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 69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가 곧바로 부처이다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가 곧바로 부처이다   불교는 불교라는 말 그 자체에서 볼 수 있듯이 일체 모든 것들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부처라는 가르침입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전부 다 하나의 부처라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천수경에 천수천안관세음보살님이 나오는데,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이 바로 나의 눈이고, 관세음보살이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나와 따로 존재하는 부처 보살, 신중은 없습니다. 서방 정토 극락세계에 아미타불이 있다는 것은 방편(方便)입니다. 서방이 바로 지금 이곳이고, 정토 극락이 바로 지금 여기이며, 아미타불이 바로 나 자신인 것입니다.  이러한 불이법, 불이중도, 일심의 가르침에서 보면 그 어떤 분별이나 차별적인 견해도 본질에서는 어긋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4.08.31

팔정도(4) - 정업(正業)

팔정도(4) - 정업(正業) 정업(正業)은 바른 행위다. 팔정도를 신구의 삼업에 대비해 보면 정사는 의업(意業), 정어는 구업(口業), 정업은 신업(身業)이다. 무명이 사라진 정견이라는 바른 견해가 먼저 있고 나서 정사라는 의업이 바로 설 수 있고, 그 다음으로 입으로 짓는 구업과 연이어 몸으로 짓는 정업이 바로 설 수 있는 것과 같은 순서의 이치라 볼 수 있다. 정업(正業)은 ‘연기’적인 견해와 사유가 바탕이 된 바른 행위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적인 행위를 의미하고, 실체론적인 집착에 사로잡히지 않는 ‘무아’의 행위이며, 결과적으로 살생과 도둑질, 사음 등의 몸으로 짓는 악업을 여읜 ‘자비’로운 행위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너무 게을러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거나, 혹은 몸을 너무 혹사..

괴로움 그 속으로 뛰어 들 때 답은 거기에 있다

괴로움 그 속으로 뛰어 들 때 답은 거기에 있다 삶은 괴롭다. 사랑 때문에, 미움 때문에 괴롭다. 미래의 불안감에 괴롭고, 사랑받지 못할까봐 괴롭다. 그러나 사실 그 어떤 괴로움일지라도 괴로움 그 속에 답이 있다.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고 괴로움 바로 거기에 보리(깨달음)과 열반도 함께 있다.  사람들은 보통 괴로움이 생기면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애쓴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나를 찾아온 괴로움, 외로움, 불안, 미움, 번뇌를 버리고 새로운 행복, 충만, 사랑, 평안, 고요, 용서를 찾고자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어긋난다. 그것은 둘로 나눠놓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하는 분별이기 때문이다. 둘로 나누면 그 중 하나는 선택받고 하나는 선택받지 못한다. 그래서 둘이 서로 싸워야 한다. 번뇌가 온 이유는 ‘번..

팔정도(3) - 정어(正語)

팔정도(3)  -  정어(正語) 정어(正語)는 ‘바른 말’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는 생활’이다. 입으로 하는 말과 몸으로 하는 행동은 그 바탕에 생각이 깔려 있다. 그렇기에 팔정도의 순서는 정견 - 정사유[바른 의업] - 정어[바른 구업] - 정업[바른 신업]이다. 바른 견해가 있을 때 바른 사유가 뒤따르게 되고, 바른 견해와 바른 사유를 바탕으로 바른 말과 바른 행동이 나오는 것이다. 바른 생각이라는 바른  업력의 힘이 현실을 창조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말이라는 언어 또한 힘을 가진 행위이다. 의업 즉 생각이 강력한 힘을 가진 업력이라면, 그 의업의 강력한 힘을 현실로 구현하는 첫 번째 기관이 바로 입이며, 입으로 나오는 말과 언어다.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떠도는 생각일 때는 희미한 생각이 아직..

삶이라는 영화에서 빠져나오기

삶이라는 영화에서 빠져나오기 극장에서 다양한 영화가 상영된다고 할지라도 극장의 하얀 바탕의 스크린은 아무런 흔적도 남김 없이 항상 텅 비어 있다. 항상 텅 비어 있기 때문에 온갖 다양한 스토리의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것이다. 삶의 온갖 다양한 이야기들이 일어났다 사라지고, 오고 가지만 텅 빈 그 배경의 스크린에는 아무것도 일어난 적이 없다.  하얀 스크린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본래 바탕이라는 마음자리는 항상 텅 비어 있지만, 텅 빈 그 바탕 위로 삶이라는 인생 스토리가 영화처럼 상영되면서 지나가 버린다. 스크린 위에서는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하고,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면서 온갖 이야기가 지나가고, 온갖 사람들이며, 문제들, 상황들이 계속해서 스쳐지나간다. 그러나 스크린 위를 스쳐지나가는 것들은 꿈..

팔정도(2) - 정사(正思)

팔정도(2) - 정사(正思) 정사(正思)는 정사유(正思惟) 혹은 정지(正志)라고도 부르며, ‘바른 생각’ ‘바른 뜻’ 혹은 ‘바른 마음가짐’ 정도로 해석된다. 여기에서도 ‘바른’은 연기와 중도, 무아와 자비를 의미하는 것으로, 대상에 대해 사유할 때 실체관에 사로잡히지 않고,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생각이다. 정사유란 생각하되 생각이 없는 것이다.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하되 바르게 하라는 것이다. 어떤 것이 바른 것인가? 그 생각이 인연 따라 잠시 왔다가 가는 것임을 분명히 아는 연기적인 지혜다. 그러니 저절로 생각을 인연 따라 쓰기는 하되, 생각은 실체 없음을 자각하기에 그 생각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생각을 하되 생각에 머물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정사유다. 그렇기에 정사유..

팔정도(1) - 정견(正見)

팔정도(1) - 정견(正見) 정견(正見)은 ‘바른 견해’다. 『잡아함경』 28권에서는 ‘정견이 있으므로 정지(正志) 내지 정정(正定)을 일으킨다’고 함으로써 정견이 나머지 7 가지 실천 내용을 규정하고 있으며 팔정도 성립의 근본임을 설하고 있다. 경전에서는 정견을 ‘사성제에 대한 바른 지혜’, 혹은 ‘연기에 대한 바른 지혜’라고 설명하며, 이는 곧 무명의 반대가 되는 명(明)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다. ‘바른’ 견해에서 ‘바른’은 곧 연기와 사성제, 무아와 중도, 자비에 대한 바른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정견은 세상을 독자적으로 홀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연기적인 것으로 보는 견해이며, 고정된 실체관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비실체적인 무아로써 보는 견해이고, 어느 ..

카테고리 없음 2024.08.28

진리를 실천하는 5가지 생활수행법

진리를 실천하는 5가지 생활수행법 진리를 실천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삶 자체가 그대로 진리임으로 진리를 실천하는 것은 곧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을 어떻게 사는 것인가? 삶을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다. 삶을 무위로써 사는 것이다. 있는 삶을 있는 그대로 사는 것이다. 그렇게 사는 것은 전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억지스럽게 엄청난 공력을 들여 노력해야만 얻어지는  삶이 아닌 것이다. 진리를 실천하는 삶의 자세 다섯 가지가 있다. 이런 5 가지 마음자세로 살 때, 사람들은 삶이라는 이미 드러난 진리와 하나되어 자연스럽게 흐르게 된다. 첫 번째 마음자세는  ‘받아들임’이다. 지금 여기에 펴쳐지는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수용하는 삶이다. 삶은 그것 자체로 완전하다. 삶 자체..

"폭동" "폭동"... 김문수가 4.3 폄하 총대 멘 진짜 이유

"폭동" "폭동"... 김문수가 4.3 폄하 총대 멘 진짜 이유 [김종성의 '히, 스토리']김종성입력 2024. 8. 27. 15:09[김종성의 히,스토리] 제주 4.3에 대한 정당한 평가 이뤄지면, 존립기반 위태로워지는 뉴라이트  ▲  김문수 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정회되자 자리를 나서고 있다.ⓒ 유성호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제주 4·3은 공산폭동'이라는 왜곡된 역사 인식을 인사청문회장에서까지 숨김없이 드러냈다.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청문회에서 그는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한 4·3폭동은 명백하게 남로당에 의한 폭동", "4·3폭동은 공산폭동" 등등의 발언을 했다. 국회의 동의가 불필요한 장관직 임명을 앞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