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 스님의 전심법요 38.
조사선의 근본사상은 마음 마음이 근본성품과 다르지 않은 이가 조사
원문 : 석가모니부처로부터 조사(祖師)에 이르기까지 다른 일을 또한 논하지 않았다. 오직 일심(一心)만을 논했으며, 또한 일승(一乘)만을 말했다. 그래서 ‘시방(十方, 우주)을 두루 살펴 구해도 다시 다른 승(乘)이 없다. 대중은 곁가지가 아니라 잘 익은 열매와 같다’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 뜻은 믿기 어렵다. 달마가 이 땅에 와서 양나라와 위나라에 머물 때, 오직 혜가대사 한 사람만이 면밀히 자심(自心)을 믿고 언하에 문득 마음이 부처임, 즉심시불(卽心是佛)을 깨달았다. 신체와 마음을 모두 잊는 것을 대도(大)라고 한다. 대도(大道)는 본래 평등하다. 왜냐하면 중생이 (부처와 더불어)동일한 진성(眞性, 法身, 근본성품 )임을 깊이 믿어야 한다. 마음과 근본 성품은 다르지 않다. 근본성품이 곧 마음이다. 마음이 근본성품과 다르지 않은 이를 조사(祖師)라고 한다. 그러므로 ‘마음의 불성(佛性, 眞性, 근본성품)을 체득했을 때, 이를 불가사의하 하다’고 설하는 것이다.
‘조(祖)’는 만물의 시초이자 근본
조사선(祖師禪)은 노자 장자 사상이 가미된 선(禪)
본래성불(本來佛) 묘사한 법화경은 조사선 설명해 줄 최적 경전
해설 : 원문의 ‘부처로부터 조사에 이르기까지 또한 일승(一乘)만을 말했다’에서 일승(一乘)은 ‘법화경(法華經)’에서 주로 말하지만, ‘화엄경’이나 ‘유마경’ 등에서도 말한다. 일승(一乘)이란 모든 중생이 부처의 세계인 깨달음에 들도록 인도하는 수레라는 뜻이다. 즉 모든 중생이 차별 없이 깨닫는다는 말이다. ‘유마경’에서는 성문 · 연각 수행이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지만, ‘법화경’은 대승적인 차원에서 성문과 연각도 성불할 수 있다며 포용적이다. 곧 ‘법화경’은 일불승(一佛乘)만을 지향하지만, 중생의 근기에 맞춰 방편을 시설했음을 밝히고 있다. 각각의 방편을 긍정하면서 일승(一乘)의 참 의미를 밝히기 위해 ‘삼승방편(三乘方便 : 성문 연각 보살) 일승진실(一乘眞實)’임을 밝히고 있다. 일승(一乘)을 설명하기 위해 ‘법화경’에서는 방편으로 일곱 가지 비유를 들고 있다. 이 7가지 비유 중에 ‘화택(火宅)’비유가 있다.
큰 부자가 사는 큰 저택에 불이 나자 장자는 불러도 나오지 않는 자식들에게 방편으로 장난감 수레(羊車· 鹿車· 牛車)를 주겠다고 한다. 그 소리를 듣고 자식들이 집 밖으로 나오자, 장자는 자식들에게 세 수레가 아닌 그 보다 더 좋은 백우거(大車)를 주었다. 장자는 부처님이요, 자식들은 어리석은 중생에 비유하며, 방편으로 세 수레(三乘)를 주겠다고 한 것은 성문(양거) ·연각(녹거) ·보살(우거) 승(乘)에 비유를 든 것이다. 그리고 백우거(大車)는 일불승(一佛乘)이다. 곧 ‘법화경’에서는 ‘한 사람도 성불하지 않는 자가 없다[無一不成佛]’고 하였다.
‘능가경’이나 ‘금강경’이 선경(禪經)이라고 하지만, 크게 선사상이 드러나지 않는 반면 조사선을 잘 설명해줄 수 있는 경전은 ‘법화경’이다. ‘유마경’이 선적인 경지를 잘 표현했다면, ‘법화경’은 본각 사상이나 본래성불(本來佛)을 비유로 묘사해 놓았다.
원문에 달마의 제자로 등장한 혜가(慧可, 487~593)는 40세 무렵, 선정 속에서 ‘큰 선지식이 있거늘 여기에만 있느냐?’는 소리를 觀하고 자신의 이름을 ‘신광(神光)’이라 고친 뒤, 달마를 찾아 팔을 잘라 구법 의지를 보인 후 물었다. “스님, 어떻게 하면 이 마음을 편안(便安)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대의 편안하지 않은 마음, 불안(不安)한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가지고 오면 너의 마음을 안심시켜 주리라.” 달마는 이후 ‘혜가’라는 법명을 주었다. 이것이 그 위대한 안심법문(安心法門)이다.
‘마음이 불성과 다르지 않은 이를 조사’라고 했는데, 조사(祖師)의 ‘조(祖)’는 뿌리의식의 표현으로 만물의 시초요, 만물의 근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노자는 이것을 천지의 근원, 만물의 스승이라고 하였다. ‘보림전’에는 조사의 의미에 대해 불심의 근본을 밝혀 조금도 착오가 없는 생활방식이 깨달음과 합치하는 자를 ‘祖’라고 했으며 ‘大道에 통달하지만 大道에 무한하며, 불심에 통하지만 불심에 어떤 경계가 없으니, 범부와 성인 모두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초연한 것을 ‘祖’라고 이름한다’고 하였다.
8∼10세기 후반까지를 조사선시기라고 하는데, 인도 정통적인 교설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 와서 중국의 문화[노장사상]가 가미되어 중국화된 선(禪)으로 탈바꿈된 禪을 조사선(祖師禪)이라고 부른다. 임제선사는 현재의 마음이 언제나 변하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을 祖師라고 호칭한다고 하여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는 무위진인(無位眞人)을 조사라고 하였다. 조사란 할아버지라는 뜻으로 결국 조사선은 인간의 기준점에서 인간이 바로 부처인 인간의 개성을 제일로 삼는다. 우리나라의 조사선 우위 사상은 구산선문 가운데 성주산문 무염의 ‘무설토론’과 사굴산문 범일 국사의 ‘진귀조사설’로 드러나 있다.
정운 스님 saribull@hanmail.net
[1413호 / 2017년 1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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