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리도 두려운가?
사람들은 죽음, 어둠, 두려움과 친해질 필요가 전혀 없다. 그래서 그것들과 이별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에게 영원히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 죽음, 어둠, 두려움같은 생각은 그대의 집착심 때문에 생긴다.
그것들에 대한 우정이 그 집착심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죽음, 어둠, 두려움과 친해지고 우정이 쌓인다고 해서 자신이 더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게 될 거라고
착각하지 말라. 죽음, 어둠, 두려움과 친해지면 오히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그 과정을 방해할 것
이다. 사실 그렇게 친해진 죽음, 어둠, 두려움은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그 과정을 더욱 방해하기
마련이다. 그런 죽음, 어둠, 두려움은 그대에게 이렇게 속삭이면서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그대를
친밀한 방식으로 방해할 것이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그런 짓은 하지 마라. 아무런 보상도 없다. 허무함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런
허무함을 생기찬 일상으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을 경계해라. 차라리 사물에
집착하는 게 낫다.’라는 친밀한 방식으로 그대가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러니 죽음, 어둠, 두려움과 친해질 필요가 전혀 없다. 죽음, 어둠, 두려움은 단지 허망한 생각, 망상,
환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면 그것들은 저절로 사라져버린다.
무엇이 그리도 두려운가? 사람들은 벌거벗은 채로 아무것도 없이 세상에 태어났다. 은행통장을 갖고
태어난 게 아니어도 두려울 건 하나도 없었다. 완전히 벌거숭이로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대는 마치 황제
처럼 세상에 등장했다. 그 어떤 황제도 어린애가 태어나는 것처럼 그렇게 당당하게 세상에 나타나지는
못할 것이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은 두
번째 맞는 탄생이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면 그대는 다시 천진난만한 어린애가 된다. 어린애 처럼
벌거벗고 순진무구한 상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던 상태가 된다.
사실이 이러한데 그대는 무엇이 그리도 두려운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탄생을 두려워할 수는 없다. 탄생은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삶을 세상을 두려워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삶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그대가 무얼 하고 무엇이 되더라도
죽음은 반드시 일어날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이 그러한데 무엇이 그리도 두려운가?
오쇼의 <초월의 명상> 중에서
'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마음에 불을 지피겠소 (0) | 2020.10.18 |
---|---|
잠이 덜 깬 아침의 잠꼬대 (0) | 2020.10.15 |
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문제 (0) | 2020.10.12 |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0) | 2020.10.12 |
선(禪) 그리고 사랑 (0) | 2020.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