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관심일법총섭제행(觀心一法總攝諸行)

장백산-1 2019. 1. 21. 12:12


관심일법 총섭제행(觀心一法 總攝諸行)

 

 

선종(禪宗)의 첫번째 조사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에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 염불, 송주등을 다 부인하고 관심일법(觀心一法) 총섭제행(總攝諸行)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 즉 “마음 하나를 지켜보는 행위에 모든 법(法, 이 세상 모든 것, 이 세상 모든 현상)이 다 들어있으니, 곧바로 법(法)의 진심(眞心)을 관(觀)하여 법(法)의 성품(性品)을 알면 깨달은 자(부처/佛)가 된다” 하였다. ` 마음을 살피는 이 한 가지 일이 삶 전체를 이끌게 된다(관심일법 총섭제행 觀心一法 總攝諸行)'. 사람들이 애써 정진하는 목적은 새삼스럽게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나 갖추고 있는 본래의 깨달음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본래성불 本來成佛)이다.

 

화엄경에 약인욕식불경계(若人欲識佛境界) 당정기의여허공(當淨其意如虛空) 원리망상급제취(遠離妄想及諸趣) 염심소향개무애(念心所向皆無碍). “만일 부처라는 경계(대상)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부처의 경계를 알고자 하는 그 마음을 정화해서 허공과 같이 텅~비워라, 모든 분별 망상 번뇌와 모든 쥐려고 하는 욕심을 여의면 마음 가는 곳에 장애가 없으리라.“ 하였다.

화두(話頭)란 지금 여기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모든 장애와 관계된 마음의 성질이 화두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불법(佛法)과 화두(話頭)를 따로따로 서로 분리시켜 놓으면 생각마다 어려움에 갇혀 움직일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 곧 부처이고 화두인 것이다. 마음이니 부처이니 중생이니 하는 분별은 꿈속에서나 하는 헛말이다. 본래부터 어둡고 밝고, 알고 모르는 분별이 없다. 누구나 무엇이나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 즉 깨달음 그 자체다. 이것을 이름하여 본각(本覺)이라 하며, 깨닫겠다는 자와 깨닫는 대상(깨달음)은 둘이 아닌 본각(本覺)인데, 둘이 아닌 본각(本覺)을 둘로 나눠놓고 깨닫겠다 하니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깨닫겠다는 마음이 앞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이 장애가 되고 어려움이 되는 것이고,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은 자기 집 안방에 앉아서 자기 집을 찾는 격이다. 사람들이 일상의 삶속에서도 나와 너를 둘로 분리해놓고 보기 때문에 서로간에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을 하지만, 존재의 실상을 즉, 본각(本覺)을 깨닫고 보면 남은 남이 아니고 또다른 나인 것이다. 누구나 무엇이나, 우주삼라만상만물이 아무리 본래부터 뚜렸이 이루어진 존재의 실상을 즉, 본각(本覺)이라하지만 이 세상에 나올 때 부터 지혜의 눈이 어두어 윤회를 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두꺼운 무명(無明)의 껍질을 벗겨주겠는가? 나 스스로 벗겨내야한다. '오직 모르고 모를 뿐'인 그 당처(當處)를 간절하게 정성껏 생각하며 “이뭣고” 할 따름이다.

인간은 6개의 감각기관인 눈, 귀, 코, 혀, 몸, 마음이 각각의 대상인 모양, 소리, 냄새, 맛, 촉감, 모든 현상과 접촉할 때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촉감을 느끼고, 생각함을 거듭하며 마음에 많은 정보를 쌓고 배우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마음을 6가지 대상에 빼앗기고 휘둘리게 되어 산만해져서 분별 망상 번뇌만 계속해서 쌓아가고 있는 마음 밖의 상념의 세계로부터 근본 마음자리로 되돌려 보는 것이 반조(返照)이다.

경허 스님의 제자 만공(滿空)스님에게 어떤 학인이 물었다. “불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네 눈앞(目前)에 있다.” 그러자 학인이 “불법이 제 눈앞에 있다면서 저에게는 어찌하여 불법이 보이지 않습니까?“ “너에게는 ”너라는 것“ 즉, 아상(我相)인 내가 실제로 있다고 착각하는 허망하고 헛된 생각, 허망한 자아의식(自我意識, 에고)가 있기 때문에 불법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스님께서는 불법을 보셨습니까?” “너 하나만 있어도 불법이 안 보이는데 나까지 있다면 더욱 더 불법을 보지 못한다.” 
“나도 없고 스님도 없으면 불법을 볼 수 있습니까?” 그러자 만공 스님이 “나도 없고 너도 없는데 불법을 보려는 자(者)가 누구냐?”

아상(我相)이 떨어저 나간 그 자리 공성(空性)자리, 나도 없고 너도 없는데 불법을 보려는 자는 사람의 육안으로는 볼래야 결코 볼 수 없는 오직 모르고 모르는 일을 마친 사람의 경계이다.


-청운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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