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세계 - 김상욱의 물리공부] (14)
원자핵의 변화, 우리 모두는 이 연금술에서 탄생했다
김상욱 |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입력 2017.11.09. 21:42
[경향신문] ㆍ분열에서 융합으로
■ 원자는 잘못 지은 이름
뉴턴은 그의 책 <광학>에 이렇게 썼다. ‘태초에 신이 입자(원자)로 물질을 만들었다. 이 입자들은 운동할 수 있으며 딱딱하고 꿰뚫을 수 없는 고체의 본질을 가진다. (…) 그 어떤 일상적인 힘도 신이 최초에 창조한 원자를 쪼갤 수는 없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가 제안하고 에피쿠로스가 발전시킨 ‘원자론’이다.
뉴턴은 신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원래 원자론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철학이다. 세상은 텅 빈 진공과 그 안을 떠도는 원자로 되어 있다. 원자는 영원불멸한다. 세상은 원자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일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며, 거기에 어떤 의미나 목적도 없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이런 생각은 오늘날 물리학자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과 상당히 유사하다.
원자론의 핵심은 원자야말로 영원불멸하는 근본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원자 그 자체는 쪼개어지거나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 a(부정접두어)와 tomos(쪼개다)가 합쳐진 그리스어 ‘atomos’(원자)의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원자는 그 자체로 근본물질이 아니라 내부구조를 가진다. ‘원자’는 잘못된 이름이다. 원자는 우선 원자핵과 전자들로 구성된다. 이 둘은 태양과 그 주위를 도는 행성들의 관계와 비슷하다. 원자핵이 농구공만 하다면, 전자는 모래알보다 작으며 원자의 지름은 대략 서울시 크기 정도가 된다. 서울시 안에 농구공 하나와 모래알이 수십개 있을 뿐이니 원자는 그 자체로 텅 비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리학에서는 모든 것을 운동으로 이해한다.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모든 물체는 그냥 일정한 속도로 직선운동한다. 전자가 원자에 갇혀 있다는 것은 이미 직선운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여기에는 힘이 존재해야만 한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도 지구와 태양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 때문이다. 이쯤에서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된다는 것을 말해야겠다. 양성자는 양(+)의 전하를, 전자는 음(-)의 전하를 띤다. 중성자는 이름 그대로 전하가 없다. 전자를 원자에 묶어두는 힘은 양성자와 전자 사이에 존재하는 전기력이다.
원자 하나에 들어 있는 양성자와 전자의 개수는 같다. 그래서 원자는 전체적으로 중성이다. 원자가 가진 양성자의 개수를 원자번호라고 하는데, 원자의 주민등록번호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원자핵 내부에 양성자가 79개 있는 원자는 모두가 좋아하는 ‘금’ 원자다. 금의 원자번호는 79번이며, 역시 79개의 전자가 존재한다. 전자는 아주 작고 원자의 외곽에 위치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강한 충격이 가해지면 떨어져 나간다. 양성자는 원자의 내부 깊숙이 원자핵 안에 숨어 있기에 떨어지기 힘들다. 양성자 개수로 원자번호, 즉 이름을 정하는 이유다.
■ 방사능은 연금술사
1897년 앙리 베크렐(1903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은 우라늄에서 뭔가 이상한 것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마리 퀴리(1903년 노벨 물리학상, 1911년 노벨 화학상 수상)는 다른 물질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남을 발견하고 여기에 ‘방사능’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방사능은 고에너지의 입자다. 이걸 몸에 맞으면 대단히 위험하다. 실제 마리 퀴리는 방사능 피폭으로 인한 여러 합병증에 시달렸다.
방사능은 원자핵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원자는 영원불멸이라더니, 사실 외곽의 전자는 물론 내부 깊숙이 존재하는 원자핵마저 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원자핵이 변한다는 것은 원자의 주민등록번호가 바뀔 수도 있다는 뜻이니, 방사능이야말로 하나의 물질을 다른 물질로 바꾸는 연금술의 기적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원자핵에서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방사능에는 알파, 베타, 감마 붕괴의 세 종류가 있다. ‘붕괴(decay)’는 원자핵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안정한 상태로 떨어진다는 의미로 쓴 것인데, 친절한 용어는 아니다.
알파붕괴는 양성자 두 개, 중성자 두 개가 한 세트로 원자핵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베타붕괴는 중성자가 양성자와 전자로 바뀌며(전하만 놓고 보면 0에서 동시에 +1과 -1을 만드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양성자만 원자핵에 남고 전자가 원자핵 밖으로 튀어나오는 현상이다. 끝으로 감마붕괴는 에너지가 아주 높은 전자기파가 튀어나오는 것으로, 원자핵의 물질은 변하지 않은 채 에너지만 작아지게 된다.
원자핵을 이루는 양성자들 사이에는 전기력이 작용해 서로 밀어낸다. 그런데 이들은 뭐가 좋아서 그 좁은 공간에 함께 모여 있을까? 밀어내는 전기력을 이기고 이들을 묶어둘 추가적인 힘이 있다는 것이 합리적 추론일 거다. 이 추가적인 힘을 ‘강한 핵력’, 줄여서 ‘강력(强力)’이라고 한다. 강력이 있으면 약력(弱力)도 있을까? 그렇다. 약력은 베타붕괴와 관련된다. 강력은 말 그대로 강하다. 원자핵을 변화시킬 때 막대한 에너지가 드나들 수 있다. 바로 핵에너지다. 전기력을 이겨내고 원자핵을 이루기 위해 양성자 사이의 강력만으로 부족할 수 있다. 그 부족한 힘을 중성자가 보충해준다. 중성자는 전기력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중성자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이처럼 원자핵은 수많은 입자들이 서로 뒤엉켜 있는 복마전이다. 비록 그 크기가 머리카락의 10억분의 1밖에 안되지만 말이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이 복잡계도 항상 불안정해 더 안정한 곳을 찾아 끊임없이 변화해간다. 그릇 안에서 움직이는 공은 결국 그릇의 가장 낮은 위치에 가서 멈춘다. 그곳의 에너지가 가장 낮기 때문이다. 원자핵에도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가 존재한다. 바로 원자번호 26번 ‘철’이 갖는 원자핵 구조다. 거칠게 말해서 철보다 원자핵이 큰 원자들은 물질을 내버리고 철이 되려 하고, 철보다 작은 원자들은 합쳐서 철이 되려 한다고 보면 된다. 원자도 세월이 가면 철이 드는 걸까. 이처럼 모든 원자핵은 보다 안정한 원자핵이 되려 한다. 이것이 방사능의 이유다.
■ 분열과 융합
원자번호 92번의 우라늄은 양성자, 중성자가 합쳐서 238개나 있다. 이렇게 거대한 원자핵은 방사능으로 찔끔찔끔 원자핵을 변화시키는 것 이외에도 단번에 크기가 비슷한 둘로 쪼개질 수 있다. 말 그대로 ‘핵분열’이다. 상상할 수 있지만 이때 핵력 때문에 막대한 에너지가 나온다. 바로 1945년 8월6일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에너지다. 우라늄보다 더 큰 플루토늄을 이용한 원자폭탄은 8월9일 나가사키에 떨어졌다. 폭발이란 빠르게 일어나는 반응이다. 누군가 물을 매일 한 양동이씩 길어준다면 착한 사람이지만 한꺼번에 1억 양동이를 주면 미친 사람이다. 핵분열이 천천히 일어나도록 제어할 수 있다면 그 에너지를 유용하게 쓸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에너지 이슈의 중심에 있는 원자력발전이다.
작은 원자는 서로 합쳐서 안정화될 수 있다. 가장 작은 원자는 원자번호 1번인 수소다. 수소의 원자핵에는 단 하나의 양성자가 있다. 하지만 수소들이 서로 만나서 바로 결합할 수 있다면 우리 주위에 수소는 존재하지 않을 거다. 수소들을 가까이 가져가면 서로 밀어낸다. 수소 원자핵 주위에 전자가 있기 때문이다. 전자들끼리는 서로 밀어낸다. 그렇다면 첫 번째 할 일은 하나뿐인 전자를 없애는 거다. 이걸로도 충분치 않다. 두 개의 수소 원자핵, 그러니까 두 개의 양성자가 가까워지면 역시 서로 밀어낸다. 전기력 때문이다. 강력이 있기는 하지만, 강력의 도움을 받으려면 두 양성자가 충분히 가까워져야 한다. 강력은 아주 짧은 거리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이다.
낭떠러지 위에 있는 나무를 톱으로 자르고 툭 치면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두 양성자가 결합하려면 톱으로 자르는 사전작업이 필요하다. 전기력을 이겨낼 엄청난 힘을 외부에서 줘야 하는 것이다. 일단 양성자들을 충분히 가까이 가져갈 수만 있다면, 그다음부터는 나무가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듯 강력이 양성자들을 결합시킨다. 우주에 존재하는 힘은 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 네 가지뿐이다. 양성자들을 결합시키는 데 있어 중력은 너무 약하고, 전자기력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약력, 강력은 작동하지 않는다. 결국 사용할 힘이 없다. 유일한 방법은 양성자들을 빠른 속도로 충돌시키는 것이다. 온도를 높여야 한다는 말이다.
태양 중심부의 온도는 천만도에 이른다. 이 정도 온도라면 수소를 이루는 전자는 일찌감치 사라지고 없다. 양성자들은 격렬하게 움직이며 서로 부딪친다. 그러다가 충분히 가까워지면 하나로 결합, 헬륨이 된다. 이것을 핵융합반응이라 부른다. 바로 태양의 에너지원이다. 안타깝지만 핵융합반응을 이용해 폭탄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바로 ‘수소폭탄’이다. 수소폭탄에서는 어떻게 수천만도의 온도를 얻는 것일까? 물론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수소폭탄 내부에는 핵분열을 이용한 원자폭탄이 들어 있다. 우선 원자폭탄이 터져서 엄청난 온도를 만들면 수소가 융합하며 추가적으로 막대한 에너지를 내놓는다. 올해 초 북한이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핵분열을 제어해 원자력발전소를 만들었던 것처럼 핵융합을 이용해 발전소를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물론 가능하다. 아직 세계 어느 나라도 상용화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머지않아 가능할 것이라 기대한다. 핵융합은 미래의 에너지원이다. 우리나라도 ‘국가핵융합연구소’에서 관련 연구를 수행 중이다.
■ 우리는 모두 핵물리의 산물이다
빅뱅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138억년 전 한 점으로부터 끊임없이 팽창했다. 빅뱅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원자들은 거의 수소와 헬륨이다. 원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이므로 서로 간에 전기력이 작용하지 않는다. 강력, 약력은 아주 가까워지기 전에는 무용지물이다. 결국 중력만 남는다. 중력은 서로 당기는 힘, 만유인력이므로 수소는 서로 당겨서 하나로 뭉쳐 점점 커져간다. 수소 덩어리의 크기가 충분히 커지면 엄청난 압력으로 인해 내부는 초고온 상태가 된다. 그러면 앞서 이야기한 대로 수소핵융합반응이 시작될 수 있다. 이렇게 융합반응으로 빛을 내는 수소 덩어리를 ‘별’이라고 부른다.
수소가 모두 결합해 헬륨이 되면 이제는 헬륨이 결합하기 시작한다. 이어서 탄소로 변환이 일어나며 이후 산소, 네온, 마그네슘을 거쳐 결국 철에 도달할 때까지 반응은 이어진다. 이런 반응이 철까지 이어질 것인지는 초기 수소의 양, 그러니까 별의 질량이 결정한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철보다 무거운 원자는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좋아하는 금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철보다 무거운 원자를 만들려면 이제는 엄청난 에너지로 철과 다른 원자들을 억지로 결합시키는 방법밖에 없다. 철이 가장 안정한 원자핵이므로 이보다 더 불안정해지는 것은 자발적으로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땅바닥에 쓰러져 있던 나무가 갑자기 껑충 뛰어올라 낭떠러지 꼭대기에 서는 일은 그냥 일어날 수 없다. 폭탄이 터지거나 지진이 일어나면 모를까. 그래서 초신성 폭발이나 최근 중력파로 관측된 중성자별의 병합 같은 무지막지한 사건이 일어날 때, 철보다 무거운 원자가 생성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초신성의 후예다”라 하는데, 결국 우리는 모두 핵물리의 산물인 것이다. 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원자는 고대 그리스의 원자보다 더욱 역동적이고 경이롭다.
당신 오른손 집게손가락 끝에 있는 탄소 원자 하나는 먼 옛날 우주 어느 별 내부의 핵융합반응에서 만들어졌다. 그 탄소는 우주를 떠돌다가 태양의 중력에 이끌려 지구에 내려앉아 시아노박테리아, 이산화탄소, 삼엽충, 트리케라톱스, 원시고래, 사과를 거쳐 내 몸에 들어와 포도당의 일부로 몸속을 떠돌다가 손가락에 난 상처를 메우려 DNA의 정보를 단백질로 만드는 과정에서 피부세포의 일부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일지 모른다.
이렇게 우리는 원자 하나에서 우주를 느낀다.
<김상욱 |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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