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생각이 필요 없는 일에 틈이 생겼다.

장백산-1 2021. 1. 11. 16:15

생각이 필요 없는 일에 틈이 생겼다.   - - 릴라

 
본성(本性)을 깨닫고 본성(本性)과 온전히 하나가 되는데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이 생각이다. 생각 자체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갈 때 생각으로 분별을 하지 않으면 불편하다. 사람인지 사물 인지, 밥인지 죽인지, 착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 좋아하는 것인지 싫어하는 것인지를 분별하고 구별하지 못하면 꿈,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 같은 현실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러나 분별을 하는 이 생각은 고정된 무엇이 아니다. 조건 따라 생각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났다가 사라질 때는 자취를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이같은 사실을 두고 불교에서 '모든 것에 자성(自性)이 없다(만법개공/萬法皆空)'이라고 말한다. 생각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이렇게 일어나고 사라지고 있다. 이 생각으로 대상을 분별한다. 분별이 되는 모든 것은 그것이라고 할 게 없다. 생각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텅~빈 바탕자리에는 아무것도 없다. 높이와 깊이와 방향을 알 수 없는 허공과 같은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텅~빈 바탕자리, 텅~빈 이 마음자리에서 모든 생각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다. 

모든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이나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면 바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각 생각이 텅~빈 마음자리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을 인식론적(認識論的)으로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다(삼계유심/三界唯心, 만법유식/萬法唯識)'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마음 하나뿐이라면 생각으로 분별된 모든 것은 텅~빈 것이다. 이런 실상(實相)을 문득 체험하고 분별을 하는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공부가 마음공부, 선(禪)공부이다. 

선(禪)은 텅 빈 고요이다. 마음이 본래 텅 비었고 마음의 표상이 텅 비었다. 마음의 세계, 선의 세계는 어떤 것도 머물러 있지 않고 고정되어 있지 않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어서 텅 빈 모양이 끊임없이 생동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종종 실수를 한다. 즉, 모든 것이 텅~비었다는 이런 언어적인 규정 조차도 텅~비었다는 사실에 이르지 못한다. 언어적인 표현도 본래 무상(無常, 항상함이 없다)한 것이다.  무상(無常, 항상함이 없다)하다는 뜻이 고정되어 머물러 있으면 그것은 분별을 하는 생각에 머문 것이고 허망한 언어에 갇힌 것이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생각을 따라 무엇이 따로 있다는 고정된 의식에 사로잡혀 왔다. 산하대지, 사람과 사물, 정신세계의 모든 현상을 생각으로 분별하여 그것들이 따로 있다고 고정시켜왔다. 내가 따로 있고, 남이 따로 있고, 세계가 따로 있다고 여겨왔다. 생각으로 분별이 되는 대상에 이름을 붙여 분별된 대상을 고정된 무엇으로 만들어 버린다. 심지어 본성(本性) 조차에도 이름을 붙여 본성이 따로 있다고 착각해서 본성을 찾으려고 한다. 모든 것이 오직 마음이다(삼계유심/三界唯心, 만법유식/萬法唯識)'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도 아직도 분별을 하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오직 마음이다(삼계유심/三界唯心, 만법유식/萬法唯識)'이라는 이 말을 말로 설명하려 하고 생각으로 분별을 해서 모든 것이 오직 마음이다(삼계유심/三界唯心, 만법유식/萬法唯識)'이다라는 말을 잡으려 한다.

모든 것이 오직 마음이다(삼계유심/三界唯心, 만법유식/萬法唯識)'이다 라는 이 사실을 체험하기 이전에 분별에 사로잡혔던 생각은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이 사실을 체험하고 난 뒤의 분별을 하는 생각은 참으로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즉, 깨달음에 대해 분별을 하는 생각이나 자기가 만든 모든 규정이 모두 망상(妄想, 허망한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쉽지 않다. 

이 자리를 문득 체험한 사람은 흔히 이런 식의 자기규정에 빠진다. '모든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모든 것을 다한다', '모든 것이 텅 비었다' , '부처와 조사, 스님들이 나를 속였다', '무언가 심오한 것이 따로 있는 듯이 말하는 사람은 모두 깨닫지 못한 사람이다', '말이 아니기 때문에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바로 지금 소리가 일어나고 생각이 일어나는 이 자리 이것이다', '생각과 감정에 속아서는 안된다',... 등등 깨달음에 대한 이런 유형의 생각은 이전 세상살이에 대해서 가졌던 생각보다 더 알아차리기 어려운 망상이다. 세상살이에 대한 생각은 허망한 분별인 줄 쉽게 알지만 깨달음에 대한 분별을 하는 생각은 너무도 이치에 맞는 말이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그런 말에 빠져들거나 집착을 한다. 

심지어 이런 생각을 거침없이 주장하고 강요한다. 망상 중에 깨어나기 어려운 망상이다. 어떤 것도 따로 없는 여기에는 어떤 언어도 없다. 어떤 것도 규정할 수 없는 여기는 생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생각이 일어나면 즉각 보면 될 것이지 '이것도 생각이야'라고 또 다른 망상을 일으켜 틈새를 만들 필요는 없다. 만약 이런 자기규정이 순간순간 작동되고 있다면, 생각이 필요 없는 일에 대해 허망한 생각을 일으켜 틈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