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MB 뇌관' 정용욱 도피 7년만에 美서 포착
"한국 돌아가 모든 것 밝히겠다"
미국 워싱턴D.C.=조해수 기자, 안성모·유지만·박성의 기자 입력 2018.12.20. 13:00 수정 2018.12.20. 20:55
7년여 간 해외도피 중인 ‘최시중 양아들’ 정용욱 전 방송통신위원장 정책보좌역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미국에 거주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MB)의 멘토 역할을 했던 최측근 인사다. 시사저널은 미국 현지 취재를 통해 정 전 보좌역의 현재 모습과 직장 및 근무지 등 최근 행적을 확인했다. 정 전 보좌역은 미국 워싱턴D.C. 인근에 거주하며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
정 전 보좌역은 MB 정부의 대선자금·공천헌금·인사청탁·방통위 뇌물·언론장악·정계로비 등과 관련한 의혹을 풀어줄 ‘키맨’으로 꼽히고 있다. 그는 뇌물수수 등의 혐의를 받자 2011년 도주했고, 검찰 수사는 지금까지 중단된 상태다. 그러나 본지 취재로 정 전 보좌역의 소재가 밝혀지면서 수사가 재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정 전 보좌역은 기자에게 “곧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면서 “검찰에서 모든 것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정 전 보좌역은 지난 2008년 추석 직전 최시중 전 위원장의 지시로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친이계 의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전달하고(2012년 1월30일자 “[단독] 최시중, 친이계 의원들에게 수천만원 뿌렸다” 기사 참조), 2009년 7월 미디어법 통과 직후에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들에게 용돈 명목으로 500만원이 담긴 돈봉투를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밖에 2007년 대선 당시 파이시티 브로커 이동율씨에게 1억5000만원을 받은 정황이 나왔으며, 김학인 전 한국방송예술진흥원 이사장으로부터 2억원의 금품을 받고 EBS이사 선임에 도움을 줬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월세 400만원’ 고급주택에 거주…“유학생 하숙으로 임대료 지불”
정 전 보좌역은 검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방통위에 사표를 내고 지난 2011년 12월15일 대만 국적 에바 항공편을 이용해 태국으로 출국했다. 2012년 1월6일에는 태국을 떠나 말레이시아로 갔고, 이후 미국으로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2012년 8월30일 소재불명을 이유로 정 전 보좌역에게 참고인 중지 처분을 내렸는데, 피의자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해당국에 범죄인 인도요구 등 강제처분을 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정 전 보좌역은 해외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이후 7년여 간 정 전 보좌역의 행방은 묘연한 상태였다.
시사저널은 12월14일(현지시간) 정 전 보좌역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집을 찾았다. 워싱턴 도심에서 차로 40분가량 떨어진 곳으로, 한국 교민을 비롯해 동남아·남미계 등의 이민자들이 모여살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집은 텅 비어 있었고, 매물(FOR SALE)로 나와 있는 상태였다. 미국 주정부에서 공개하는 부동산 정보에 따르면, 주택의 소유주는 정 전 보좌역이 아닌 A씨였다. 인근 주민들에 따르면, 정 전 보좌역이 이 집을 렌트해서 거주했고 약 2주 전에 이사를 했다고 한다. 인근에 살고 있는 B씨는 “맞은편 집에 이 사람이 살았었다. 딸과 함께 지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2층 주택인 이 집의 매매가는 84만5000달러(한화 약 9억5000만원) 상당이다. 인근 부동산에 따르면, 이 집의 임대료는 월 3500~4000달러(약 400~450만원)로, 상당히 고급주택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현지 부동산업자는 “고액 렌트의 경우 세입자의 지불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재정 관련 서류를 제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면서 “이 집의 경우 상당한 잔고가 있어야만 계약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 전 보좌역 부부는 이 집에서 유학생을 대상으로 하숙을 쳐 임대료의 상당부분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박물관에서 청소부로 근무…“MB 측과 접촉 오래 전에 끊겨”
미국 현지 취재결과, 정 전 보좌역이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사저널은 12월17일 워싱턴D.C. 인근의 C청소회사를 방문해, 정 전 보좌역이 이 회사의 하청업체에서 정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빌딩과 사무실 등의 청소를 맡고 있었는데, 저녁에 시작해 늦은 밤이 돼야 끝난다고 한다. 예순살을 바라보는 정 전 보좌역에게는 고된 일임에 틀림없다.
봉급도 많지 않다. C청소회사 관계자는 “사무실 청소의 경우 직원들이 퇴근한 오후 6시 이후에나 시작할 수 있다. 이때부터 4시간가량 청소를 한다. 일이 많으면 몇 시간씩 추가 근무를 할 때도 있다”면서 “많이 받아야 시간당 17달러정도다. 하루 4시간, 주 5일 근무를 한다고 봤을 때 한 달에 약 1300달러(약 150만원), 연봉으로 계산하면 1만6000달러(약 18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1300달러의 월급은 정 전 보좌역이 살았던 주택 임대료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이와 관련해 정 전 보좌역의 지인은 “정 전 보좌역이 미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경제적, 행정적으로 도움을 준 곳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해외 도피 기간이 길어지고, 정권이 바뀌면서 떨어져 나갔다. MB 측 사람들과의 접촉은 오래 전에 끊겼다. 최 전 위원장도 등을 돌린 것으로 알고 있다. 한 마디로 ‘팽’ 당한 것이다. 그래서 힘들게 생활해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시사저널은 12월18일, 수소문 끝에 정 전 보좌역이 실제 청소 업무를 하고 있는 근무지를 확인했다. 이 곳은 워싱턴D.C. 도심에 위치한 한 박물관이다. 청소 관리자는 “미스터 정(정 전 보좌역)은 오후 6시부터 근무를 시작해 대략 10시까지 일한다”면서 “이 곳에서 기다리면 퇴근시간에 미스터 정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보좌역은 본지 기자를 피했다. 이 와중에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정 전 보좌역은 퇴근 1시간 전에 일찍 박물관을 떠났고, 지인의 차를 문 앞까지 오게 한 다음 채 정지하지도 않은 차에 뛰듯이 올라타 황급히 박물관을 떠났다. 한 동료 직원은 “미스터 정은 워싱턴D.C. 인근 버지니아주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평소 지하철을 이용해 출퇴근한다. 차를 타는 것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정용욱 “검찰 수사 시작돼 부르면 다 얘기 하겠다”
시사저널은 전화 통화를 통해 정 전 보좌역의 입장을 들을 수 있었다. 정 전 보좌역은 여러 차례 귀국할 뜻을 내비쳤다. 그는 “내가 곧 (한국에) 들어갈 것이다”면서 “검찰에서 수사가 시작돼서 나를 부르면 다 얘기 하겠다”고 밝혔다.
정 전 보좌역은 수사를 대비해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는 “한국에서 아는 형이 한 달 전 쯤 (나를) 찾아왔다. 이 사람도 MB 정부에 당했다면서 억울해 했다”면서 “이 사람에게 후배나 믿을 만한 사람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정 전 보좌역은 언론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는 모습이었다. 그는 특유의 대구·경북 사투리로 “밤에 일을 시작해서 아침 6시에 끝난다”면서 “낮에는 자야 하기 때문에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언론에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정 전 보좌역은 귀국할 경우 공항에서 즉시 검찰에 통보돼 소환조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본인과 관련된 사건뿐만 아니라 이 전 대통령 재판과 관련해 수사를 받을 가능성도 높다. 이 전 대통령은 1심에서 15년을 선고 받았는데,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 최측근의 폭로가 결정적이었다. 정 전 보좌역의 경우 이 전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라 불린 최시중 전 위원장의 손발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최 전 위원장은 MB 정부의 각종 비리에 연루돼 있다.
정용욱 전 보좌역은 정치 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다 갤럽 회장이었던 최 전 위원장과 인연을 맺었고, 2007년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캠프에 합류해 최 전 위원장과 함께 홍보 전략을 세웠다. 대선 승리 후인 2008년 최 전 워원장은 방통위의 규정을 바꾸면서까지 정책보좌역을 신설해 정 전 보좌역을 발탁했다. 정 전 보좌역은 MB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최 전 위원장과 고락(苦樂)을 함께 해온 셈이다. 정 전 보좌역은 최 전 위원장과 관련된 일을 속속들이 알고 있을 수밖에 없다.
MB정부 비리 의혹 풀 ‘키맨’
최시중 전 위원장이 연루된 비리 가운데 가장 먼저 대선자금을 꼽을 수 있다. 최 전 위원장은 17대 대선기간 중 최등규 대보그룹 회장으로부터 5억원의 뇌물을 받았다. 정두언 전 의원은 “2007년 대선 당시 MB의 ‘멘토(최시중)’가 한 호텔방에서 열린 대선캠프 비밀회의 자리에 최등규 회장을 데리고 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인사청탁 의혹도 제기된다. 김명식 전 청와대 인사비서관은 “대선 캠프 파일에서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추천한 사람 10명이 적힌 파일이 있었다. 희망 직위가 함께 적혀 있어서 일부를 그 자리에 추천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정계선)는 지난 10월5일 이 전 대통령이 인사청탁 대가로 받은 36억여원 가운데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김소남 전 국회의원에게서 받은 23억원가량을 뇌물로 인정했다.
공천헌금도 문제가 됐다.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은 “취임 전 최시중, 이상득, 천신일 등 주요 핵심 멤버들이 공천자 선정 회의를 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이 김소남으로부터 비례대표 국회의원 공천 청탁을 받고 2007년 가을에서 초겨울경 2억원, 2008년 3월에서 4월경 2억원을 정치자금 및 뇌물로 받고 김소남을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순위 7번으로 공천되도록 했다”면서 “이 돈은 뇌물임과 동시에 정치자금에 해당하므로 뇌물죄와 정치자금법 위반죄가 모두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이 밖에 정용욱 전 보좌역을 통해 MB 정부의 언론장악 실태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수도 있다. 지금까지 여러가지 문서를 통해 최 전 위원장이 방송을 장악하고 언론을 통제하려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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