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군국주의 세례받은 '일본 사람 박정희' 밝혀내고 있어요"
강성만 입력 2020.10.25. 18:46 수정 2020.10.25. 20:06
[짬]현대사기록연구원 송철원 원장
송철원 원장에게 학생운동 동지인 시인 김지하 근황을 묻자 “생각이 달라진 뒤로는 연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김 시인과 함께 70년에 술집 레지스탕스를 열기도 했다. “김지하, 김민기와 함께 홍상수 감독 모친인 전옥숙씨 문간방 식객으로 지내기도 했죠.” 강성만 선임기자
사단법인 현대사기록연구원 송철원(78) 원장은 지난 9일 법인 설립 12돌을 맞아 동네 주민들에게 떡을 돌렸다. 연구원은 설립 이후 박정희·전두환 군사 정부에서 민주화 운동을 한 300여 명의 구술을 채록하고 영상도 만들었다. 올해는 전두환 정권이 유화 정책을 편 1983~1984년 무렵에 활동한 민주화 인사들의 증언을 받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용역 사업으로, 박근혜 정부 후반부 2년에는 지원이 끊겨 중단해야만 했단다.
<박정희 쿠데타 개론> 표지
그는 1964년 6월 박정희 정권의 한-일 협상에 반대해 일어난 6·3 시위의 기폭제가 된 인물이다. 서울대 정치학과 4학년이던 그해 4월 박정희 정부의 학원 사찰 문건을 입수해 폭로했고, 한 달 뒤에는 박정희 정권에 정면 도전하는 첫 대규모 학생 시위인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집회에서 친구 김지하 시인이 쓴 ‘장례식 조사’를 직접 낭독했다. 집회 뒤 정보기관에 끌려간 그는 석방 이후에 고문을 당한 사실을 언론에 폭로해 박정희 정부를 궁지로 몰았다. 이 사건 여파로 중앙정보부 직원 셋이 실형을 받았다. 6·3 시위가 있던 날에는 세브란스 병원 환자복을 입고 네 명의 학우가 잡은 들것에 실려 동숭동에서 광화문까지 시위행진에 참여했다.
건국대 전임교원이던 76년에는 야당 기관지에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는 글이 빌미가 돼 대학에서 쫓겨났고, 전두환 정권 말기인 87년에는 야당 정치인 지지 모임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학원 강사직까지 내놓았단다.
그는 이번 책에서 박정희가 보인 쿠데타 기질의 뿌리와 박정희가 이승만 정부 때부터 시도한 쿠데타 음모의 전말을 짚었다. 인혁당 사법살인이나 광주항쟁 등 박정희·전두환 쿠데타 정권이 저지른 폭압적 만행도 다뤘다.
그는 박정희 쿠데타 기질의 뿌리를 박정희 의식 형성에 영향을 미친 일제 식민사관에서 찾았다. “저는 박정희는 일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 불행이죠. 박정희는 일본에서 민주주의가 잠시 반짝한 다이쇼 시대가 끝난 해인 1926년에 학교(구미 공립보통학교)에 들어가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 전쟁 등 일본이 군국주의로 치달은 시기에 교육을 받으며 인생관이 확정됐어요. 5·16 쿠데타 직후 일본에 가서 유창한 일본말로 ‘나는 당신들이 존경하는 요시다 쇼인을 존경한다’고 했어요. 한국 정벌을 외친 정한론자 쇼인을 존경한다니 요즘 같으면 탄핵감이죠.”
박정희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63년에 낸 책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조선의 역사를 당쟁과 사화의 역사’로 규정하고 “이 모든 악의 창고 같은 우리 역사는 차라리 불살라 버려야 옳은 것이다”라고 썼다. “박정희는 춘원 이광수가 <동아일보>(1931~1932)에 연재한 소설 <이순신>을 읽고 군인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일본이 군국주의의 길로 가던 시절에 춘원이 이순신을 제대로 그렸을까요. 춘원이 쓴 전기를 보면 이순신만 빼고 조선 사람은 다 당파 싸움에 빠져 있고 무능합니다. 싸우다 도망가고요. 명나라 군대가 조선에서 저지른 강간과 노략질은 많이 나오지만, 일본군 악행은 나오지 않아요.”
‘내가 가졌던 박정희에 대한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글을 쓰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책에 쓴 내용이다. “박정희 때 투옥과 고문을 당해 박정희에 대한 제 감정이 좋을 수 없어요. 그 뒤로 이게 사적 감정 때문인지 늘 고민했어요. 상당수 사람은 박정희 때문에 잘 먹고 잘살게 되었다고 좋게 보잖아요.”
‘본인은 공산분자에 대한 증오와 아울러 관제 빨갱이를 만들어 훈장을 타던 옛 버릇을 몹시 미워합니다. 얼마나 많은 선량한 백성들이 이러한 연고로 고생과 박해를 당하여왔습니까?’ 해방공간에서 남로당 비밀당원 활동을 한 게 드러나 무기징역 선고까지 받았던 박정희가 대선 승리 직후인 63년 12월 여성 월간지 <여원>에 쓴 글이다. 송 원장은 자신이 <경향신문>에 실린 잡지 광고를 보고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찾아낸 이 글도 박정희에 대한 애초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박정희는 군 내부의 파벌싸움 때문에 자신이 ‘관제 빨갱이’로 몰렸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그는 이 기고 1년 전에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를 관제 빨갱이로 몰아 죽였어요. 그 뒤에도 많은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 죽였죠.”
‘10·26’ 맞아 ‘박정희 쿠데타 개론’ 내
“쿠데타 기질 뿌리는 일제 식민사관”
박정희와 박근혜·전두환 등 시리즈로
서울대 정치학과 때 ‘6·3사태’ 도화선
첫 반정부 시위…프락치·고문도 ‘폭로’
“박 예찬론자 대부분 ‘확증 편향’ 빠져”
‘박정희 덕에 먹고살기 잘살게 되었다’는 이들에겐 이런 말을 돌려주고 싶단다. “한국인의 근면과 창의성 덕에 경제가 발전했지 어떻게 한 개인의 힘 때문이겠어요. 우스운 말이죠. 우리가 노예나, 남한테 얽매인 존재인가요. 지역감정이나 부의 편중이 심해진 것도 박정희 정부 때부터죠. 박 정권이 공업화를 위해 저곡가 정책을 펼치면서 전라도 농민들이 큰 희생을 치렀죠. 농토에서 등 떠밀려 도시로 온 노동자들이 저임금에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습니까. 경부고속도로를 만들어 큰 공장은 모두 경상도 쪽에 지었고 오늘날 강남 개발도 그 시절에 한 거죠.”
그가 보기에 박정희 예찬론자들의 상당수는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 편견에 빠진 사람들”이다. “박정희를 객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려는 사람들이죠. 태극기 부대를 보면 우파나 보수가 아니라 증오심 가득한 극단주의자들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대개 확증 편견에 빠집니다. 독서 능력이나 의도도 떨어지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거기에 한몸이 되기 때문이죠. 얼마 전 서울대 동기를 만났더니 10년 전에 가지고 있던 책을 다 버렸다고 해요. 저는 지금도 중고서점을 돌며 책을 끌어모으고 있는데요. 5~6년 전부터 박정희 시리즈 집필을 염두에 두고 박정희를 다룬 단행본만 천 권가량 모았어요.”
송철원 원장. 강성만 선임기자
경기고를 나온 그는 고교나 대학 동기 중 말이 통하는 친구들이 거의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학생 70~80%는 좌파였어요. 그때는 북한이 우리보다 잘살아 학생들이 그런 점에 대해 고민이 많았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저한테 일장훈계한 좌파 두목들이 다 지금은 이상하게 변했어요. 사람의 사고라는 게 같은 걸 견지해 발전할 수도 아니면 변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옛날에 좌파 사고를 하다 우파로 바꾼 분들을 보면 좌파적 사고를 했다는 걸 감추려고 해요. 그런 사람이 수두룩해요. 박정희도 권력을 잡은 뒤 남로당 관련 기록을 다 없앴어요. 현 정부에 참여한 민주화 운동 인사 중에서도 연구원 구술 요청에 응하지 않는 분들이 더러 있어요.”
그는 학원 강사 시절 송문영이라는 가명을 썼다. “출판사 법문사와 박영사 가운데 한자씩 땄어요. 74년엔 후배 조영래(<전태일 평전> 저자)가 돈이 필요하다고 해 <객관식 영어 연습>이라는 영어 문법 참고서를 같이 내기도 했죠.”
경북여고 출신인 그의 아내 이정렬씨는 지난해부터 연구원에서 촬영을 담당하고 있다. 송 원장의 책을 내기 위해 지난달 등록한 출판사(도서출판 현기원) 대표도 이씨가 맡았다. 송 원장은 “아내와 생각이 통해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사단법인 5·18민주화운동 서울기념사업회 고문도 맡은 송 원장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이런 말을 했다. “박정희 시절 간첩 조작 사건인 동베를린 사건만 해도 실체적 진실이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어요. 이미 고령이 된 관련자들이 세상을 뜨기 전에 진실을 밝히기 위한 구술 채록 등을 서둘러야 합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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