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100년 살아보니 알겠다, 절대 행복할수 없는 두 부류"
백성호 입력 2021.01.29. 05:01 수정 2021.01.29. 06:25
[백성호의 현문우답]
#풍경1
김형석(연세대 철학과) 명예 교수는 올해 102세가 됐습니다. 다들 ‘100세 시대’라고 말들 하지만 막상 100살을 넘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소 조심스러웠습니다. 코로나 시국에다 연세가 있으셔서 ‘혹시라도’ 싶어 인터뷰 자리가 걱정되더군요.
이달 초 커피숍에서 만난 김형석 명예 교수는 의외로 의연했습니다. 뭐랄까요. 1세기를 송두리째 관통한 사람의 ‘굵직한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삶에 대한 깊은 관조(觀照)와 함께 말입니다. 김 교수와의 지난 인터뷰에서는 ‘이 시대의 진보와 보수’를 다루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김형석 명예 교수에게 <행복(幸福)>이라는 두 글자에 대해 물었습니다. 행복(幸福)은 모든 사람의 삶에서 제일가는 화두가 되는 키워드이니까요. ‘100년 넘게 살아봤더니 다른 게 행복(幸福)이 아니더라. 바로 이게 행복(幸福)이더라.’ 라는 그런 식의 대답을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풍경2
Q : 다들 행복을 찾습니다, 행복. 어떡하면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까.
A : “지금까지 살아보니 행복을 알겠더군요. 아무리 행복해지고 싶어도 행복해지기 힘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Q : 행복해지고 싶은데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A :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들은 크게 보면 두 부류입니다. 첫번째로 정신적 가치(精神的 價値)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물질적 가치(物質的 價値)가 행복(幸福)을 가져다주진 않으니까요. 가령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그 사람이 과연 행복하게 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많은 물질을 갖게 되면 오히려 불행(不幸)해지고 말더군요.”
Q : 돈, 권력, 명예를 좇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돈, 권력, 명예 거기서 행복(幸福)을 찾습니다.
A : “솔직히 말해서 돈, 권력, 명예 거기서 행복(幸福)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돈, 권력, 명예 거기에는 ‘만족(滿足)’이 없기 때문입니다. 돈 욕심, 권력 욕심, 명예 욕심은 기본적으로 소유욕(所有欲)입니다. 돈, 권력, 명예 그건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더 목이 마릅니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배가 고픕니다. 그래서 돈, 권력, 명예를 가지면 가질수록 항상 허기진 채로 살아가야 합니다. 행복(幸福)해지려면 필요한 조건이 딱 하나 있습니다. 그 하나 그건 ‘만족(滿足)’입니다.”
Q : ‘만족(滿足)’을 알려면 어떡해야 합니까.
A : “정신적(精神的) 가치(價値)가 있는 사람은 만족(滿足)을 압니다. 그런 사람들이 행복(幸福)한 삶을 살더군요.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돈, 권력, 명예를 거머쥘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돈, 권력, 명예를 거머쥐어도 그들은 결국 불행(不幸)해지더군요.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돈, 권력, 명예를 거머짐으로 인해 오히려 불행해지고 말더군요. 지금도 우리 주위에도 그러한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내내 실감했습니다. 김형석 교수의 메시지는 참 묘한 매력이 있더군요. 그의 메시지는 언뜻 들으면 누구나 말 할 수 있는 말처럼 들립니다. 너무도 당연한 말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메시지 행간을 곰곰이 씹다 보면 확 달라집니다. 메시지를 씹으면 씹을수록 진한 국물이 우러납니다. 그의 메시지 그건 100년의 삶, 100년의 안목으로 우려낸 삶에 대한 묵직한 통찰(洞察)이겠지요.
#풍경3
행복하고 싶은데 행복할 수 없는 삶. 아, 그건 정말 비극입니다. 그런데 우리만 모르고 있는 걸까요. 내가 바로 그 비극의 주인공일 수 있음을 말입니다. 그래서 행복(幸福)해질수 없는 두 번째 부류의 사람에 대해 물었습니다. 건너고 싶어도 행복의 강을 건너지 못하는 사람들, 그게 누구인지 말입니다.
“두 번째로 행복(幸福)해질수 없는 사람들은 이기적(利己的)인 사람들입니다. 이기적(利己的)인 사람들은 절대로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뜻밖의 진단이었습니다. 다들 자신을 챙깁니다. 나 자신을 챙기고, 내 이익을 챙깁니다. 사람들은 그걸 위해 삽니다. 왜냐고요? 그래야 내가 행복해지니까요. 그런데 김형석 교수는 이기심(利己心)과 행복(幸福)은 절대로 공존(共存)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Q : 이기주의와 행복, 왜 공존이 불가능합니까.
A : “이기주의자는 자신만을 위해 삽니다. 그래서 원만한 인격(人格)을 갖추지 못합니다. 인격(人格)이 뭔가요. 인격(人格) 그건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나오는 선(善)한 가치(價値)입니다. 이기심(利己心)으로 가득찬 이기주의자는 인격(人格) 그걸 갖추기가 어렵습니다. 인격(人格)의 크기가 결국 자기 그릇의 크기입니다. 그 자기 그릇에 행복을 담는 겁니다. 이기주의자는 자기 그릇이 작기 때문에 자기 그릇에 담을 수 있는 행복도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말끝에 김형석 교수는 자신의 경험담을 하나 꺼냈습니다.
“제가 연세대 교수로 갈 때 몹시 가난했어요. 가난해서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월급이 오르거나 보너스가 나오면 무척 좋아했어요. 동료 교수들도 다들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등록금을 내지 못해 고생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승이라는 사람이 자기 월급 올랐다고 좋아한 겁니다. 그건 교육자의 도리가 아니지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행복하질 않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행복(幸福)은 공동체의식(共同體意識)이지, 단독자(單獨者)인 나만을 위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김 교수는 자기의 그릇 먼저 큰 그릇이 되어야 큰 행복을 담을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풍경4
김형석 교수는 최근 지방 출장차 김포공항에 갔습니다. 비행기 예약자들에게 발권 표를 다 나눠주는데 김 교수만 빠졌습니다. 문의를 했더니 항공사 직원이 “이상하다”며 급히 매니저를 불렀습니다. 달려온 매니저가 김 교수에게 “혹시 연세가 어떻게 되시느냐?”고 물었습니다. 알고 보니 컴퓨터상에 나이가 ‘1살’이라고 떴습니다. 1920년생인 김 교수는 올해 만으로 101세입니다. 컴퓨터가 두 자리 숫자만 읽게끔 설정돼 있었던 겁니다.
“지금까지 대한항공 비행기만 930번 이상 탔어요. 그런데 직원이 보니 1살짜리가 930번 비행기를 탄 겁니다. 사람들이 종종 물어요.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고. 이상하죠. 저도 나이 생각이 없어져요. 내 나이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1살이라고 하니 올해는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살려고요. 하하”
Q : ‘100세 시대’라고 합니다. 다들 100세 인생을 기대합니다.
A :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연세대 교수로 처음 갈 때 30대 중반이었어요. 그때는 환갑이 되고 정년이 되면 내 인생이 끝날 줄 알았습니다. 당시에는 내 나름대로 인생(人生)을 두 단계로 봤어요. 30세까지는 교육을 받고, 나머지 30년은 직장에서 일한다. 그럼 인생(人生)이 끝난다.”
Q : 막상 100세까지 인생을 살아보니 어땠습니까.
A : “인생(人生)은 그게 아니었어요. 가장 많은 일을 하고, 가장 행복한 건 60세부터였어요. 내가 살아보니까 그랬습니다. 글도 더 잘 쓰게 되고, 사상도 올라가게 되고, 존경도 받게 되더군요. 사과나무를 키우면 제일 소중한 시기가 언제일까요. 열매 맺을 때입니다. 그게 사람으로 치면 60세부터입니다. 나는 늘 말합니다. 인생(人生)의 사회적(社會的) 가치(價値)는 60살부터 온다고.”
Q : 그럼 60대 이후에는 어떻게 됩니까.
A : “60을 넘어 90까지는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사회적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럼 90 이후에는 어떻게 되느냐. 90세 이후에는 되는 사람도 있고, 안 되는 사람도 있더군요. 주로 건강 때문입니다. 의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혈압, 당뇨, 치매는 주로 60세 이후에 찾아옵니다. 그걸 60, 70, 80세가 돼서 관리하려고 하니까 힘이 듭니다. 그러니까 50세부터 혈압, 당뇨, 치매를 잘 관리하면 됩니다. 그럼 90까지는 다 간다고 합니다. 90세까지는 행복하고 보람있게 살 수 있습니다. 의술이 발전하니까 지금부터 40~50년 후에는 100세까지도 다들 행복하게 살 수 있겠지요.”
#풍경5
대화를 나눌수록 놀랐습니다. 101세인 김형석 교수는 지팡이를 짚지 않습니다. 제가 놀란 건 육체적 건강 때문만이 아닙니다. 100세 넘는 연세에도 정신력, 기억력, 사고력, 판단력이 놀랍습니다. 유연하고 열린 사고 역시 젊은이들 못지않습니다. ‘100세의 건강’ 못지 않게 ‘100세의 정신’도 궁금하더군요.
Q : 100세까지 건강(健康)하고 행복(幸福)하게 살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
A : “죽을 때까지 사람은 항상 공부를 해야 합니다. 뭐든지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精神)이 늙어버립니다. 사람들은 몸이 늙으면 정신이 따라서 늙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자기 노력에 따라 정신(精神)은 늙지 않습니다. 그때는 몸이 정신(精神)을 따라옵니다.”
Q : 그때는 퇴직하고 한참이나 지난 뒤입니다. 공부를 어떻게 하면 됩니까.
A : “강연차 지방에 갈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럼 거기서 지방 유지들을 만납니다. 장관 지낸 사람, 교수 지낸 사람들도 만납니다. 이야기를 해보면 다들 나보다 정신(精神)이 늙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 가만히 생각해 봤습니다. 결국 장관직 끝내고, 정년퇴직하고 나서는 일도 안 하고 공부도 안 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겠더군요. 일과 공부를 안 하면 몸도 마음(정신)도 빨리 늙습니다.”
Q : 일과 공부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합니까.
A : “일은 꼭 직업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또한 공부가 따로 있나요. 독서 하는 게 공부죠. 취미 활동하는 거고요. 취미 활동도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100년을 살아보니 알겠더군요. 공부하는 사람 일하는 사람이 건강합니다. 운동은 건강을 위해서 있고, 건강은 일을 위해서 있습니다. 내 친구 중에 누가 가장 건강하냐. 같은 나이에 일이나 독서를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가장 건강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자 겨울 공기가 상쾌했습니다. 참으로 인터뷰가 값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100세의 언덕’에서 우리들 각자에게 던져주는 지혜(智慧)의 알갱이들이 말입니다. 누구에게는 30년 뒤, 누구에게는 50년 뒤, 또 누구에게는 70년 뒤가 되겠지만 말입니다.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오게 될 그 언덕에 미리 서 볼 기회를 주고 있으니까요.
글=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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