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림없음, 장애가 없음, 무중력(無重力) 세상에서 유영(游泳)하다. - 몽지와 랄라
아침이 되어 눈을 뜨면 시야에 방안이 어슴푸레 들어온다. 마치 초점이 맞지 않은 카메라 렌주 상태처럼 희부연 방안이었다가 점차 사물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세상(世上)은 이렇게 시작(始作)된다. 감각적인 대상들이 선명하게 인지가 되고 그 대상들에 대한 기억(記憶)과 정보(情報)를 끌어올리면서 방안은 너무도 분명하고 선명한 장소가 된다.
방안은 내가 잠들기 전부터 그 모습 그대로 있었던 장소라기보다는 내가 인식하고 의미화하고 존재로 믿으면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의 방안이 된다. 세상은 이렇게 시작이 되고 이렇게 사라진다. 나와 세상은 아침에 내가 눈을 뜨면서 드러나고 저녁에 눈을 감으면서 사라진다. 우리 모두는 매 순간순간 천지창조(天地創造)의 현장에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은 고정불변하는 세계가 아니다. 찰나찰나 시시때때로 감각적인 경험이 바뀌고 그 감각적인 경험에 대한 해석과 느낌이 바뀌며 그 가운데 세상에 대한 고정관념(固定觀念)이 수시로 작동을 한다. 늘 새로운 감각, 늘 새로운 느낌에, 패턴화된 생각도 찰나찰나 시시각각 일어나고 사라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고정불변의 무엇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고정된 지식, 고정되어 습관화된 생각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정된 관념, 고정된 지식, 고정된 습관화된 생각이 출현하여 고정불변하는 것같은 세상을 집착할 때 세상은 고정된 무엇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만약 고정관념이 미처 작동하지 않은 상황이 되거나 분별심(分別心)이 멈춘 상황이 되면 세상은 내가 예전에 알던 그 세상이 아니다. 고정관념이나 분별심이 멈춘 상황이 되었을 때 이 세상이 환상(幻想)처럼 허깨비 세상 처럼 체험되는 이유가 바로 고정관념이나 분별심이 멈춘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있는 내 앞의 세계가 객관적인 세계, 고정된 어떤 세상으로 보이는 이유는 세상이 객관적인 세계, 고정된 어떤 세상이어서가 아니라 세상이 객관적인 세계, 고정된 어떤 세상이라는 그런 고정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온 이력이 지금 이 자리의 나의 세상을 창조하는 것이다. 분별심(分別心)은 살아오면서 축적된 지식, 정보, 기질, 환경 등에 의해서 구축된 것이어서 이같은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세상을 해석한다. 한 생각에 사로잡히면 나만이 보는 나의 세상이 나타난다. 그런데 모든 분별심(分別心)이 본래 텅~빈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임을 분명하게 보면 한 생각이 일어나 나만의 세상이 드러나더라도 그 세상이 실재(實在)라는 착각(錯覺)을 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제각각 다른 세상을 창조하지만 각각의 다양한 세계는 결국 텅~빈 마음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아주 미세한 것에서부터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것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이 이 세상이고, 내가 가본 적이 없는 달나라가 이 세상이다. 아주 좋은 차의 향이 이 세상이고, 기피하는 온갖 악취가 이 세상이다. 그러나 좋은 향기이든 악취이든 아침에 눈을 뜰 때 희끄무레한 방 안에서 선명한 세상으로 변주되어 일어나는 지금 여기, 이것의 일이다.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 선과 악, 옳고 그름, 슬픔과 기쁨, 고요와 시끄러움이 모두 지금 여기 이것의 일이다. 세상은 지금 여기 이것의 변주일 뿐이다. 모든 존재, 모든 상황, 모든 사건, 모든 시간과 공간이 지금 여기 이것에서 드러나고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의 본바탕은 텅~비었으되 죽은 것이 아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의 본질(본바탕)은 테두리가 없는 깨어있음이다. 그래서 탁상시계가 깨어있고, 탁자가 깨어있다. 모든 생각마다 깨어있고, 모든 좋고 나쁜 감정이 깨어있다. 이 분별심(分別心)이 일어나는 자리에서 늘 새로운 세상이 드러나는데, 이 드러난 세상은 그것 그대로 텅~비어서 드러났다고 할 수 없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지금 여기 이것임을 분명히 깨닫고 나면 세상 모든 것이 제 위치에서 무중력 상태로 춤을 추는 것 같다. 마치 빛의 기둥 속에서 먼지들이 아무런 무게 없이 바람 따라 일렁이는 것처럼 세상 모든 것들이 그것이 있을 거기에서 헤엄치듯이 제각각의 역할을 한다. 나의 형상, 세상의 모습은 크게 달라진 게 없지만 아무런 무게중심 없이 인연(因緣)을 따른다. 원래 이 세계는 이런 세계이다. 걸릴 것이 따로 없다. 이것 하나가 편만한 세계, 지금 눈앞에 마주한 세계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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