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 안에 신을 창조할 수 있다.

장백산-1 2021. 1. 11. 15:02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 안에 신을 창조할 수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철학자가 아니다. 그는 연금술사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신(神)을 믿지 않고 인간(人間)을 믿는다. 그는 어떠한 낙원(樂園)도 믿지 않고 오직 이 지구를 믿는다. 그리고 그는 이 지구가 품고 있는 웅대(雄大)한 가능성(可能性)을 믿고, 인간이 품고 있는 놀라운 잠재성의 씨앗을 믿는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항상 과거에 매달려 과거를 돌아보며 과거에 집착해왔기 때문에 전혀 인간의 마음은 성장을 하지 못했다.

모든 철학자들, 성직자들, 신학자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항상 과거에 묶어두려고 애써 왔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은 과거에 묶이는 그런 방식으로 길들여져 왔다. 그런 결과 사람들은 반란을 꾀할 수 없으며, 실수를 할까 봐, 죄를 지을까 봐 늘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항상 복종한 채로 살아간다. 모든 철학자, 성직자, 신학자들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은 그들에 의해 구원을 받을 것이고, 복종하지 않는 사람은 지옥으로 던져져서 영원히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복종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의 막연한 두려움과 욕심이 사람들을 파괴하고 스스로 철학자들, 성직자들, 신학자들에 의해 착취당하는 데 사용됐다.

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과거와 절대로 연관을 맺지 않는다.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인간(人間)이 미덕(美德)의 창조자(創造者)가 되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의 마음이 다시는 다가갈 수 없는 과거를 돌아보기보다 다양한 의식차원의 문이 열려 있고 사람들의 마음이 선택할 수 있는 미래(未來)를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노예에게는 선택권이 없으며, 오직 주인만이 선택권이 있다. 노예는 단지 구걸할 뿐이다. 모든 종교는 사람들을 구걸하는 거지노예로 전락시켰다. 모든 종교는 기도와 숭배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종교의 추악한 모습을 숨겨 왔다.

그렇기 때문에 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이 거지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자가 되기를 바란다. 앞을 내다보고,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죽은 시체들을 던져버릴 때만 창조자가 될 수 있다. 죽은 시체들를 짊어지고 다니는 것은 위험하다. 죽은 시체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가는 것도 위험하다. 죽은 시체들은 삶에 독이 된다. 그리고 죽은 시체들은 이미 그대의 삶에 독이 되었다.

반드시 일어나겠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지의 것들과 함께하는 삶만이 사람들을 더 젊고 생동감 넘치게 할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을 흥분되고 열정적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항상 사람들이 새로운 여행, 새로운 순례를 위해 준비하는 것을 도와줄 것이다. 삶은 끝이 없고, 시간도 끝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 무한한 삶과 무한한 시간의 가능성이 놓여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 안에 신을 창조할 수 있다.

오쇼의 <차라투스트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