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물건(一物)
설사 한 물건이라 하더라도 곧 맞지 않다.
設使一物卽不中 (설사일물즉부중)
- 남악회양(南岳懷讓)-
이 글은 육조 혜능(六祖慧能, 638~713) 대사의 제자인 남악회양(南岳懷讓, 677~744) 선사의 유명한
말이다. 위에 소개한 글은 회양 선사가 깨닫게 된 인연과 함께 널리 알려진 말씀이며, 인구에 널리
회자되고 있다. 존재의 실체를 사유하고 깨닫게 하는 중요한 법어다. 전등록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어느 날 젊은 수행승 회양이 혜능 스님을 찾아왔다. 혜능 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숭산에서 왔습니다.”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설사 한 물건이라 하더라도 곧 맞지 않습니다.”
“닦아서 증득하였는가?” “닦아서 증득한 일은 없지 않으나 물든 적은 없습니다.”
“이 물든 적이 없는 것만이 부처님들이 마음에 깊이 간직하는 바이니, 그대도 나도 또한 그러하다.”
혜능 스님의 이 말씀에 회양 선사가 활연히 깨닫고 곁에서 시봉하기를 15년 동안 하였다. 그리고
당(唐)의 선천(先天) 2년에 비로소 남악으로 가서 반야사에서 크게 교화하였다.
이상의 내용이 『전등록』의 기록이지만 다른 기록과 아울러 좀 더 풀어서 기술한다면 다음과 같다.
처음 육조 스님을 만나서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라고 질문을 받았을 때, 회양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 ‘어떤 물건인가’라고 했을 때 승려가 왔다고 할 수도 없는 처지다. 그것은 외모만을 생각하고
말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 몸뚱이가 왔다고 하더라도 이 몸이 혼자 굴러 올 수는 없는 것이므로 그것도
또한 맞지 않는 대답이다. 사내아이가 왔다고 해도 역시 틀린 말이다. 그렇다고 회양이 왔다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은 사람마다 편의상 분별하기 위하여 갖다붙인 이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어떤 물건’이라고 말한 것은 회양 스님 존재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이다. 그리고 우리들 도든
존재의 실체를 물은 것이다. 회양 스님은 끝내 존재의 실체를 알 수 없었고 따라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선가(禪家)에서 자주 등장하는 ‘조고각하(照顧脚下)’, 즉 ‘자신이 지금 서 있는 곳을 살펴보라’는 말의
의미도 바로 존재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묻는 말이다.
그 후 회양 스님은 좌선(坐禪)을 통하여 열심히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그리고 온갖 것을 모두 동원
하여 대답하려 하였으나,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8년이 지났다. 8년
동안 생각한 끝에 드디어 답을 찾았다. “설사 한 물건이라 하더라도 곧 맞지 않습니다.”라는 것이었다.
육조 스님은 이 말을 듣고 드디어 인가(印可)를 하였다.
한 물건(一物)이라 하더라도 맞지 않는데, 경전과 어록에는 ‘한 물건’에 대한 이름들이 대단히 많다.
진여, 불성, 자성, 일심, 보리, 열반, 원각, 대각, 마음, 여래, 깨달음, 부처, 본래면목 등등이다. 그러나
회양 스님의 말씀처럼 모두가 맞지 않는 말이다. 부득이 마지못해서 한 물건(一物)에 지어붙인 이름들
이지만 이런 이름들은 전부 잘못 지어붙인 이름들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무엇인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며, 젊은 것도 아니고 늙은 것도
아니며, 부귀빈천도 아니며, 유식무식도 아니며, 생사거래도 아니며, 선악시비도 아니며, 영광도 오욕도
아니며, 영원불멸도 아니며, 환희용약도 아니며, 병고액난도 아닌 그 무엇이 이렇게 글을 읽고 사물을
보며 말을 하고 말을 듣는가?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이렇게 중얼거리는가?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④ (소를 때려야 하는가,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 산빛노을(원광), 옥연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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