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 서암스님 -
허공에서 일어났다가 머무는 바 없이 사라지는 구름 처럼, 사람들의 마음도 구름과 같이 대상이 있을
때만 찰라찰라 일어났다 머무는 바 없이 찰나찰나 사라지는 것입니다. 생각(마음)이 일어났을 때 그
생각이 일어난 근본(바탕)을 돌이켜 보면 생각(마음)은 머무른 바 없고, 뿌리박힌 곳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다 해서 뜬구름같이 일어난 한 생각에 어리석게도 사람들이
집착하기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생각으로 욕심내고 다투어서 크고 작은 재앙이
닥친 후에 그일을 후회해 봐야 소용이 없는 노릇이지요. 모든 생각은 말미암아 일어나는 생각일 뿐
생각에는 고정불변하는 진실한 실체가 없습니다. 이것을 공(空), 무(無)라고도 합니다
이런 진실를 알고 사람들 제각각이 주체적으로 선(善)한 세상을 열어가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 입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어디에도 집착하고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어 써라. 금강경이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참으로 밝은 생활수행 방법입니다.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으면, 머물지 않으면 괴로워
할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원인인 괴로움의 대상이 모두 실체가 없는 허망한 것임을
알면, 즉 이 세상 모든 것들은 그것들이 정신적인 현상이던 물질적인 현상이던 간에 그것들은 꿈,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 같은 것임을 알면 그것들에 집착하고 머물러 빠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순간 순간 일어났다 사라지는 분별하는 마음, 분별하는 생각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괴로운 마음,
화나는 마음, 답답한 마음, 즐거운 마음, 기쁜 마음 등등 그런 마음들이 찰나찰나 순간순간 일어났다
머물지 않고 사라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생각 마음이 일어남' 그 자체는 인간으로 어쩔
수 없으며 당연한 일입니다.
정작 문제는 그 일어난 생각 마음인 그 경계에 집착해서 그 생각 마음에 머물러 있는 데 있습니다.
마음을 다스리고 조종한다는 말은 일어난 생각 마음인 그 경계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머물지
않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모든 대상을 상대적으로 분별해 놓고 나눠 놓고서 좋은 것, 싫은 것이라는 그 대상에 마음이 머물면
괴로움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칭찬이나 비난을 듣고도 그 소리에 마음이 머물면 안됩니다. 좋은 맛,
싫은 맛에 마음이 머물 필요도 없습니다. 좋은 생각을 계속 떠올리려 하거나 싫은 생각을 지워버리려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절대로 화를 내서는 안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화라는 마음이 올라오면 화를 내되 화라는 마음,
즉 '화냄' 그 자체에 집착해서 머물지 말라는 말입니다. 화냄 그 자체에 자신이 휘둘리게 되면 계속해서
화를 내게 된다는 말입니다. 화를 내는 그 순간 온전히 그 화를 알아차려야 화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는 '화'라는 그 비실체적인 마음에 노예가 되어 상대를 질책하고 욕하고 할 필
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다만 이 상황에서는 화내는 마음을 내어야 하기에 화를 내는 것일 뿐입니다.
화가 나서 의도적으로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깨어있는 상태에서 화를 낸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독화살을 맞고 두 번째 세 번째 독화살을 맞지 않는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내 분에 못이겨 화를 내고 질책하고 그러는 것은 화를 내는 마음에 집착해서 머무는 것이 됩니다. 그렇게
화를 내고 나면 화를 낸 그 마음을 대상으로 새로운 화를 내는 새로운 마음이 일어나고,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화를 내는 마음이 상속(相續)되기 때문에 그런 화는 오래가게 마련입니다. 집착하고 머물러 있는
마음 때문입니다.
모든 일을 함에 있어 집착하지 않고 머물지 않는 마음을 내어 써야 마음이 편안합니다. '머무는 바가
없는 마음을 내라'를 되풀이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마음이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머물지 않기에
괴로움이든 답답함이든 즐거움이건 기쁜 일이건 어디에도 집착하는 마음이 붙어있을 사이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생각이 어떤 대상에 집착하고 머물러야 그 마음 그 생각을 대상으로 괴로운 마음, 기뻐하는
마음이 새롭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머물지 않음은 그대로 해탈입니다. 그대로 부처입니다.
그대로 깨달음입니다.
-송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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