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화(對象化)
대상화(對象化)란,
'어떤 대상 사물에 일정한 의미를 부여해서 사물이 인식 대상이 되게 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또한 '자기의 주관 안에 있는 느낌 감정, 생각 이미지 상상, 욕망 욕구 충동 의지 의도, 분별심 분별의식을
객관적인 대상으로 구체화하여 밖에 있는 것으로 다루게 되는 과정'을 말하기도 합니다.
지금 이렇게 '대상화'라는 말을 말로 이해하는 과정이 바로 대상화하는 작업입니다.
대상화란 인간들이 이 세상을 인식해서 아는 방법입니다. 대상화는 인간의 내부적, 외부적으로 펼쳐지는
세상을 분리하고 분별하여 이해하고 세상을 아는 방식입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이런 대상화 방식으로
이 세상을 이해해 왔고, 대상화 작업을 통해 드러난 대상을 실재하는 세상이라고 여겨 왔습니다.
대상화가 이루어지는 구조를 보면 대상과 대상을 인식해서 아는 자와 인식해서 아는 행위가 항상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무엇을 대상화한다는 것은 대상과 대상을 인식해서 아는 자와 인식해서 아는
행위가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하늘을 인식해서 안다, 땅을 인식해서 안다, 무슨 일이 벌어
지는지 인식해서 안다, 세상의 이치를 인식해서 안다, 나를 인식해서 안다, 혹은 깨달음을 인식해서 안다는
것은 인식의 대상들과 함께 대상을 인식해서 아는 자와 인식해서 아는 작용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무엇을 인식해서 안다면 다른 누가 무엇을 인식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항상 내가 인식해서 아는
겁니다. 인간이 무엇을 인식해서 안다는 것은 다른 누가 아닌 바로 내가 인식해서 아는 것입니다.
인간이 무엇을 인식해서 알 때 인간은 인식해서 아는 대상만을 염두에 두지만, 사실 인식해서 아는
대상에는 인식해서 아는 주체인 나와 인식해서 아는 작용이, 즉 인식해서 안다는 의식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대상을 인식해서 아는 것은 다른 누가 대상을 인식해서 아는 것이 아닌 내가 대상을 인식해서 아는
것이요, 인식된 대상은 다른 누가 아닌 내가 인식해서 안 대상입니다. 이처럼 인간이 인식해서 아는 세상은
모두 다른 누가 아닌 내가 인식해서 아는 세상입니다. 인간이 알고 있는 이 세상은 이렇게 펼쳐지는 세상
입니다. 그러니 지금 여기 내가 인식해서 알고 있는 세상, 이해하고 있는 세계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
누구나가 똑같이 인식해서 알고 이해하는 세상이 아니라 나만 혼자 인식해서 알고 이해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이 대상화의 방식이 이 세상을 분리 분별하고 인식해서 아는 데는 쓸만한 방법일 수 있지만, 이 세상
만물의 근원을 깨닫는 공부에는 치명적인 크나큰 장애물입니다. 만물의 근원, 본성, 깨달음은 이런 대상화의
방식으로는 알아질 수 있는 어떤 대상이 절대로 아닙니다. 만물의 근원, 본성, 깨달음은 모든 대상의 근원
이고, 어떤 대상을 인식해서 알려고 노력하는 나라는 존재의 근원, 본성, 깨달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든 대상화 작업이 바로 대상의 근원, 본성, 깨달음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 근원, 본성, 깨달음은
대상화 작업을 통해 드러난 '내가 인식해서 아는 어떤 대상'이 결코 될 수가 없는 겁니다.
마음공부를 할 때 자기도 모르게 이런 모순된 대상화하는 방식으로 마음공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깨달음이 무엇일까? 라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은 깨달음을 대상화하여 인식해서 알려고 하는 의도입니다.
화두를 대상으로 삼아 화두의 의미를 알려고 하는 생각은 아무 의미도 없는 화두라는 허상을 쫓는 격입
니다. 나는 누구일까? 라는 생각에 나라는 존재를 대상화하여 인식해서 알려고 한다면 그 생각이나 의도는
성격, 능력, 나이, 직업, 성별, 지위, 학력, 명예, 재산, 권력, 외모, 사회적 영향력, 취미, 취향 등 대상화되어
드러난 나의 껍데기, 허상을 인식해서 알려고 하는 것이지 대상화 되어 드러난 그것들이 진정한 나, 본래의
나, 본성, 존재의 근원, 깨달음은 아닙니다. 마음이 무엇일까?하고 마음을 대상화하여 인식해서 깨달으려
고 할 때 마음이라는 대상을 그리거나, 마음을 언어나 문자로 정리하고 있다면 그런 노력은 단지 마음의
그림자를 쥐고 있는 것이어서 저절로 깨어 변함없는 본래 마음, 본성, 깨달음, 존재의 근원을 깨닫는데
방해만 됩니다.
본래마음, 본성, 깨달음, 존재의 근원은 모든 대상의 근원이고, 대상을 인식해서 아는 자의 근원이고, 모든
대상화하는 작업의 근원입니다. 그러니 본래마음, 본성, 깨달음, 모든 존재의 근원은 무엇을 인식해서 알려
는 데서 알 수 없고, 무언가를 인식해서 아는 마음도 아니며, 무언가를 아는 과정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다만, 이 세상 모든 것이 언제나 일어나고 있고, 대상화의 성공와 대상화의 실패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대상화해서 인식해서 얻어진 앎과 모름을 떠난, 그러면서도 그 모든 것의 본바탕이 바로 마음입니다.
본성, 본마음, 깨달음, 존재의 근원은 대상화하여 인식해서 알려고 하는 모든 생각 분별 망상 의도 시도가
모두 쉬어지게 되었을 때 모든 분별의식 분별심의 그림자가 사라지면서 저절로 드러납니다. 사람들은 여태
까지 살아오면서 이 세상을 대상화하여 인식해서 아는 방법을 인간의 뇌에 프로그램화해 왔기 때문에 대상
에 의미부여를 하는 대상화 작업으로 대상을 인식해서 알려고 이 세상을 분리 분별해서 알려는 방식을 쉽
사리 포기하지 못합니다. 어떤 대상이 드러나면 자동적으로 그것을 대상화하여 인식해서 알려고 합니다.
무언가 색다른 것, 지금까지 생각으로 비교 분별 판단 해석해본 일이 없는 것이 제시되면 그것에 생각이
사로잡혀 생각으로 이리저리 헤아려서 알려고 하고 그것이 안되면 답답해하고 불안해집니다.
깨달음에 대해서도 깨달음을 어떤 물건으로 대상화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그러나 매번 사람들은 대상화
하는 방식으로 깨달음에 접근하다가 실패를 맛보곤 합니다. 법문을 들을 때도 분리 분별하는 생각으로
이해하려고 하고, 화두를 붙잡고도 생각으로 따지고 분별하고 분석하고 해석하려고 합니다. 어떤 색다른
느낌을 경험하면 대상화된 이 느낌을 꼭쥐고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대상화, 즉 분별로
드러난 분별하는 생각 마음의 그림자이지 분별하는 생각 마음의 본바탕, 나와 대상의 본성은 아닙니다.
깨달음을 언어나 문자로 표현하고 있다면 그것은 죽은 깨달음입니다. 마음으로 마음을 지키고 있다면
어떤 대상화된 마음의 그림자이지 진정한 마음이 아닙니다. 화두를 들고 있다면 대상화된 화두이지
생생하게 살아있는 화두가 아닙니다. 대상화된 것은 누구나 인식해서 알 수 있는 것이고, 쥐거나 내려
놓을 수 있는 것이고, 조건 따라 변하는 것이고, 감각이든 생각이든 감정이든 의지든 이미지이든 아니면
이런 것들의 조합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나 깨달음, 본성, 본래마음, 존재의 근원은 여기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문득 깨달음을 대상화하려는 의도가 쉬어졌을 때 깨달음, 본성, 본래마음, 존재의 근원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 눈을 뜨더라도 살아오면서 익혀온 대상화의 습관에서 잘 벗어나지 못합니다. 시시때때로
예전의 습관이 일어나 본성을 어떤 앎의 대상으로, 언어나 문자로 정리된 것으로, 어떤 느낌이나 감정의
상태로, 특별한 이해로 묶어두고 붙잡고 있으려고 합니다.
마음공부의 성패는 마음, 본성, 깨달음, 존재의 근원을 대상화하여 인식해서 알려고 하는 분별심이 완전히
항복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에 있을 것입니다. 본 마음은 결코 내가 알 수 있는 어떤 대상이 아니라는
자각이 분명해질 때, 마음, 본성, 깨달음, 존재의 근원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어서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대상화라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편리하고 필요하지만, 결코 완전하지 않은 방식이고, 세상을
편협하게 한쪽으로만 바라보게 하는 방식이며, 믿을만한 방식이 못된다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 릴라님-
가져온 곳 : 카페 > 무진장 - 행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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