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창을 열어라 / 틱낫한 스님
어느 날 오후, 나는 암자로 돌아오자 모든 문과 창문을 닫았다. 바람이 많이 불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엔 창문이 열려 있어 나는 시원한 푸른 숲을 볼 수 있다. 태양은 빛나고 새들은 아름답게
지저귀고 있다. 나뭇가지가 산허리를 가로질러 뻗쳐 자라는 것을 보기 위해 잠시 글 쓰는 것을
쉬어야겠다. 바람, 창문, 푸른 숲, 태양, 새들 그것들의 존재는 바로 나의 존재이다.
몰입(沒入)하기 위해 우리의 감각의 창을 반드시 닫아야 할 필요는 없다. 명상가의 시작은 보고
듣지 않는 것이 유익한 것을 아는 것일 수도 있지만 몰입은 감각의 창들을 열어두고도 가능하다.
자신의 호흡이나 다른 대상에 쉽게 집중, 몰입하기 위해서 말이다.
몸 속에서만 존재하는 대상들을 감지해 보라. 그것들은 볼 수도, 들을 수도, 냄새를 맡거나 맛을
볼 수도 없는 것들인데도 우리는 우리 몸 안에 존재하는 그것들을 무시할 수 없다. 치통이 있거나
다리에 쥐가 났을 때 우리는 통증을 느낀다. 모든 감각기관이 건강하다면 건강한 느낌이 들 것이다.
불교에서는 감각의 세 가지 종류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만족, 불만족, 그리고 만족도 아니고 불만족도
아닌 중립이 그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중립을 우리가 느낀다면 중림은 만족과 유사한 감정이다.
몸 안의 감각은 우리가 그것을 느끼든 그렇지 않든 하나의 계속적인 흐름이다. 실제로 우리의 ‘모든
감각의 창을 닫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가 감각의 창을 닫는다 하더라도
마음, 의식, 생각은 계속해서 활동을 할 것이고, 우리는 심상과 개념을 얻고, 기억으로부터의 생각들이
올라오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명상은 생각과 느낌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분리하여 마음이 스스로를 정관(靜觀)하는
순수한 상태로 돌이켜 “진실한 마음”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은 꽤 매력적인 이야기지만 기본적
으로 우리를 잘못 안내하고 있는 말이다.
마음은 생각과 느낌의 영역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데 어떻게 마음이 마음을 떠나 멀어질 수 있겠는가?
내 앞에 있는 나무를 볼 때 마음이 내 밖으로 나가 숲으로 들어간 것도 아니고, 나무를 마음 안으로 들인
것도 아니다. 마음은 나무라는 대상에 초점을 맞추지만 마음과 나무 그들은 별개의 다른 대상이 아니다.
내 마음과 대상인 나무는 하나이다. 숲은 하나의 놀랄만한 마음의 표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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