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과 법다움 - - 몽지&릴라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런저런 동화책들과 함께하게 된다. 기억에 남는 동화 제목이 있다.
'내 이름은 나답게'. 엄마를 교통사고로 잃은 '답게'라는 이름의 아이가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고모, 사촌들과 함께 새로운 감정을 배우며 커가는 성장동화이다. 아빠는 답게에게
나답게 살아가라는 뜻으로 '답게'라는 이름을 그렇게 붙여줬다.
나답게 산다는 말, 이것이 요즘 사람들의 화두와 같은 주제이다. 나만의 능력과 독특함,
나만의 삶의 스타일에 대해 요즘처럼 우호적인 시대는 없었다. 이삼십 년 전만 해도 나는
중요하지 않고 집단(集團)이 중요했었다. 집단을 위해 줄을 서고, 질서를 유지하며, 공동의
가치관을 따르고,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도덕, 윤리, 풍습을 개인의 개성 앞에 두었다.
나답게 산다는 말, 나다움은 나를 중심에 놓고 있다. 나의 능력, 나의 자질, 나의 바램을
찾아 그것들을 계발하고 그것들이 가리키는 곳으로 나아가는 것에 삶의 행복을 둔다.
나만의 개성을 찾고 계발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사회가 자유로워지며 다양한
가치관과 삶의 모습을 허용하는 분위기는 권장할만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 나다움이라는 것이 마음공부에서 자칫 잘못 이해되면 큰 걸림돌이 된다.
나다움의 중심에는 '나'가 있다. 나의 정체성을 '의식하고 활동하는' 나에 두기도 하고 나의
기질이나, 생김새, 능력, 성격, 욕구에서 나다움을 찾는다. 이런 나 혹은 나다움의 기준이
실체가 없는 허망(虛妄)한 분별의식(分別意識), 분별심(分別心), 분별하는 생각이라는 것이다.
나의 정체성이 이런 분별의식(分別意識), 분별심(分別心), 분별하는 생각일 때 우리는 삶과
하나가 될 수 없다. 나는 사회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능력, 자질, 성향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 나다움의 기반은 항상 나 아닌 타인과 비교하는 데에 있다. 나다움을 찾고 유지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타인을 의식하고 타인의 성향과 조건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마음공부를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나를 돌아보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끝끝내 나를 내려놓고 돌아보지 않기란 쉽지 않다. 이런 나다움을 선공부에서도 나만의
스타일로 유지하려고 한다. 나의 기질은 저 사람들과 다르다. 나는 다른 식으로 공부해야 한다.
나는 이런 성향의 사람들과 맞는다 등등. 물론 자신이 살아오면서 익숙해진 패턴과 비슷한
선지식들을 만날 수 있다. 거기에서 공감하고 더 친근감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자신을 놓아버리는 데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마음공부에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런 나다움이 끝까지 고수된다면 이것은 마음공부에서 크게 잘못된 길로 나아가게 한다.
나와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그곳을 떠날 수 있다. 나와 맞는 인연이 자아를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한다.
법(法)이란 무엇인가? 법(法)은 깨뜨릴 수 없는 법칙이다. 법(法)은 몰개체성이다. 법(法) 이것은
물건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니다. 법(法) 이것은 사람들이 흔히 보통 나라고
동일시(同一視)하는 몸, 느낌 감정, 생각, 성격, 욕구 욕망, 분별의식 분별심 이전의 일이다. 법(法)
이것은 어떠한 것도 아니다. 법(法) 여기에 나 혹은 나다움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법(法)이
이렇다고 해서 우리의 공부가 나는 물론 나다움을 모두 버리라는 말은 아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진정한 나다움'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나다움이란 나의
몸, 생김새, 느낌 감정, 생각, 성격, 욕망 욕구, 감정적 지향성, 능력, 분별의식 분별심이 텅~빈 마음에
닿아있을 때 저절로 드러난다. 나다움이 실체가 없는 허망한 분별의식 분별심 분별하는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느냐, 아니면 텅~빈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느냐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하늘과 땅 차이로 벌려
놓는다.
삶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 욕구와 삶의 인연이 충돌하는 지점을 수시로 만난다. 내 마음은 A를
선택하고 싶은데, 삶은 나에게 B의 길을 선택하도록 요구한다. 사람들은 이런 충돌 갈등의 순간 갖은
감언이설로 스스로를 설득하며 내가 원하는 길이 옳은 방향이라는 변명을 할 수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다움이고,
행복한 길이라고 여길 것이다. 사람들의 삶은 늘 이런 식이었다. 삶에서의 고비마다 스스로를 위해
선택하려고 스스로에게 갖은 변명을 하고 타인을 설득했다.
그런데 그래서 결국 행복했는가? 내가 원하는 것을 충분히 얻었는가? 붓다는 자신의 가르침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법(法)을 있는 그대로 맛보게 하여 삶과의 전쟁을 끝내도록 한다고 말했다. 법(法)이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가리키는 방편(方便)이다. 지금 여기서 경험하는 세계의 실상이다.
이 세계는 물질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정신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이 세계,
이 삶, 이 인생은 텅~빈 마음이 조건적(條件的)으로 드러난 실체가 없는 모습이다. 분별의식 분별심
분별하는 생각이 활동을 하면 나도 있고 남도 있고 세계도 있는 것처럼 드러난다. 그러나 이 세상 이
모든 것들은 실체가 없다. 분별하면 드러나고 분별이 없으면 나도 없고 세계도 없다. 이것이 깨뜨릴 수
없는 법(法)이다. 이것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다. 이 사실이 명확해진다면 삶과 전쟁을 벌이지 않게 된다.
선택의 순간 '나는?', '나의 길은?'이라는 분별하는 말이 떠오르지 않게 된다. 그냥 산다 주어진 대로.
삶과 싸우지 않고 산다. 이렇게 사는 길이 무의미하다는 생각도 없고 값지다는 생각도 없다. 즉 분별하지
않고 그냥 산다.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시는 일에 '나다움'이나 '가치'는 없다. 그냥 삶이 내게 요구하면 그렇게
응답할 뿐이다. 여기에 '내 인생', '내가 이룰 일', 그런 잡념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마음일 때 나에게
주어진 나만의 능력, 나만의 자질이 저절로 아무 장애 없이 드러난다. 그러나 본인에게 '이게 나답다'는
생각이 없다. 삶과 하나 되어 갈등과 다툼이 사라질 때 거기에 참된 행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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