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법이 텅~비어 성품이 없다는 진실
< 질문 >
“지금 당장 깨달아 마치라”는 말씀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당장 깨달아 마칠 수 있습니까?
< 답변 >
보통 범부가 ‘깨닫는다’는 말을 쓸 때는 당연히 ‘깨닫는 자’가 있고 ‘깨닫는 바’가 있다고 착각하게 마련이오.
그래야지 '깨닫는 자'와 '깨닫는 바' 그 사이에서 '깨달음'이라는 것이 이루어질 것이 아니겠소? 이 얘기가
무슨 말인가 하면, 능(能)과 소(所), 즉 주관과 객관, 주체와 객체, 나와 너, 나와 세상, 이런 개념들은 사람
들이 '본래 참된 하나'를 제멋대로 분별해서 둘로 나누어 이것과 저것을 서로 마주보는 대립적인 이분법적인
존재인 것처럼 만들어 버렸다는 소리요. 하지만 결코 잊지 마시오. 만법(물질적인 현상, 정신적인 현상 등의
이 세상 모든 것)의 성품은 몽땅 텅~비었기 때문에 본래 참된 한 성품이고, 본래 참된 한 성품이기 때문에
만법은 평등하오. 그러니 몽땅 텅~빈 만법의 성품, 본래 참된 하나의 성품 거기에는 깨달은 자도 따로 없고
깨달은 바도 따로 없고 깨달음도 따로 있을 수가 없는 거요. 명심하시오 그게 진실이오.
“해탈의 도를 알고자 하면 만법이 서로 도달하지 못함을 알라”는 게송이 있소. 이 말은 만법이 서로서로 간에
이르르는(到) 일이 본래 없다는 소리요. 즉 만법이 몽땅 하나의 텅~빈 성품이라는 말이오. 가령 ‘뭔가를 본다’고
할 때 사람들은 저 밖의 빛이 내 눈의 망막에 와 닿아야 ‘본다’는 일이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지 않소?
주관과 객관 두 존재 사이에서 서로 상호관계가 이루어져야 관찰행위, 소위 ‘본다’는 일이 이루어진다고 철썩
같이 믿어왔는데, 사실은 주관이고 객관이고 모든 법(만법)이 몽땅 텅~비어있기에 이름만 제각각 그러할 뿐
이라면, 즉 만법이 서로서로 간에 이르르는 일이 없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그 진실이 뭐겠소? 우리가 지금껏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촉감을 느끼고 생각을 하는 모든 지각작용이 전부 헛소리, 환상이라는 얘기요.
그래서 수산주(修山主)가 이어서 읊은 거요.
“눈이 보고 귀가 들음이 다 끊겼거늘, 빛과 소리는 끝없이 시끄럽구나.”라고.
묶여있던 분별 망상 번뇌로부터 풀려나 자유로워지는 것을 해탈(解脫)이라고 잘못 알지 마시오. 그런 식으로
아는 모든 것은 분별법, 세속법(世俗法)이오. 만약 여러분이 만법(세상 모든 것)이 텅~비어 성품 없는 이치를
꿰뚫어, 고(苦)를 싫다고 할 것도 없고 낙(樂)을 좋다고 할 것도 없어서, 고와 낙 사이를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던 그 끝없는 파동이 영원히 끝난다면 그것을 일러 해탈이라고 하는 거요. 여러분은 손 안에 해탈의 열쇠를
이미 쥐고 있소.
만법이 텅~비어 성품이 없다는 진실. 그 진실을 생각이나 말로써가 아니라 바닥까지 철저하게 사무쳐서
진실을 스스로 체득하지 못한다면 깨달을 분수는 영영 없는 거요.
- 대우거사, 현정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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