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 종교·문화·학술·시민사회계 원로 40여 명은 지난 2017년 5월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명진 스님의 승적을 박탈한 조계종 총무원의 징계 조치를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를 계기로 명진 스님이 지나온 삶을 조명하는 5편의 글을 싣는다. [편집자말] |
- ▲ 명진스님(전 봉은사 주지) ⓒ 유병문
"주차장에서 안내하시는 분이 깍듯하게 인사 하더라고요. 이젠 '거사'(남자 불교 신도)인데 그러지 마시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조계종 스님이 아니라 국민 스님이 되셨다'고 말하더라고요. 제 승복을 벗긴(승적박탈 징계) 자승 총무원장이 고마웠습니다. 하-하."
지난 23일 아침 북한산 진관사 주차장에서 만난 명진 스님(전 봉은사 주지)은 여전히 유쾌-통쾌했다. 진관 스님 1주기 추모일이었다. 명진 스님은 86년 종단개혁 승려대회, 10.27 법란 규탄 대회 때 등 진관 스님으로부터 적지 않은 신세를 졌단다. 비구니계의 존경받는 스님이었기에 돌아가셨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인사드리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내 맘에 드는 옷 입을 자유
진관사로 올라갈 때 명진 스님을 알아보는 신도들이 많았다. 그에게 '조계종 총무원으로부터 승적박탈 징계를 받아 승복을 입고 다니는 것을 뭐라 하는 사람은 없냐'고 물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어떤 의복도 입을 자유가 있죠. 얼마 전엔 제 승복을 벗겼고 4년 전에는 적광 스님(운정 스님)을 무자비하게 패서 정신병원에 입원할 지경으로 만든 조계종 호법부도 제가 승복 입고 다니는 걸 막을 순 없습니다. 하-하-."
추모 행사가 진행되기 전에 차 한잔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적광 스님 이야기가 이어졌다. <오마이뉴스>와 <불교닷컴>, <불교포커스>, <브레이크뉴스>가 공동으로 지난 17일 한 정신병원에서 적광 스님을 만나 인터뷰한 기사( 납치 폭행당한 스님, 지금은 정신병동에)가 나간 뒤 후원 모임이 결성됐다. 박재동 화백과 우희종 서울대 교수, 허태곤 재가연대 공동대표가 후원모임의 공동대표로 나섰다. 명진 스님도 이 모임을 돕고 있다.
사실 명진 스님이 승적 박탈의 징계를 받은 것도 이 모임과 관련이 있다. 적광 스님을 폭행한 조계종 호법부의 소환 통보에 응하지 않았고 승적 박탈 징계가 확정됐다. 명진 스님은 "사람을 막무가내로 두드려 패는 호법부에 갈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자비와 생명, 사랑, 평등 등 좋은 말을 다 갖다 붙여서 치장하는 조계종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수행한다는 집단이 자기 허물을 공개 발표(적광 스님이 자승 총무원장의 비리 혐의를 폭로하는 기자회견)하는 것을 막으려고 스님을 백주대낮에 납치 폭행한 것은 조폭과 다를 바 없죠. 조계종이 아니라 '조폭종'입니다.
당시 폭행한 사람은 법원에서 1000만원 벌금을 받았는데, 조계종은 징계를 안했습니다. 오히려 그 다음해 중앙종회(조계종의 국회격) 선거에서 서울교구에 출마해 최다 득표를 했죠. 자승 총무원장은 그를 조계종 25개 본사 중의 하나인 선암사 주지로 임명했습니다. 대신 폭행 피해자인 적광 스님을 제적시켰고, 지금은 정신병원에 있습니다. 이에 책임을 묻지 않으면 조계종의 앞날이 없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으면서 직무유기를 한 경찰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박근혜 정권의 비호가 없었다면 이런 일이 어떻게 덮였을까요?"
당초 명진 스님의 봉은사 주지 시절 이야기를 들으려 했으나, 최근 현안부터 시작했다. 진관 스님 추모 행사가 끝난 뒤, 명진 스님과 다시 마주 앉았다. 다음은 3편에 이어지는 글이다.
[봉은사 만남 1] 천일기도와 재정 공개
- ▲ 봉은사에서 천일기도 중에 잠시 쉬는 명진스님. ⓒ 명진스님
'절(寺)'이란 이름은 절(拜)을 많이 하는 공간이기에 붙여졌다는 말도 있다.
"처음에는 신도들 옆을 지나가도 찬바람이 불었습니다. 강남 부자 절에 좌파-깡패 스님이 왔다고 소문이 돌았습니다. 제가 150여 명의 신도들 앞에서 산문 밖을 나가지 않고 천일기도를 한다고 했을 때에도 싸늘했습니다. 신도회에서는 '100일'을 걸고 밥 사주기 내기도 했답니다. 대부분이 중간에 포기할 거라고 걸었답니다."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새벽 4시, 오전 10시, 저녁 6시 등 매번 3차례에 걸쳐 1000일 동안 매일 3시간씩 1000배를 올렸다. 처음 한 달간은 발이 퉁퉁 부어올랐다. 주지 임기 4년 중 3년간 산문을 나오지 않고 절을 한 횟수를 보면 무려 일백만 번이다. 순수하게 절을 하는데 걸린 시간만도 '3000'시간이다. '125'일 동안 쉬지 않고 절을 한 셈이다.
100일, 200일, 300일이 지나도 분위기는 나아지지 않았단다. 500일 기념 법회 때 법당 안에 1000여 명의 신도들이 모였다. 그는 법문하기 전에 법상에서 내려와서 이렇게 말했단다.
"제가 혼자 천일기도를 했으면 열흘도 안돼서 그만뒀을 것인데, 그동안 신도들이 저를 지켜주고 기도를 해 주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신도님들의 절을 받을 게 아니라 제가 신도님들에게 3배를 하겠습니다."
3배를 마친 뒤 고개를 들어보니 울음바다였단다. 과거 부자 절을 빼앗기 위한 잦은 폭력 사태 등을 경험하면서 스님에 대한 신뢰가 없었던 봉은사 신도들의 차가운 마음이 녹아내린 것이다. 주지를 맡으면서 실제 수행자다운 삶을 신도들에게 보여주겠다는 그의 결심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
여기서 그친 게 아니다. 그는 "수행자는 생로병사와 삶의 고통에 대한 철학적 물음이 끊어지지 않도록 정진하고 부처님 말씀을 신도들에게 전해줄 의무가 있다"면서 일요법회를 활성화했다. 신도들이 스님들에게 주는 건 '공짜 밥'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문으로 되어 있는 딱딱한 불교 교리를 신도들이 먹기 좋은 콘텐츠로 만드는 것도 스님의 역할이다. 불교의 핵심을 재미있고 알아듣게 만들어 전달해야 했다.
스님은 사춘기
"20년 동안 주말 등산을 한 번도 빠지지 않은 남자 신도가 부인의 이야기를 듣고 법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다음부터 일요법회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왔습니다. 그 신도가 '등산을 못가서 배가 나왔다'면서 책임을 지라고 하더군요. 하-하."
처음 봉은사 주지로 왔을 때 150명이던 일요법회 참가자들은 1500~2000명으로 늘었다. 그가 이명박 정권과 맞서 싸울 때에는 많게는 4000여 명이 모였다. 그는 1년 반 동안 일요법회 때 한 수행 법문을 모아 <스님은 사춘기>라는 책을 냈고 5만부 이상 팔렸다.
속세도 그렇지만 사찰 부패의 근원도 돈이다. 몇 해 전 사회를 경악시킨 백양사 도박사건과 스님들의 해외 원정도박단 사건이 일어난 것도 불투명한 재정 운영에서 비롯됐다.
그는 우리나라 대형 사찰로서는 처음으로 재정을 공개했다. 수입 지출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매달 신도들에게 보고했다. 신도회 모임 때에는 재정 내용을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공개했다.
사찰 불전함에 넣는 돈은 주지 스님들의 비자금이자 쌈짓돈으로 쓰이기도 했다. 종무소에 입금한 등값 등은 입출 기록이 남는데, 이 돈은 기록이 남지 않는 현찰이다. 그는 불전함 관리도 신도들에게 넘겼다.
그가 주지로 들어갈 때 봉은사 연간 수입은 70억 원이었다. 4년 뒤 혼자 걸망 지고 나올 때에는 130억 원이었다.
그는 "봉은사 주지를 맡으면서 부처님 말씀과 수행자들의 올바른 삶이 살아 있는 최고의 모델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봉은사 만남 2] "스님, 저 정말 박근혜입니다"
- ▲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이 비질을 하는 모습. ⓒ 명진스님
천일기도를 하면서 사찰 출입을 금했지만, 많은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
명진 스님이 봉은사의 다래헌에 앉아 있는데 '발신자 표시제한'이라는 문자가 뜨면서 핸드폰이 울렸단다.
"봉은사 명진 주지 스님이시죠?"
- 예.
"저는 한나라당 후보 박근혜입니다."
- 왜 박근혜가 전화를 해? 시끄럽다. 근데, 목소리는 진짜 똑같네. 너, 누구냐?
"스님, 저 정말 박근혜입니다."
진짜 박근혜씨였다. 나중에는 자기를 알아주지 않아서 울먹하더란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던 2007년 8월 15일 모친 육영수씨가 사망한 날에 현충원에 갔다가 나오면서 전화를 했단다.
"스님이 저를 좋게 보아주신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저는 불자는 아닌데요, 어머님은 독실한 불자여서, 살아계셨다면 스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렸을 것 같습니다. 어머님을 대신해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스님 유머가 너무 세셔서...
명진 스님이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사기 전과 14범인 이명박 후보를 비판하면서 박근혜씨를 상대적으로 호평한 것을 알고 전화를 한 것이다. 박근혜 후보가 경선에서 패배한 뒤에도 인연은 이어졌다. 2009년 명진 스님이 이명박 대통령 집권 초기에서부터 날선 비판을 할 때였다. 당시 한나라당 최고 실세였던 박근혜씨가 봉은사에 왔단다.
"한 시간 동안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통 말이 없더라고요. 제가 말을 하면 웃으면서 호응했죠. 그래서 저는 '참, 겸손하고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했죠. 하-하-하-. 말을 안 하니 도통 사람을 알 수가 있어야지요."
그때 명진 스님이 서슬 퍼런 권력을 휘둘렀던 이명박씨를 비판했더니, 박근혜씨가 너무 큰 소리로 웃어댔단다.
- 너무 소리 내서 웃지 마세요.
"그렇지요? 여자가 절에서 소리 내어 웃으면 실례지요?"
- 그게 아니고, 푸른 기와집에 사는 놈이 그 웃음소리 들으면 기분이 좋겠습니까?
박근혜씨는 이 말이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고 한참을 생각하더란다. 그 뒤 얼굴이 벌겋게 되면서 이렇게 한 마디 했단다.
"스님, 유머가 너무 세셔서 제가 힘듭니다."
[봉은사 만남 3] "이명박을 신도들에게 인사시켜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