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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영화에서 빠져나오기

장백산-1 2024. 8. 29. 23:23

삶이라는 영화에서 빠져나오기


극장에서 다양한 영화가 상영된다고 할지라도 극장의 하얀 바탕의 스크린은 아무런 흔적도 남김 없이 항상 텅 비어 있다. 항상 텅 비어 있기 때문에 온갖 다양한 스토리의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것이다. 삶의 온갖 다양한 이야기들이 일어났다 사라지고, 오고 가지만 텅 빈 그 배경의 스크린에는 아무것도 일어난 적이 없다. 

하얀 스크린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본래 바탕이라는 마음자리는 항상 텅 비어 있지만, 텅 빈 그 바탕 위로 삶이라는 인생 스토리가 영화처럼 상영되면서 지나가 버린다. 스크린 위에서는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하고,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면서 온갖 이야기가 지나가고, 온갖 사람들이며, 문제들, 상황들이 계속해서 스쳐지나간다.

그러나 스크린 위를 스쳐지나가는 것들은 꿈과 같은 헛된 환상일 뿐이다. 인연 따라 잠시 왔다 인연다라 사라져버리는 것들이기에 그것들에는 집착할 것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왔다가 사라져버리는 그것들을 붙잡아 집착하면서 공연히 에너지를 낭비한다. 이별하고 실패할 때 아파하고 괴로워하지만, 배경의 스크린의 입장으로 돌아가서 이별과 실패를 살펴본다면 아무 일도 없다. 이별 실패라는 그런 일들이 그저 왔다가 사라질 뿐이지만 스크린이라는 배경에서는 전혀 신경 쓸 일이 아닌 것이다.

스크린이라는 배경에 머물게 되면, 사랑도 이별도 아무런 차별 없는 환상이고, 성공도 실패도 아무런 차별 없는 같은 환상일 뿐이다. 스크린이라는 배경 거기엔 아무런 차별도 어떤 의미도 없다. 

우리가 본래마음, 본래면목, 참나, 불성이라고 부르는 방편(方便)이 바로 극장의 텅 빈스크린과 같다. 그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성공하고 실패하고, 좋은 일과 싫은 일들이 아무리 많이 오고 간다고 할지라도 사실 본래면목 입장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난 적이 없다. .

스크린 위에 영화의 내용은 계속해서 좋고 나쁜 일이 반복되며 상영되지만 배경의 스크린은 다만 그 모든 내용을 비출 뿐, 좋고 나쁜 이야기에 물들지 않는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삶이라고 상영되는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좋고 나쁜 이야기, 삶의 스토리,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 바로 그것들을 나라고 여기면서 거기에 집착해 왔다. 그러다보니 삶에서 보다 좋은 일을 만들려고 애쓰고, 보다 성공적인 삶의 드라마를 쓰려고 노력하고, 남들에게 이기고 영웅이 되는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야말로 삶의 성공이라 여기면서 지금까지 그 영화 스토리에만 사로잡혀 살아왔다.

이제 시선을 조금 돌려 보자는 것이다. 영화 속 줄거리에 사로잡혀 있던 시선을 영화의 스토리가 일어났다 사라지는 배경인 스크린 쪽으로 돌려 보자는 것이다. 물론 같은 곳을 보지만 전혀 다른 곳을 보는 것이다. 똑같이 영화를 보지만 영화의 스토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상영되는 배경인 스크린을 보는 것이다.

영화가 상영되는 스크린을 볼 때는 그 영화의 줄거리가 좋고 나쁨에 전혀 상관 없이 한결같이 여여하다. 영화의 줄거리와 스토리는 변해도 그 배경은 전혀 변함 없이 한결같다. 전혀 변함이 없는 한결같은 스크린 이것이 바로 참된 진실의 세계, 즉 일진법계다. ‘하나의 진실한 법계’ 이 자리에 있게 되면 한결같이 여여할 뿐, 삶의 성공과 실패라는 허망한 이야기에 속지 않게 된다.

그렇기에 이와같은 이치를 깨달은 사람은 우리와 똑같이 살지만 전혀 흔적이 없고, 번뇌가 없다. 아무 일도 없는 것이다. 모든 일이 있지만 아무 일도 없는 것이다. 색즉시공이고 공즉시색인 것이다. 그러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서 살수 있게 된다. 

모든 것들이 텅 빙 스크린과 같은 삶 위로 다만 지나가게 내버려 두라. 그 영화의 스토리 속에 뛰어들어 울고 웃기 보다는 그 모든 것이 오고 가는 배경으로 떨어져 나와 보라. 그 오고 가는 것들에 마음을 쓰지 말고, 한 발자국 떨어져 영화관의 스크린의 자리에서 그 모든 것들을 다만 바라보라. 당신의 본래 삶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고요할 뿐.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