 작용인 의식(意識) 작용 속에서 길게, 길게 ‘생각, 사고(思考)’를 수 없이 반복해서 회전시킨다. 그렇게 생각(사고)을 수 없이 반복하고 회전시켜서 방대한 知識과 槪念(또는 觀念)을 만든다. 그렇게 만든 방대한 지식 중에 많은 지식이,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는 오만한 인간의 '인간(人) 중심적이고 자기(我) 중심적인' (진정한 행복과는 무관한) 쓰레기 같은 知識들이다. 인간의 知識이나 극도로 강화된 思考(생각) 작용이 좋게 쓰이는 측면도 있지만 좋지 않게, 심지어는 인간 자신에게 조차도 해롭게 쓰이는 측면도 매우 크다.


인간은 쓸데없는 생각(망상)을 지나치게 많이 하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인간은 쓸데없는 생각(망상)으로 쓸데없는 知識을 지나치게 많이 만든다. 그리고 또한 그것(쓸데없는 생각과 지식)에 執着한다. 그런 생각과 지식에 대한 渴愛와 執着이 줄어들수록 인간의 행복지수는 늘어난다. 知識이 더 많으면 더 똑똑해(?) 지지만, 더 행복해 지지는 않는다. 知識이 많다고 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식은 없어도 智慧로운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이상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지식차원에서 설명하신 마음의 작용에 대한 설법을 오늘날의 지식과 용어를 사용하여 옮긴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對相과의 關係 맺음을 條件으로, 그 조건에 따른 마음의 작용을 심(心, citta), 의(意, mano), 식(識, viññāṇa)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사람들이 두루뭉실하게 사용하는 마음의 작용에 대해 명확하고 상세하게 설명하셨다.


# "마음을 알게 되면 부처를 알게 된다. 시작과 끝이 자기로부터 비롯되니 이 세상 모든 것이 마음에서 시작하여 마음에서 끝난다. 팔만대장경 전부를 글자 하나로 표현하면 마음 (심,心) 하나에 담을 수 있다."  - 성철스님-


마음이 뭘까? 마음은 있나 없나?  석가모니 부처께서 설명한 마음의 작용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 역사에는 수 많은 賢者(현명한 자, 지혜로운 자)들이 있다. 그 중에서 고타마 싯타르타붓다(석가모니 부처님)는 지혜( 智慧, correct wisdome)와 자비(慈悲, correct love)를 완성하신 분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완성하고 가르친 지혜(빤냐 Panna ; 般若 반야는 빤냐의 한문 음사)는 一般的인 지혜가 아니라, 存在의 實相(실제의 진실한 모습 ; 연기의 실상)과 眞理(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法 ; 연기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올바르게 아는 지혜이자,  동시에 '사람들이 괴로움의 굴레에 어떻게 빠져드는지, 또한 어떻게 하면 괴로움으로부터 근원적으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진리(진실한 이치)를 바르게 아는 바른 지혜다. 달리 말하면 ‘세상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혜’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완성하고 가르친 慈悲(Metta)는 사랑이라는 표현에 익숙한 요즘 시대의 표현으로 '나와 너라는 분리 분별을 超越한 큰 사랑' 또는 '나(我, 에고, 자아)를 超越하여 이 세상 모든 존재, 우주삼라만상만물을 분리 분별 집착 없이 있는 그대로 바르게 사랑하는 바른 사랑' 또는 '아상(我相; 너에 대해 '나我'라는 것이 있다고 여기는 상대적 분별심) 없는 지혜로운 바른 사랑' 정도로 표현하면 그 의미가 유사하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실천하면 바른 지혜(반야)와 바른 사랑(자비 실천)이 함께 계발(열리고 발전 향상)된다. 이러한 바른 지혜(반야)와 바른 사랑(자비)을 완성하면 존재의 근원적 괴로움(고통, 분별,망상,번뇌; 둑카)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유(해탈)와 완전한 행복(열반)의 경지(상태)에 도달한다.


몸과 마음의 '행(行)을 닦음(修)'이라는 뜻을 지닌 수행(修行)이라는 말은 '경작하여 계발(열고 발전 향상)하다'라는 뜻을 지닌,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사용한 古代 印度語(산스크리트어)인 바와나(bhāvanā)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修行이라는 말이 매우 익숙하니 바와나(bhāvanā)를 '자기계발과 수행' 정도로 표현하면 유사하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가르친 八正道 바와나(bhāvanā)의 가르침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無上正等正覺을 증득한 사람(아라한)이 되었다.(십대 제자를 포함한 이른바 천이백 아라한)


당시의 인구 추정치와 역사적 자료를 참고한 학자들의 추정치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활동했던 당시 갠지즈강 중북부 지역에서 사문(재가, 출가를 포함해서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의 수가 약 십만명 정도였다고 하니 그 중에서 약 천명 정도(백명당 한 명 꼴)를 자신과 같은 아라한(석가모니 부처님도 아라한이다. 스승으로서의 능력이 매우 뛰어난 아라한)으로 이끌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八正道 바와나(bhāvanā)를 緣起(조건에 따른 서로간에 상호의존) 방식으로 완성하여 正覺을 증득하는데 걸리는 기간이 개인의 根機, 즉 경험, 소질, 적성, 성향, 성격, 여러 가지 능력(예컨대, 지적능력, 이치를 이해하는 능력,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능력 등), 현재 수행 상태(경험) 등의 개인차에 따라 7년 내지 7일 정도라고 여러 경전에서 말씀하신다.


석가모니 부처님 제자가 되었을 당시에는 바보라 불릴 정도로 일반인에 비해 지적능력이 매우 부족했던 쫄라빤따까(일명 바보 주리반특)도 석가모니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 수년 간 수행하여 正覺을 증득한 사람(아라한)이 되었다. 사리뿟따(사리불, 사리자)는 석가모니 부처님 제자가 된 후 15일 만에 아라한이 되었고, 이미 禪定의 자유자재와 네 단계의 無色界 삼매를 모두 이룬 수행 상태였다고 추정되는 바히야 따루찌리야는 탁발하러 가시는 석가모니 부처님께 가르침을 청하여 듣고 난 후 그 자리에 앉아서 수행하여 불과 몇 시간 만에 아라한이 되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펼쳐 놓으신 八正道 바와나(bhāvanā)(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의 바른 가르침(正法)이 오늘날에도 바르게 전승 전파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正覺으로 가는 올바른 길을 안내하기를... 





moosim park||조회 128|추천 0|2017.06.04. 01:41http://cafe.daum.net/truenature/KKTq/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