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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도(3) - 정어(正語)

장백산-1 2024. 8. 30. 14:50

팔정도(3)  -  정어(正語)

정어(正語)는 ‘바른 말’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는 생활’이다. 입으로 하는 말과 몸으로 하는 행동은 그 바탕에 생각이 깔려 있다. 그렇기에 팔정도의 순서는 정견 - 정사유[바른 의업] - 정어[바른 구업] - 정업[바른 신업]이다. 바른 견해가 있을 때 바른 사유가 뒤따르게 되고, 바른 견해와 바른 사유를 바탕으로 바른 말과 바른 행동이 나오는 것이다.

바른 생각이라는 바른  업력의 힘이 현실을 창조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말이라는 언어 또한 힘을 가진 행위이다. 의업 즉 생각이 강력한 힘을 가진 업력이라면, 그 의업의 강력한 힘을 현실로 구현하는 첫 번째 기관이 바로 입이며, 입으로 나오는 말과 언어다.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떠도는 생각일 때는 희미한 생각이 아직 현실을 창조하는 힘을 지니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 희미한 생각이 말로 튀어나오는 순간 그 말은 강력한 힘을 지닌 업력(業力)이 되어 업보(業報)를 불러오게 된다. 말로 나오는 순간, 그 말 소리의 파동은 의미와 힘을 지닌 언어인 구업(口業)이 되어 그 말이 결과를 불러오는 업보라는 실질적인 힘으로 굳어진다.

실제로  사람들이 소리 내어 말을 하면, 사람들의 뇌는 자신이 한 말도 외부에서 입력하는 지시적 정보로 받아들여서 그 정보가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작업을 한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수많은 자기개발서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로 써서 벽에 붙여 놓고, 소리 내어 반복해 말하게 되면 실제 결과로 이어진다는 성공사례를 무수히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식물의 정신세계』에서는 식물도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기뻐하고, 슬퍼하며, 예쁘다는 말을 들은 난초는 더욱 아름답게 자라고, 볼품없다는 말을 들은 장미는 자학 끝에 시들어 버린다고 한다. 이처럼 식물이나 물 같은 자연환경의 대상들조차 말 한마디에 울고 웃으며, 인간의 말과 언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사람들이 하는 말 한 마디는 타인에게 뿐 아니라, 내 주변의 자연 만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말과 언어는 신문, 잡지, 인터넷, 스마트폰 등의 발달로 인해 그 어느 때 보다도 더욱 강력하고도 중요해 졌다. 별 생각 없이 올린 인터넷 악성 댓글을 보고 누군가는 자살을 하니 정어(正語)의 수행은 요즘 같은 정보화 시대에 더욱 중요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잡아함경』 28경에서는 “어떤 것이 정어(正語)인가. 망어(妄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기어(綺語)를 떠난 것이다.”라고 설한다. 망어란 거짓된 말이며, 양설이란 화합을 깨뜨리는 이간질이고, 악구란 욕설과 같이 거칠고 사나운 말이고, 기어란 쓸데없는 말, 꾸며낸 말, 법답지 못한 말을 통틀어 지칭하는 말이다. 정견과 정사유 없이, 어리석은 견해와 생각이 선행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망어, 양설, 악구, 기어와 같은 삿된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바른 말’에서 바르다는 의미도 물론 연기와 중도, 무아와 자비를 의미한다. 너와 내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안다면 상대방을 향해 욕설을 한다거나, 거짓말이나 이간질하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며, 상대방이 곧 나라는 동체(同體)와 연기적 자각에서는 자연스럽게 자비로운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또한 무아와 중도라는 자각이 바탕이 된다면 우리의 언어생활은 실체론적인 사고방식을 내포하는 언어나 치우친 언어를 사용하지 않게 될 것이다. 

 

상대방을 향해 옳다거나 그르다는 양 극단의 판단이 내포된 말 대신 그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 주는 무분별의 말들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남이 나를 향해 격앙된 말투로 큰 소리를 쳤을지라도, ‘그 녀석이 나에게 화를 냈다’거나, ‘나를 미워한다’거나 하고 판단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 ‘그가 나에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고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안에서 현실을 걸러서 해석한 언어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드러내주는 표현들이 사용될 것이다.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