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 생각, 느낌을 관찰(觀察)함 - - 법상스님
호흡(呼吸, 내쉬는 숨 들이쉬는 숨)을 통(通)해 그 때 그 때 매 순간(瞬間) 새로우며, 불어오는 바람조차
하루 하루 분명한 새로움이 있으며, 코끝의 감각(感覺)을 통(通)해 봄이 얼마만큼 멀어져가고 있는지,
또 여름이 얼마나 성큼 우리 곁에 와 있는지를 투명하게 지켜봅니다.
삶도 계절 만큼이나 변화(變化)가 뚜렷함을 느낍니다.
바쁜 중에도, 해야 할 일들이 많은 중에도 가벼운 소요와 여유와 ‘할 일 없음’의 무위(無爲)를
참으로 누릴 줄 아는 소탈하고 단순한 수행자가 되기를 서원(誓願)합니다.
호흡 관찰(呼吸 觀察)도 200회 지켜보기에서 조금씩 늘여서 500회 이상 지켜보고, 때로는 몇 천회도
꾸준히 지켜보고 ...그리고 또 계속 하다 보면 어떤 경우에는 호흡하는 숫자 세는 것도 조금 번거롭다
싶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는 호흡 횟수 세는 것을 잠시 옆으로 비껴두고 그저 단순히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만을 지켜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호흡관찰 집중(集中)이 잘 되면 그대로 하시면 되고, 그랬더니 자꾸 잡념이 생긴다 하면
다시 호흡 횟수를 숫자로 세는 것으로 돌아오셔도 좋습니다. 호흡관찰(呼吸觀察) 횟수 세는 것을
몇 회나 하느냐 보다도 얼마나 깊이 있게 호흡을 지켜보느냐, 또 호흡과 호흡 사이 사이에 어떤
생각들이 올라오는가 하는 점들에 대해서도 분명히 지켜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얼마나 많이 호흡관찰을 하느냐 보다도 하루 중에 얼마나 호흡을 지켜보는 빈도(頻度)가
높아지느냐, 다시말해 자주 자주 호흡을 지켜보는 것을 놓치지 않고 호흡 지켜보는 것을 놓치면
‘다시 호흡(呼吸)을 지켜보는 것으로 돌아오기’를 실천(實踐)하고 있느는 것이 중요(重要)합니다.
계속적으로 호흡관찰(呼吸觀察), 호흡 지켜보기를 해 나가시다 보면 숨이 들고 나는 것도 보여지지만,
생각(生覺), 망상(妄想), 분별(分別), 번뇌(煩惱)라는 것들이 정말 무의미(無意味)하고, 또 그것들이
뜬금없이 제멋대로 오고가는 장면(場面) 장면( 場面)들을 영화(映畵) 구경하듯 살펴보게도 될 것입니다.
예, 그렇게 지켜볼 수 있다는 게 아주 좋습니다.
한 호흡(呼吸)과 한 호흡(呼吸) 사이에서, 호흡 지켜보기가 이어지다가 어는 순간(瞬間) 불현듯이
아무런 암시(暗示) 없이 갑작스레 일어나 스쳐지나쳐가는 듯한 생각(生覺), 분별(分別), 번뇌(煩惱),
망상(妄想)들을 잘 지켜보는 것이 중요(重要)합니다. 이같은 생각(生覺), 분별(分別), 번뇌(煩惱),
망상(妄想)들은 때로는 강(强)하고 크게 일어나기도 하지만, 아주 흔적도 없이, 미세(微細)하고
작게 일어나는 듯 마는 듯해서 잘 지켜보는 것이 어려울 만큼 약하게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호흡 지켜보는 중에 일어나는 생각(生覺), 분별(分別), 번뇌(煩惱), 망상(妄想)
을 관찰하는 힘이 미세한 생각(生覺), 분별(分別), 번뇌(煩惱), 망상(妄想)을 보지 못하여, 생각(生覺),
분별(分別), 번뇌(煩惱), 망상(妄想)이 전혀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생각(生覺), 분별
(分別), 번뇌(煩惱), 망상(妄想)들이 너무 미세(微細)하게 낮게 깔리면서 일어나는 듯 마는 듯 하게
스쳐지나 가다 보니 그것들을 전혀 관찰(觀察)하지를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의식을 주의(注意) 깊게 집중해서 관찰하다 보면 아주 작고 약하고 미세(微細)한
생각(生覺), 분별(分別), 번뇌(煩惱), 망상(妄想)들이나 혹은 아주 작은 느낌, 감정의 조각들이
지켜보고 붙잡을 수 없을 정도(程度)의 작고 약한 강도로 나라는 존재(存在)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실(事實)은 잘 감지(感知)되지 않는 느낌, 감정이나, 쉽게 관찰되어지지 않는 생각(生覺), 분별(分別),
번뇌(煩惱), 망상(妄想)들이 사람들 내면에서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면서 사람들 내면(內面)을
희뿌옇게 만들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生覺), 분별(分別), 번뇌(煩惱), 망상(妄想)들은 그렇다 치고,
작고 희미한 느낌이나 감정들을 관찰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 느낌 감정이 어떤 것인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오긴 온건지, 분명히 온 것 같은데 관찰(觀察)하면
보이지는 않고, 느낌 감정 이게 도무지 처소(處所)가 불분명(不分明)하고, 실체(實體)가 있는 듯 없는
듯, 알 듯 말 듯 하기도 하단 말입니다. 그렇더라도 올라오는 느낌 감정들을 가만히 비추어 주십시오.
호흡(呼吸)을 관찰(觀察)하다가 어떤 特定한 생각(生覺), 분별(分別), 번뇌(煩惱), 망상(妄想)이 올라
오거나, 어떤 느낌 감정이 올라올 때, 올라왔구나 하고 그냥 느낌 감정을 알아차린 뒤 다시 호흡을
지켜볼 수도 있고, 그 느낌 감정이나 생각(生覺), 분별(分別), 번뇌(煩惱), 망상(妄想)이 지속(持續)
된다면 그것들에 관찰(觀察)의 초점(焦点)을 맞춰 지켜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호흡(呼吸)을 지켜보는데, 너무 긴장하거나, 잘 하려고 애쓰거나, 눈을 부릅뜨지는
마십시오. 그냥 그저 아주 편안(便安)하게 하는 일 없는 듯, 그냥 그냥 노력(努力)하지 않고 애쓰지 않고
단지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지켜볼 수도 있습니다.
생활호흡관찰(生活呼吸觀察)과 집중호흡관찰(集中呼吸觀察)을 꼭 함께 계속해 보십시오. 일상생활
속에서 매 순간 순간(每 瞬間 瞬間), 3번, 5번, 10번, 20번, 30번, 100번 호흡관찰을 해보고, 짧은 틈
에서는 3번이나 5번 호흡관찰을 하고, 조금 긴 시간에서는 10번이나 20번 정도 호흡 지켜보기를 하며,
그 이상의 긴 시간이 주어지면 100번, 200번도 호흡 지켜보기를 할 수 있습니다.
한꺼번에 100번 이상씩 호흡 관찰을 꾸준히 한다면 그것도 좋지만, 그게 어렵다면, 단 3회의 호흡 지켜
보기라도 자주 자주 지켜보는 것도 아주 큰 공부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3번 呼吸 觀察하는 것은
時間도 너무 짧고 集中도 덜 된다고 느껴서, 時間이 充分히 날 때만, 어느 程度 觀察할 수 있는 時間이
주어질 때만 呼吸을 觀察하겠다고 하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짧은 순간(瞬間) 순간( 瞬間)의 회심(回心)과 호흡관찰이야말로 마음고우의 핵심(核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시간이 충분(充分)할 때는 절이나 방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거나, 회사나 버스
같은 곳에서라면 편하게 의자에 앉아서 집중호흡관찰(集中呼吸觀察)을 10분, 30분, 1시간, 2시간
그리고 나중에는 그 이상의 호흡 지켜보기를 해나갈 수도 있습니다.
집안 곳곳에, 회사 사무실 책상에, 컴퓨터 모니터 옆에, 수첩이나, 여닫는 문에, 자동차 운전석 앞에 등
눈길이 자주 가는 곳에 최대한(最大限) ‘관(觀, 지켜봄)’이라는 한 글자를 붙여 놓을 수도 있습니다.
눈길이 ‘觀’이라는 글자에 닿을 때마다 ‘호흡(呼吸)으로 돌아와 호흡을 관(觀)하라’는 메시지로 알고
지금 이 순간(瞬間)의 呼吸을 지켜볼 수 있을 것입니다.
호흡(呼吸)을 관찰(觀察)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해나가다 보면 억지스런 호흡(呼吸), 인위적(人爲的)인
호흡(呼吸)이 쉬어지는 것도 어느 정도 가지런해 지면서 ‘있는 그대로의 呼吸’을 지켜보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 쉽게 말해, 내 안에서 저절로 숨을 쉬는 어떤 作用에게 ‘너는 그냥 네가 알아서 숨을 쉬어라.
나는 다만 네가 숨쉬는 것을 지켜볼 뿐이다’하고 숨을 내가 쉰다고 생각하지 말고, ‘네가 매번 알아서
숨을 잘쉬었으니 하던대로 계속 잘 알아서 숨을 쉬어라 ’하고 그냥 내맡겨 버리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조금씩 숨(호흡)이 가지런해 지고, 내 안의 지성(知性)이 알아서 호흡을 하게 되고, 나는
다만 들숨 날숨이 일어나고 움직이고 사라지는지를 가만히 지켜보기(觀)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깨어있는 지금 여기, 하루, 한 주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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