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메일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성자(聖者)

장백산-1 2020. 12. 21. 23:23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성자(聖者)

 

지혜롭고 행위가 청정해도 분별 망상 번뇌 제거 못하면 성자 아냐

세간 평판 주관적 관점일 뿐 탐 진 치 삼독심 완전히 떠나야 성자

 

 

우리들 모두가 사는 이 세상에는 성자들이 있다고 한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성자로 추앙받는 사람이 있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성자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 흔히 인류의 4대 성인인 ‘붓다, 공자, 예수, 소크라테스’를 말하기도 한다. 누가 정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일본의 ‘와츠지 테츠로(和辻哲郎)’라는 설도 있다. 확실한 것은 일본(日本)에서 4대성인(四大聖人)이라는 개념(槪念)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면 성인(聖人) 혹은 성자(聖者)란 개념(槪念)은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정해지는 것일까? 누군가가 자의적으로 정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을 갖고 있던 사람이 고대 인도에도 있었다. ‘난다(Nanda)’라고 하는 바라문으로서, 지난 연재에서 나온 바라문 바바린의 16제자 중 한 사람이다. 당시 석가모니 부처님을 찾아뵌 난다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세존에게 한다.(대화는 “숫따니빠따” 제5품 ‘빠라야나바가’에 나온다.)

 

[난다] ‘세상에는 성자들이 있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것은 어떤 이유에서입니까? 사람들은 지혜(智慧)를 획득한 사람을 성자(聖者)라고 부릅니까, 아니면 생활을 갖춘 사람을 성자(聖者)라고 부르는 것입니까?

 

[붓다] 난다여, 이 세상에서 현자들은 견해에 의해서, 배운 바에 의해서, 지식에 의해서 성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적대가 없고, 고뇌가 없고, 욕망 없이 행동하는 사람, 그와같은 사람들을 나는 성자(聖者)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난다 역시 지혜로운 사람을 성자라고 부르는지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여쭙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생활을 갖춘 사람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엄격한 수행생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수행자로서 철저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을 성자라고 할 수 있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사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 있다면,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성자라고 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철저하게 수행자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면 그 또한 성자라고 우리는 생각하기 쉽다. 아니 아마도 이 시대의 성자라고 추앙하며 받들 것이다. 요즘 그러한 사람을 보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은 지혜나 수행자로서의 철저한 삶을 살기 때문에 성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성자란 적대하는 분노심(瞋心)이 없고, 번뇌에 물들어 고뇌하지 않고(癡心), 욕망을 떠난 사람(貪心)이라고 정확히 말씀하신다. 이는 달리 표현하면 탐진치(貪瞋癡) 삼독심을 떠난 사람이 성자라는 의미이다.

 

지혜롭다고 하는 것은 상대적 관점에서 지혜를 말하고, 수행자다운 삶을 산다고 하는 것 또한 수행자라고 하는 규격에 맞춰 평가하는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 결국 이 둘은 모두 주관적 관점에서 평가된 내용들인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이 본 것이나, 들은 것, 인식한 것을 통해 자신의 지혜를 드러내고, 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이것 역시 자신의 주관적 판단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견해나 학문을 통해 청정을 주장하고, 계행(도덕적 행위)에 의해서 청정을 말하지만 그것을 통해 태어남과 늙음과 병듦과 죽음을 뛰어넘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나아가 “태어남과 늙음, 병듦, 죽음을 뛰어넘은 사람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석가모니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붓다] 난다여, 나는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태어남과 늙음, 병듦, 죽음에 갇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본 것이나 들은 것이나 인식한 것이나 계행과 맹세나 모두 버리고, 다양한 모든 것을 버리고, 갈애를 두루 알아 번뇌가 없다면, 그 사람들은 참으로 거센 물결을 건넜다고 나는 말합니다.

 

사문은 출가 수행자를 말하고 바라문은 사제, 즉 성직자를 말한다. 이들이 만약 자신이 보고, 들어서 아는 것, 그리고 생각한 바에 집착한다면 결코 성자가 될 수 없으며 태어남과 늙음, 병듦, 죽음의 속박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성자란 버리고 버려서 어떠한 것에도 집착하는 바가 없는 존재인 것이다. 때문에 집착하는 바가 없는 성자는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는 존재이다. 그래서 지혜롭고, 행위가 청정한 사람은 훌륭하다고는 할 수 있어도, 성자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바라문 난다는 기뻐하며 그 가르침을 받들었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66호 / 2020년 12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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