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국민 기후변화 인식 '낙제점'

나는 앞으로 고기를 덜 먹을 수 있을까

장백산-1 2020. 8. 30. 14:48

나는 앞으로 고기를 덜 먹을 수 있을까

 

코로나 이후 기존 食문화에 대한 고민·성찰 늘어

대량 축산 문화가 바이러스 창궐 주범 인식 확산

세계 최대 채식 국가 인도, 고대엔 소고기 즐겨

환경 파괴·고갈로 목축 어려워지자 육식 포기

 

/일러스트=이철원

 

코로나 사태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여겨온 기존의 생활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나의 경우는 식생활이 그렇다.

 

"야채는 가축이나 먹는 것"이라고 농담처럼 말할 정도로 육식을 즐겨왔지만, 계속 '이렇게

고기를 먹고 살아도 될까'를 고민하게 됐다. 고기를 먹는다고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건 아니지만, 소 · 돼지 · 닭 등 사람들이 먹기 위한 고기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과정이나

방식이 코로나 확산과 새로운 바이러스 출현에 취약한 환경을 만들었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고 있다. 이와 함께 환경보호, 동물 복지 등을 위해서는 육식 대신 채식 또는 육식을 최소화하고

식물 위주로 먹는 '플랜트 베이스드 다이어트(plant-based diet · 자연 식물식)'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의식주(衣食住) 중에서 식(食)이 가장 바꾸기 어렵다고들 한다.
한국인만 봐도 옷은 한복에서

서양양복으로 갈아입고, 집은 한옥대신 서양식 주택 · 아파트에서 살지만 음식은 밥과 김치,

된장 ·간장 · 고추장을 버리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동안 즐기던 육식을 버리고 채식으로 식단을

바꿀 수가 있을까.

 

선례(先例)가 있기는 하다. 바로 인도(印度)다.

잘 알려졌다시피 인도는 세계 최대 채식주의 국가다. 모든 식품에 '베지테리언 인증'
마크를

붙여야 할 정도로 채식에 엄격하다. 인도연방 헌법에는 주(州)에서 법률을 제정할 때 '소와

송아지, 혹은 다른 젖 짜는 동물이나 수레 끄는 동물 도살 금지'를 요구한다. 특히 암소를

신성하게 여긴다. 힌두 신학자들은 암소 안에 있는 남신(男神)과 여신(女神)의 수가 3억3000이며,

암소를 먹이고 돌보면 다음에 올 21세대가 열반을 얻는다고 말한다.

 

지금은 이렇게 철저한 채식주의지만 고대 인도에서는 소를 신성시하기는커녕 즐겨 먹었다.

힌두교 경전 베다(Veda)를 보면 소를 신성시하지 않았고, 소고기를 금지하지도 않았다.

인도 카스트제도에서 가장 높은 브라만 계급은 엄격하게 채식을 지키지만, 놀랍게도 베다

경전이 성립된 베다 시대(기원전 1500~기원전 600년)에는 소를 잡아서 신들에게 올리는

사제(司祭)들이었다. 베다 시대 사제들과 전사들은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남은 고기는

주민들 또는 부하들에게 나눠줬고, 이를 통해서 권력을 확인하고 확고히 하며 지배층으로

올라섰고 그 지위를 유지했다.

기원전 1500년쯤 인도에 들어와 선주민을 정복하고 지배 계층이 된 아리아인은
원래 전사

유목민이었다. 소떼와 양떼를 몰고 다니는 목축을 주로 하면서 부수적으로 농사도 지었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소를 풀어 키울 땅이 부족해졌다. 아리아인들은 목축을 포기하고 농업

중심으로 돌아섰다. 소나 양을 키워서 그 고기를 먹는 것보다, 곡물을 재배하는 편이 훨씬

더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테이크 1인분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소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소에게 먹여야 하는 곡물을 파스타로 만들면 24인분이 나온다는

분석도 있다.

인도가 농경 중심 사회로 전환하면서 일반 서민은 예전처럼 소고기를 쉽게 먹지 못하게 됐다.

키우는 소의 숫자가 크게 줄기도 했지만, 농사를 짓기 위해 땅을 갈아엎으려면 쟁기를 끌어줄

소가 필요했다. 소똥은 농지를 기름지게 해주는 훌륭한 거름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배 계층인

브라만과 크샤트리아(왕 · 무사 계급)는 육식을 포기하지 않았다. 제사를 핑계로 계속 소를 

잡아먹었다.

계층 간 불평등과 갈등이 커졌다. 고기를 먹지 못하는 이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까지 갔다.

세계 최초로 살생을 금하는 종교인 불교가 기원전 500년쯤 인도에 등장했다. 대중은 자신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불교에 열광했다. 지배층이 차츰 위기의식을 갖는다. 그리고는 놀라운 자기

혁신을 한다. 브라만들은 동물 희생과 육식을 포기한다. 소를 신격화한다. 스스로를 소를 죽이는

도살자가 아니라 소의 숭배자이자 보호자로 설정한다. 베다 경전에 묘사된 제물은 은유나

상징적 행위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힌두교는 신흥종교 불교에 흔들리지 않았고, 브라만과

크샤트리아는 지배력 유지에 성공한다.

인도가 세계 최대 채식주의 국가가 된 과정을 보면 인간이 입맛 내지는 식성을
바꾼다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육식이건 채식이건 다른 무엇이건, 인류와 지구를 위해

최선의 식단을 고민해봐야겠다.

-조선일보 [김성윤의 맛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