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기 최초 증언 "윤석열, '조국 사태' 첫날에 조국 낙마 요구"
한상진 입력 2020.07.02. 16:53 수정 2020.07.02. 16:54
⬤ '조국사태' 시작된 지난해 8월 27일, 박상기와 윤석열이 만났다
⬤ 윤석열, 박상기 만나 "사모펀드는 사기꾼들이 하는 것, 어떻게 민정수석이.." 발언
⬤ 박상기, "'조국 수사'는 검찰의 정치행위, 대통령 인사권 흔들기"
⬤ 박상기, "윤석열 만난 뒤 '조국 수사' 의도 간파, 낙마 목표 기획수사"
2019년 8월 27일, 그 날은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서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가 열리는 날이었다. 박상기 법무부장관은 아침부터 서둘렀다. 새벽부터 내린 비로 우중충한 날씨, 광화문으로 가는 길이 막힐 게 뻔했다. 과천 정부종합청사를 빠져 나온 박 장관의 관용차는 우면산로와 반포대로를 지나 광화문으로 달렸다. 출발 한 시간이 지난 8시쯤에서야 녹사평대로를 거쳐 남산 3호터널에 다달았다. 터널을 막 빠져 나올 즈음 박상기 장관의 휴대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이성윤 법무부 검찰국장(현 서울중앙지검장)의 전화였다.
“국무회의 있던 날이었어요. 국무회의 참석을 위해 아침 일찍 출발했고, 남산 3호터널을 막 통과하고 있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이성윤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이었습니다.”
-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
이성윤 국장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장관님,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와 관련해 20여 곳에 대해 조금 전 압수수색을 시작했습니다.” 이 국장은 숨을 몰아쉬며 보고를 이어갔다. 검찰의 압수수색 대상에 조 전 장관의 자녀 입시 관련 의혹이 제기된 대학들과 조국 지명자 가족이 돈을 댄 사모펀드, 조국 지명자 가족이 운영 중인 부산 소재 웅동학원도 포함됐다는 내용이었다. 검찰이 사실상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겨냥해 대대적인 강제수사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보고를 받은 박 장관은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두 사람의 숨소리만 수화기를 넘나들었다. 박 전 장관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어이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검찰국장에게 뭐 할 얘기도 없었고요. 도대체 이런 방식으로 꼭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요. 그리고 이 수사가 앞으로 정국에 미칠 파장에 대해 생각했죠. 그리고 판단했습니다. ‘이건 정치 행위다.’ ‘궁극적으로는 대통령의 인사권을 흔들기 위한 의도가 있지 않았나’ 또 제가 주도한 검찰개혁안에 대한 검찰의 반발도 이유가 됐다고 느꼈습니다.”
-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
이성윤 검찰국장의 보고를 받은 직후, 박 장관은 곧바로 수사책임자인 배성범 서울중앙지검장(현 법무연수원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 장관을 태운 차가 어느덧 정부종합청사에 근접하고 있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박 장관은 전화가 연결된 배 지검장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지금 (검찰이) 뭐하고 있는 겁니까? 윤석열 총장의 결정입니까? 중앙지검장의 판단입니까?”
-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
배성범 지검장이 곤혹스러워하며 답했다. “아, 그건 제가 말씀드리기 곤란한데…” 사실상 윤석열 총장이 직접 결정하고 지시한 수사라는 말이었다. 박 장관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결정한 수사라는 사실을) 뻔히 다 알지만, 일단은 절차를 밟아서 물어봤던 것입니다.”
-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
▲ 뉴스타파는 지난달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과 두번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했다.
“저는 그날 검찰의 민낯을 봤습니다”(박상기 전 법무장관)
뉴스타파는 최근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을 두 차례 만나 인터뷰했다. 첫 인터뷰는 6월 2일 진행됐다. 2주일이 넘게 설득한 끝에 성사된 자리였다. 박 전 장관은 “퇴임한 사람이 재직 중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여러 차례 고사했으나 취재진은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 이후 본격화된 검찰의 문제를 기록해야 한다”며 설득을 계속했다. 두번째 인터뷰는 첫 인터뷰가 있고 2주일 쯤이 더 지난 뒤에 진행됐다.
박 전 장관은 뉴스타파와 첫 인터뷰를 하는 자리에 여러 장의 메모를 들고 나타났다. 장관 재직 당시 있었던 일, 검찰개혁에 대한 생각을 빼곡히 정리한 글이었다. 평생 강단에 섰던 학자의 꼼꼼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박 전 장관은 슬슬 메모에서 눈을 뗐고, 간혹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 이후 흐려져 가는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의 청사진’을 안타까워 하는 마음이 한숨 속에 녹아났다. 그는 최근 검찰의 행태를 “이성을 잃은 것 같다”고 표현했다.
박 전 장관과의 대화 주제는 주로 ‘조국 사태’에 맞춰졌다. 특히 ‘조국 사태’가 시작된 지난해 8월, 검찰과 법무부에서 벌어진 일이 화제가 됐다. 박 전 장관은 검찰이 일제히 압수수색을 벌였던 2019년 8월 27일을 이렇게 설명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화가 났던 날입니다. 가장 참담했던 날이 그 날이었다고 생각해요. 장관으로 재임하는 동안에 제일 실망스러운 날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검찰의 민낯을 봤습니다.”
-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
나중에야 확인됐지만, 조국 전 법무부장관에 대한 검찰의 강제수사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직접 기획하고 결정한 것이었다. 지난해 10월 17일 국회 국정감사에 나온 윤 총장은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의 질문에 당당하게 답했다.
“(백혜련 의원) 조국 장관에 대한 수사 자체는 처음에 총장님이 지시를 내리셨습니까?”
“(윤석열 총장) 이런 종류의 사건은 제 승인과 결심 없이는 할 수가 없지요.”
- 윤석열 검찰총장 국회 국정감사 답변 (2019.10.17.)
박상기, “조국 수사 보며 ‘검찰은 변한 게 하나도 없구나’ 생각”
윤석열 검찰총장은 지난해 8월 27일 조국 당시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수사를 시작하면서 검찰총장에 대한 지휘권을 가진 법무부장관에도 수사 착수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박상기 전 장관은 우선 이 부분에 문제를 제기했다.
“법무부장관의 검찰총장 지휘감독권의 본질이 뭘까요? 뭘 알아야지 지휘감독을 하죠. 그렇지 않아요? 보고도 전제하지 않고 어떻게 지휘감독권을 행사를 해요? 설사 장관 후보자에 대한 수사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 정부 인사나 정치인, 중요 인물들에 대한 수사의 경우 당연히 보고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검찰이 택한 수사 방법이 최선인지에 대해 판단을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라고 검찰청법에 지휘권과 관련된 규정이 있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규정은 둘 필요가 없죠.”
-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
박 전 장관은 “인사청문회를 앞둔 공직자 자녀의 입시문제, 자녀가 받은 추천장이나 표창장, 인턴증명서 같은 문제가 특수부를 동원해 수사할만한 일인지 의문이 든다”고도 말했다. “분초를 다투는 사안도 아니고, 국민들을 상대로 한 인사청문회마저 무력화시킬 만큼 중대 사안도 아니”라는 것이다. 박 전 장관은 지난해 8월 검찰이 보인 행태를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벌인 일’로 단정했다. 검찰이 ‘검찰정치’ 달성을 위해 대통령의 인사권에 정면으로 도전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꼭 이런 방식(인사청문회 전 강제수사)으로 해야 됐나 하는 생각이 일단 먼저 들었습니다. 사모펀드 관련 의혹은 금융감독원 같은 곳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고, 입시 비리 의혹 같은 경우는 교육부 등에서 조사를 통해서 시시비비를 가리고, 그런 다음에 범죄혐의가 있다고 확인되면 그때 검찰이 수사를 하든지 하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건 분명히 ‘검찰의 정치행위다’ 그렇게 생각했죠. 검찰은 변한 게 하나도 없구나...”
-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
박 전 장관은 자신이 오랫동안 준비한 검찰개혁이 “허무하게 막을 내리는 기분이었다”고 말한 뒤, 한동안 침묵했다.
최강욱 전 청와대비서관, “윤석열 총장이 ‘조국 낙마’ 요구했다 들어”
박상기 장관이 이성윤 법무부 검찰국장에게 검찰수사 상황을 보고 받던 시각,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모여있는 춘추관이 술렁였다.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이 있는 서울 서초동에서 시작된 ‘조국 후보자 강제수사’ 소식이 청와대 출입 기자들 사이에 전해진 것이다. 최강욱(현 국회의원)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도 춘추관에서 처음 소식을 접했다. 최 전 비서관은 “춘추관이 술렁이기 전까지 청와대 관계자 누구도 압수수색 등 검찰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혀 예상을 못했던 일이죠. 검찰이 조국 지명자와 관련해 압수수색에 나섰다는 사실을 청와대 춘추관에서 들었어요. 청와대 사람 누구도 몰랐다니까. 춘추관에서 얘기가 돌아서 안 거지, 너무 황당했죠.”
- 최강욱 전 공직기강비서관 (현 국회의원)
검찰의 압수수색 소식을 전해 들은 최 비서관은 곧바로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국 후보자는 당시 집에 머물다 최 비서관의 전화를 받았다. 조국 후보자와 최 비서관은 불과 얼마 전까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수석과 비서관으로 일한 사이였다.
“내가 바로 조국 지명자에게 전화를 했어요. 그랬더니 자기도 처남이 전화가 와서 ‘자기 집 앞에 무슨 압수수색이라며 사람들이 와서 문을 열라고 하는데, 이게 검찰의 압수수색이 맞냐’고 오히려 묻더라고...검찰이 갑자기 압수수색을 한다는 생각을 못했던 거지. 처남이 자기 누나(정경심 교수)한테 전화를 해서 묻는데, 누나도 상황을 모르니까 남편(조국 지명자)을 바꿔주고 그랬다고 하더라고…”
- 최강욱 전 공직기강비서관
조국 후보자와 통화를 한 뒤, 최 비서관은 검사 출신인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을 통해 상황파악에 나섰다. 박 비서관은 윤석열 검찰총장, ‘조국 수사’를 사실상 지휘한 한동훈 대검 반부패부장과 가까운 사이였고, 청와대에서 검찰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최강욱 전 비서관에 따르면, 역시 검찰 출신인 김오수 법무부 차관조차 검찰과 연락이 안 돼 최강욱 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을 정도였다.
8월 17일 아침 전해진 검찰의 강제수사 소식으로 뒤숭숭했지만, 국무총리 주재 국무회의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박상기 법무부장관은 국무회의가 끝나기 무섭게 과천 법무부로 향했다. 그리고 가는 길에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강욱 전 비서관은 나중에 이날 통화 사실에 대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윤석열 총장이 박상기 장관과의 전화통화에서 노골적으로 ‘조국 낙마’를 요구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박상기 장관이 국무회의가 끝나고 법무부(과천 정부종합청사)로 돌아가는 길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윤석열 총장에게 전화를 한 거예요. 그 전에는 전화를 안 받았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전화를 받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박 장관에게 ‘(조국 후보자가) 이제 그만 물러나라는 뜻으로 제가 (압수수색을) 지시했습니다’ 이렇게 말했다는 거지. 상식적으로 윗사람인 장관이 ‘총장, 아침에 압수수색 어떻게 된 겁니까’ 이렇게 물으면 보통은 ‘지금 꼭 해야만 되는 상황이 되서 불가피하게 이렇게 됐는데, 다녀오시면 상세하게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심려를 끼쳐서 죄송하고, 크게 걱정하실 일은 아닙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게 맞잖아요. 그런데 윤 총장은 박 장관에게 ‘예, 그만 내려오라는 뜻으로 제가 지시를 한 겁니다’ 이렇게 말했다는 거야. 그 말을 듣고 박상기 장관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고 하더라고…”
-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그런데 지난 6월 초 뉴스타파와 인터뷰를 가진 최강욱 전 비서관도 몰랐던 일이 있었다. 검찰이 조국 장관 후보자와 관련된 강제수사에 돌입한 지난해 8월 27일, 박상기 장관이 윤석열 총장에 전화를 했을 뿐 아니라 모처에서 직접 만난 사실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뒤에서 다시 설명한다.
▲ 황희석 변호사 (전 법무부 인권국장)
“검찰 수사 시작된 날, 박상기 장관과 윤석열 총장이 만났다”
뉴스타파는 지난해 8월 27일 상황을 보다 자세히 취재하기 위해, 당시 법무부 인권국장으로 일했던 황희석 변호사도 만나 인터뷰했다. 그에게도 지난해 8월 27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황 변호사는 “그 날 박 장관이 매우 화가 난 상태였고, 분위기가 우울했다”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 검찰의 행태를 ‘쿠데타’라고 단정했다.
“이거는 쿠데타다, 내가 딱 그랬어. 사실은 이건 쿠데타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 황희석 변호사 (전 법무부 인권국장)
황 변호사는 소위 ‘조국 사태’가 시작된 8월 27일 자신이 겪은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장관께서 국무회의 가시는 날엔 오전 간부회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제 사무실에 앉아서 평상시와 똑같이 업무를 보고 있는데 검찰이 조국 후보자와 관련된 압수수색에 나섰다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순간 ‘이게 뭐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2시쯤인가 장관님이 국무회의를 마치고 법무부로 오셔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찾아뵙고 오전에 있었던 검찰 압수수색 등에 대해서 대화를 나눴죠. 저는 ‘이거 큰일이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고, 장관님도 국무회의에서 나온 얘기 등을 전하면서 ‘심각하다’고 말씀하셨고요.”
- 황희석 변호사 (전 법무부 인권국장)
그리고 그 동안 한번도 알려지지 않았던 일을 얘기했다. 검찰이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와 관련된 압수수색을 했던 지난해 8월 27일, 박상기 장관이 윤석열 총장을 직접 만났다는 것이다.
“장관님께서 저와 대화를 나누고 얼마 있다가 윤석열 총장을 만난다고 나가셨습니다. 얼마나 답답하면 윤석열 총장을 직접 만나셨겠어요.”
- 황희석 변호사 (전 법무부 인권국장)
황 변호사에 따르면, 박 장관은 국무회의를 마치고 법무부로 돌아오는 길에 윤석열 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약속장소는 대검찰청과 가까운 서울 반포의 M호텔, 두 사람이 만난 시간은 오후 4~5시 사이. 황 변호사는 “박 장관과 윤 총장이 1시간 넘게 만나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상기, “윤석열, 1시간 넘게 사모펀드 얘기만...”
지난해 소위 ‘조국 사태’가 시작된 후, 언론의 주된 관심 중 하나는 검찰과 법무부, 청와대가 당시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움직였는가였다. 검찰이 청와대는 물론 법무부에도 압수수색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궁금증을 키웠다.
지난해 검찰이 인사청문회를 앞둔 조국 후보자에 대해 강제수사 결정을 내린 배경은 지금도 미스터리다. 1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검찰의 정치행위’, ‘정당한 수사권 집행’ 주장이 맞서고 있다. 이 때문에 강제수사 당일 박상기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만나 나눈 대화내용은 중요하다. 수사 착수 당시 결정권자의 의도와 발언은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뉴스타파는 황희석 변호사와의 인터뷰를 마친 뒤, 박상기 전 장관에게 연락해 황 변호사의 증언이 사실인지 물었다. 박상기 전 장관과 두번째 인터뷰를 해야 했던 이유다. 첫번째 인터뷰 만큼이나 오랜 시간 인터뷰를 고사했던 박 전 장관은 결국 추가 인터뷰에 응한 뒤 조심스레 말을 시작했다. 황 변호사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내가 윤석열 총장에게 만나자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1시간 넘게 서초동 인근에서 만났습니다. 너무 화가 난 상태였기 때문에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만난 시간, 만나고 나온 시간을 모두 체크했습니다. 1시간 넘게 만났더군요.”
-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
박 전 장관의 증언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기에 앞서, 검찰이 조국 전 장관 관련 강제수사에 돌입한 8월 27일 상황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검찰이 얼마나 많은 증거, 범죄단서를 가지고 강제수사를 결정했는지, 검찰의 당시 수사착수가 무리했던 건 아닌지 여부를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국 전 장관이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건 지난해 8월 9일이었다. 그리고 같은 달 14일부터 본격적으로 언론발 의혹이 제기됐다. ‘조 후보자 가족의 사모펀드 74억 원 투자 약정 의혹’(8월 14일), ‘조 후보자 가족의 위장이혼과 부동산 위장거래 의혹’(8월 16일), ‘조 후보자 딸의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장학금 수령 의혹’(8월 19일), ‘조 후보자 딸의 의학논문 제1저자 등재 의혹’(8월 20일) 등이 대표적이다. 검찰이 20여 곳이 넘는 조국 장관 지명자 관련 압수수색을 진행한 8월 27일은 여야 합의로 조 후보자 인사청문회 날짜(9월 2~3일)가 결정된 다음날이었다.
당시만 해도 조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 중 언론이 가장 화력을 쏟아부은 대상은 자녀 입시비리였다. 조 후보자의 딸이 다녔던 고려대와 서울대에서 조 후보자 사퇴를 촉구하는 학생들의 촛불집회가 시작(8월 23일)된 것도 여론을 흔들었다. 반면에 초기부터 터져나온 사모펀드 관련 의혹, 다시말해 조국 후보자 부인인 정경심 당시 동양대 교수가 돈을 댄 사모펀드 투자에 조 후보자가 어떻게 관련됐는지는 연결고리가 흐릿하던 때였다. 그래서일까. 8월 27일 검찰이 압수수색을 집행한 20여 곳 중 상당수는 서울대, 고려대, 부산대 등 조 후보자 자녀의 입시비리와 관련된 곳이었다.
▲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왼쪽)과 윤석열 검찰총장
박상기, “윤석열, ‘부부일심동체’ 거론하며 사모펀드 의혹만 설명”
그런데 박상기 전 장관에 따르면, 지난해 8월 27일 박상기 장관을 만난 윤석열 총장은 1시간 넘는 시간 동안 주로 조국 후보자 가족과 관련된 사모펀드 의혹만 제기하며 검찰 수사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윤석열 총장이 조국 후보의 딸 입시 비리 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주로 사모펀드 문제만 얘기했다”는 것이다. 박 전 장관은 윤 총장이 “사모펀드는 사기꾼들이나 하는 짓인데, 어떻게 민정수석이 그런 걸 할 수 있느냐”는 말을 반복했다고 말했다.
“당시 언론에서 가장 문제를 삼았고, 또 검찰이 압수수색 한 곳 중 상당수가 조국 지명자의 자녀 입시 문제와 관련된 곳이었어요. 그런데 내 기억에 윤 청장은 나를 만난 자리에서는 입시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말을 안 했습니다. 사모펀드 이야기만 했어요. 사모펀드는 다 사기꾼들이 하는 것이다. 내가 사모펀드 관련된 수사를 많이 해 봐서 잘 안다. 어떻게 민정수석이 사기꾼들이나 하는 사모펀드에 돈을 댈 수 있느냐... 그 얘기만 반복했습니다.”
-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
박 전 장관은 당시 윤석열 총장이 ‘부부일심동체’ 같은 단어를 써 가며 강제수사의 필요성을 주장했다고도 말했다.
“과거 문제가 많았던 사모펀드 사건과 똑같다는 겁니다. (윤석열 총장이)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있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부부일심동체라는 표현을 썼죠. 부부일심동체이니 정경심 교수가 사모펀드 관련해서 문제가 있다면, 그건 곧 조국 장관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
이어서 박 전 장관은 “윤석열 총장이 강한 어조로 ‘조국 전 장관을 낙마시켜야 한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다음은 박상기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
(기자) “그럼 그날 1시간이나 넘게 그런 얘기만 반복하신 건가요?”
(박 전 장관) “그렇죠.”
(기자) “그러니까 결국은 ‘조국 법무부장관은 안 된다’라는 뜻이네요.”
(박 전 장관) “그렇죠. ‘부부 일심동체다. 민정수석이 그런 거(사무펀드) 하면 되느냐’는 것이었죠. 도덕적 판단부터 시작해 가지고 법적으로도 문제라는 것이었고요.”
(기자) “그렇게 말을 했습니까?”
(박 전 장관) “결론은 ‘조국 후보자는 법무부 장관으로 안 맞다’는 거죠.”
(기자) “본인이 그렇게 말을 합니까? 장관 낙마라고?”
(박 전 장관) “낙마라고 이야기해요. 법무부장관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
(기자) “본인 입으로요?
(박 전 장관) “네.”
- 박상기 전 장관 인터뷰 (2020.6.)
박 전 장관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이날 회동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은 수사를 넘어 사실상 대통령의 임명권과 정치에 적극 개입했음을 법무장관 앞에서 스스로 밝힌 셈이 된다. 박 전 장관은 8월 27일 만남에서 윤석열 총장의 말을 들은 뒤, “조국 후보자와 관련된 검찰 수사가 처음부터 의도를 가지고 기획, 실행됐음을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윤석열 총장을 만나고 나서, 나는 검찰의 수사 의도에 대해 결론을 내렸습니다. 검찰의 목표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낙마였던 것이죠. 인사청문회가 끝나기 전에 빨리빨리 수사를 진행해서 낙마를 시키는 것이 검찰의 의도였던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서둘러서 압수수색을 했던 거죠.”
-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
▲ 2019년 10월 17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석열 검찰총장
박상기, “검찰개혁, 검찰 스스로 할 수 없다”
지난해 검찰이 조국 전 장관 수사에 나서면서 겉으로 내걸었던 명분은 고소, 고발이었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10여 건의 고소, 고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사에 나섰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었다. 지난 수십년간 대통령이 지명한 고위공직자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검찰이 고소, 고발을 이유로 수사권을 발동한 사례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고가 아파트 매입, 위장전입과 증여세 탈루, 금전 거래가 있는 기업가와의 동반 골프여행, 부인의 명품 쇼핑 등 법적·도덕적 문제가 불거져 낙마한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도 천 후보자를 수사하라는 고발과 목소리가 빗발쳤지만, 검찰은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천 후보자가 낙마한 이후 검찰은 국회의원에게 천 후보자의 개인정보를 넘긴 공무원을 찾는 수사에 열을 올려 빈축을 샀다.
지난해 7월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때도 마찬가지였다. 청문회 직전 2012년 벌어진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의 뇌물수수 사건과 관련해 자유한국당 주광덕 의원이 검찰에 제출한 고발 사건은 1년이 되도록 아무런 조사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당시 주광덕 의원이 고발한 대상은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이었지만, 사실상 윤 전 서장의 비호세력으로 의심받고 있던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후보자를 겨냥한 고발이었다. 소위 ‘조국 사태’는 이 고발 이후 두 달도 안 돼 벌어졌다.
뉴스타파 인터뷰에서 지난해 시작된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 관련 수사가 사실상 ‘검찰총장이 직접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 후보자 낙마를 목적으로 기획, 결정한 강제수사’라고 증언한 박 전 장관은 인터뷰를 마치며 이런 말을 남겼다. 어느 조직과 마찬가지로, 검찰 스스로는 검찰개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검찰개혁은 검찰 스스로는 절대 안 됩니다. 그건 어느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권력기관을 개혁한다고 했을 때, 그 권력기관 스스로 무슨 개혁을 할 수 있습니까, 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데... 검찰은 국민들을 위한 공복입니다. 평범하지만 그것이 핵심입니다. 권력을 감시하라는 특권을 검찰이 명령받은 것도 아니고요.”
-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
뉴스타파 한상진 greenfish@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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