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시(十如是)와 일념삼천(一念三千)
법화경에 붓다께서 “그만 두어라. 사리불이여”라고 했습니다. 이 대목이 일지(一止)입니다. 부처님이 세 번을 그만두라고 거절하시고 사리불이 세 번을 청하는 삼지삼청(三止三請)의 첫 번째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이 깨달은 경지는 참으로 희유하고 알기 어려운 도리이며, 오직 깨달은 사람만이 제법의 실상을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이 깨달은 진리(眞理)는 제법(諸法)의 실상(實相), 즉 이 세상 모든 것의 진정한 모습을 꿰뚫어 보는 힘입니다. 그렇게 꿰뚫어본 모든 사물(제법)의 진정한 진실한 모습이 십여시(十如是)입니다. 즉 모든 사물이 현상으로서 외부에 나타나는 때의모습(相), 성질(性), 본질(體)은 어떠한지, 또 그 사물이 지닌 힘(力), 작용(用)은 어떠한지, 그 사물의 성질과 힘이 서로 작용하면서 변화해가는 경우는 어떤 조건(緣), 어떤 결과(果)를 낳는지, 그 이면에는 어떤 힘이 나오는지 하는 것이 십여시(十如是)입니다.
“이른바 모든 법, 모든 사물, 모든 현상의 이러한 모양(如是相), 이러한 성품(如是性), 이러한 본체(如是體〕, 이러한 힘(如是力), 이러한 작용(如是作), 이러한 원인(如是因), 이러한 조건(如是緣), 이러한 결과(如是果), 이러한 보응(如是報), 이러한 시작부터 끝(本末)까지가 구경(究竟,결국에는) 平等이니라.”고 한 것이 바로 십여시(十如是)입니다. 하나씩 설명을 드리자면,
여시상(如是相)은 사물의 모습, 형태를 말하고
여시성(如是性)은 사물의 성질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한 송이 꽃조차도 형태가 있고 고유한 성질이 있습니다.
여시체(如是體)는 상(相)과 성(性)의 의지처가 되는 본질이고,
여시력(如是力)은 모든 사물의 잠재적인 능력입니다.
여시작(如是作)은 사물의 작용, 능력입니다.
여시인(如是因)은 인연과보 가운데 생기고 변화하는 직접적인 원인이고,
여시연(如是緣)은 모든 사물의 조행연(助行緣)으로, 직접원인을 돕는 간접적인 연(緣), 즉 조건(條件)입니다.
여시과(如是果)는 모든 사물의 인과 연으로 가합(假合)으로 생긴 결과結果)이고,
여시보(如是報)는 모든 사물의 결과가 나타나고 남아서 이어지는 것입니다.
여시본말구경등(如是本末究竟等)은 처음의 상(相)부터 여시보(如是報)까지의 전부가 3제(諦)의 묘한 이치를 포함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결국엔 모두가 한결같이 공성(空性)으로 평등(平等)한 통일체로서의 하나라는 뜻입니다.
남자도 여자도 꽃도 동물도 부처도 중생도 전부 구경(究竟)에는 하나로 통일된 공성(空性)으로 돌아갑니다. 공성(空性)이 본바탕이 되어서 세상 모든 사물/현상이 평등(平等)합니다. 이와 같이 세상 모든 사물/현상이 평등(平等)하지만 각각에 따르는 인(因) 연(緣) 과(果) 보(報)가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다른 모습(사물/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일 뿐입니다. 이 말을 좀더 자세히 설명하면 그 안에 ‘일념삼천(一念三千)’이 됩니다. 이것은 부처님을 위시해서 모든 중생의 한 순간의 삶 속에 3,000가지 속성이 내포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법화경을 공부할 때 이 ‘십여시(十如是)’를 공부하면 ‘일념삼천(一念三千)’이고, ‘일념삼천’을 공부하면 ‘십여시(十如是)’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을 위시해서 모든 중생이 한 순간에 3,000가지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도 바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의 삶 속에 3,000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각자의 내면에는 부처와 같은 마음상태도 있지만 아수라의 마음상태도 있고 지옥의 마음상태도 있습니다. 누가 옆에서 말 한마디만 해도 금방 기분이 상해서 화가 나면 바로 지옥에 떨어지지요. 이런 가능성을 3,000가지나 갖고 있는데 3,000이라는 수가 어떻게 나오는지 알아봅시다.
이 세상은 십계(十界) 즉 열개의 세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깨달음의 세계로서의 불계(佛界), 보살계(菩薩界), 연각계(緣覺界), 성문계(聲聞界)와 미혹의 세계로서의 천상계(天上界), 인간계(人間界), 아수라계(阿修羅界), 축생계(畜生界), 아귀계(餓鬼界), 지옥계(地獄界) 열 가지 세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십계(十界)가 각각의 십계(十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석가모니부처님에게도 보살의 속성이 있고, 연각·성문·천상·인간·아수라·축생·아귀·지옥의 속성이 다 포함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인간들도 한 순간의 삶에서 지옥과 아수라뿐만 아니라 성문·연각·보살. 부처의 경지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열 가지에 각각 열 가지를 더해서 100가지가 됩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신통하고 묘한 것입니다. 당장에 노여우면 지옥이고, 탐심이 들면 아귀요, 본능대로 움직이면 축생이고, 이기심에 서로 으르렁거리며 다툰다면 아수라이고, 평온한 마음일 때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전을 듣고 배워서 환희심에 젖어있을 때는 천상이라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차 있으면 보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정말 마음이 맑고 고요해서 모든 사물의 실상을 꿰뚫어보는 지혜가 있으면 부처인 것입니다.
이런 열 가지 십계(十界)의 속성이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아무리 못난 사람일지라도 어느 한 순간은 부처일 수 있고, 어느 순간은
보살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천하에 나쁜 흉악범일지라도 어느 한 순간은 부처일 수 있고 때로는 보살도 될 수 있습니다.
십계가 각각 십계를 포함하고 또 거기에 십여시(十如是) 즉 사물의 열 가지 실상의 모습을 각각 더하면 1,000가지가 됩니다. 이 1,000가지의 낱낱에 삼종세간을 배치하면 3,000가지 속성이 됩니다. 삼종세간(三種世間)은 중생세간(衆生世間), 국토세간(國土世間), 오온세간(五蘊世間)입니다.
중생세간은 부처님의 정보(正報)로 일체 중생, 우리와 같은 사람, 꽃과 동물이 중생세간입니다. 국토세간은 부처님의 의보(依報)로 중생이 살고 의지하는 환경인 국토를 말합니다. 꽃이면 꽃이 의지해 사는 환경이 있고, 사람은 사람이 의지하여 사는 환경이 있고, 동물도 의지하여 사는 환경이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중생마다 색(色),·수(受),·상(相),·행(行)·식(識), 즉 오온에 차이가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한 순간의 삶 속에 3,000가지의 속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3,000가지 속성 가운데 어떤 속성의 세력이 가장 강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지금처럼 이렇게 법화경을 공부하고 있을 때는 부처님의 힘이 제일 강한 것입니다. 아귀, 축생이 다 물러가고 부처님이 나와 있는 것이니, 지금 이 순간은 여기 이 자리에 있는 분들이 다 부처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길어져서 하루 24시간 가운데 20시간 동안 이어진다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처입니다.
우리가 수행하고 공부하는 이유는 부처님이 나와 있는 시간을 10분에서 1시간으로 늘이고, 그 1시간이 4시간 10시간 24시간으로 이어져 마침내 온 종일 부처로 살아가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불광출판사 무비스님 법화경강의/ 작성자 순야sun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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