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자성불을 중생심에서 불심으로 바꾸는 게 기도이고 수행입니다”

장백산-1 2021. 2. 22. 15:16

“자성불을 중생심에서 불심으로 바꾸는 게 기도이고 수행입니다”

 

코로나19로 어렵지만 이럴 때일수록 스스로 점검해야

마음에 도가 있고 부처가 있음에도 늘 밖으로만 구해

선한 생각으로 선한 행동을 한다면 자신 삶은 바뀔 것

 

오늘 부산 동명불원의 대웅전 삼존불 개금불사 회향 법회를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렇게 귀한 법회를 통해 여러분과 만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개금불사 회향법회인 만큼 부처님의 형상을 조성하는 의미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동명불원은 그 역사만큼이나 부산에서 포교와 전법의 의미가 깊은 도량입니다. 우리나라는 1960년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매우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당시 강석진 동명목재 회장은 부산 경제발전을 위해 많은 공을 세우셨습니다.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저보다 여러분들이 더 잘 알 것이고 이곳 동명불원에 오시는 분들은 항상 그분의 큰 뜻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정진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났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만 반면 지금 우리는 코로나 시대를 겪고 있습니다. 요즘 같은 시기일수록 더욱더 나라가 어려웠던 시절, 신심과 지혜로 극복한 강석진 회장과 같은 참된 불자의 이야기를 절실하게 새겨야 한다고 봅니다. 

 

1960~1970년대 강석진 회장이 범어사에 와 보제루에서 주지스님을 만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강 회장의 말씀이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동명불원을 지은 것은 사찰을 지어 이웃이 잘되고, 많은 사람이 잘되고, 나아가 나라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혹여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부처님 가피로 선한 마음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부처님 도량을 건립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 시대에 직면해 사회 전반에 걸쳐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경제도 어렵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때 우리는 다시금 부처님을 마주하며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불보살님 세분을 점안하는 이 법회를 계기로 속히 코로나19가 퇴치되고,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롭게 살 수 있기를 발원해 봅니다. 

 

지금까지 그동안 사람들은 너무 물질(物質)에 치우친 과도한 삶을 살았습니다. 교만과 자만심으로 자연(自然)을 향한 존중과 배려 없이 무엇이든 너무 지나치게 물질(物質) 위주로 살아온 게 아닌가 반성하게 됩니다. 코로나19가 창궐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긴 이 기간에 불자 여러분들도 각자의 삶에서 나름 각성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법회와 점안 의식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삶을 더 자유롭고 풍요롭게 채워가는 날이 앞당겨졌으면 합니다. 

 

이즈음에서 우리는 불심(佛心)이란 무엇인가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사회적 혼란과 사회적 격변, 사회적 불안 속에서 과연 우리가 불심(佛心)을 갖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불심(佛心)이란 단순 명료하게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선한 생각을 하고, 선한 행동을 하고, 선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팔정도(八正道)와 육바라밀(六波羅密)로 요약됩니다. 정사유(正思惟), 바른 생각입니다. 한 생각이 비뚤어지면 무엇을 하든지 일이 잘되지 않으며 앞으로도 일이 잘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생각이 올바를 때 부처님의 가피력이 있습니다. 

 

도둑 심보를 가진 사람이 기도하고 사회사업을 하고 어떤 일에 종사한다 해서 그 일이 잘되겠습니까? 바른 생각은 중도(中道)의 생각입니다. 딸과 며느리가 있는 부모의 경우 딸에게는 ‘내 딸’이라는 생각이 치우치게 되지만 며느리에게는 그런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와 같이 치우친 생각을 버리고 상대방의 삶과 생각을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과 가장 밀접한 가족관계에서부터 중도적 사유를 실천한다면 우리의 삶은 분명 긍정과 희망의 방향으로 달라질 것입니다. 

 

여기 밝게 빛나는 부처님의 모습은 하나의 형상(形像)입니다. 이 형상은 아무리 장엄을 잘해놓는다고 하더라도 시간(時間)이 지나면 무너져서 사라지고 맙니다. 공간(空間)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흙으로 만든 부처님은 물을 지나갈 수 없습니다. 나무로 만든 불상은 아무리 조각을 잘해놓아도 불을 지나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금으로 부처님의 옷을 입혔더라도 용광로를 지나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생(生)과 멸(滅)에 관계없이 영원(永遠)히 존재(存在)하는 것은 바로 법성(法性 ; 만물의 성품)의 실상(實相)입니다. 법성(法性)이 그대로 자성불(自性佛)입니다. 

 

오늘 동명불원에서 점안식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분께서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자리에 동참하셨습니까? 아마 ‘내가 동참하고 기도해서 가피를 입어야 하겠다’는 그러한 생각으로 이 자리에 오셨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움직이고 기도하는 자성불(自性佛)은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영원히 각자의 보배가 될 것입니다. 자성불(自性佛)을 통해 여러분의 삶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 법회 이전에도 아마 많은 불자님들이 동명불원에 와서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에서 벗어나 삶이 달라지신 분이 계실 겁니다. 

 

이제 우리는 자성불(自性佛), 즉 법성(法性)을 돌이켜봐야 합니다. 나무, 돌, 청동 등으로 부처님의 형상을 조성해 모셨지만 진정 살아있는 부처님은 어디 계십니까? 여러분이 기도할 때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주인공, 천하의 보배는 바로 살아있는 부처님으로 사는 겁니다. 살아있는 그 부처님을 명료하게 알 때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피는 바로 여러분의 믿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간절한 기도를 통해 내 삶을 바꿔나갈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을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바뀔 수 있습니다. 부처님 명호를 수없이 부르고 무릎이 닳도록 절을 해도 부처님은 답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릎이 닳도록 절을 하고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속에 복과 지혜가 쌓여간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것이 가피입니다. 불자가 기도하지 않고 스님이 수행하지 않는다면 거기에서 어떻게 삶이 달라지겠습니까?

 

“어떤 것이 도(道)입니까?” “평상심(平常心)이 도이니라.”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간시궐(幹屎厥, 마른 똥막대기)이니라.” 옛 선사들께서는 이렇게 문답을 주고받으며 부처의 자리를 확인(確認)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부처님을 어디에서 찾고 부처님 가피가 어디에서 나오길 바랍니까? 아니면 그것도 모른 채 무작정 기도 성취를 바랍니까? 여러분 각자 갖추고 있는 자성불(自性佛), 그 주인공(主人公)을 잘 관리하신다면 부처님 가피는 분명 거기에 있습니다. 당장 모르겠다고 포기하실 겁니까? 기도 성취의 욕심이 생긴다면 그만큼 노력해야 합니다. 부처님 가피를 얻고 싶으면 먼저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과거에 도(道)를 구하는 사람이 공자(孔子)를 찾아갔습니다. “도(道)를 일러주십시오.” 공자님은 사양했습니다. “나는 아직 도(道)를 잘 모릅니다.” “그렇다면 어떤 분에게 가면 도(道)를 알 수 있습니까?” “얘기를 듣자 하니 부처님 제자라고 하는 분이 산중에서 도(道)를 안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구도자는 산으로 찾아갔습니다.

 

깊은 산중에 도착하니까 조그마한 집이 보이고 나이가 많아 보이는 노승이 마당을 쓸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도자가 볼 때 노승의 모습은 초라했습니다. 그래서 돌아섭니다. 그 모습을 본 노승은 참으로 자비롭습니다. ‘이 산중까지 온 것은 분명히 어떤 뜻이 있어서 왔을 텐데 저렇게 돌아서는구나.’ 노승은 마당을 쓸다가 돌아서서 가는 그 사람을 보고 결국 먼저 말문을 엽니다. “당신은 어째서 눈은 귀하게 여기면서 귀는 천하게 여기는가?” 구도자는 그 순간 귀가 번쩍 열립니다. 돌아서서 묻습니다. “어떤 것이 도(道)입니까?”

 

“내가 일러 주더라도 내 말을 당신이 믿겠느냐?” “제가 도(道)를 구하기 위해서 평생 노력했는데 어찌 믿지 않겠습니까?” “확실하게 믿겠는가?” “네. 믿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내가 도(道)를 일러주겠다.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물병에 있느니라.” 노승의 말에 구도자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것은 천하가 다 아는 겁니다. 그것을 도(道)라고 일러주십니까?” 노승은 다시 말했습니다. “그래. 도(道)는 천하가 다 아는 것이다. 그것이 도(道)이니라.” 구도자는 그제야 깨닫습니다. 

 

바로 평상심(平常心)이 도(道)입니다. “어떤 것이 부처(佛)입니까?” 라는 질문에 옛 선사들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너는 누구냐?” 바로 우리의 삶 속에 도(道)가 있고, 부처(佛)가 있고, 진리(眞理)가 있고, 법(法)이 있고, 마음(心)이 있습니다. 심외무법(心外無法)입니다. 마음 밖에서 도를 구하고, 부처를 찾고, 진리를 찾고, 법을 찾는다면 그것은 외도입니다. 부처님 법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 하는지, 또 어떤 마음으로 수행해야 하는지 돌이켜보기 바랍니다. 자신의 마음이 비뚤어졌다면 어떤 마음으로 기도해야 바른 상태로 회복하는지 스스로 끊임없이 내면을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바른 삶은 바로 여러분의 목전에 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길은 여러분이 어떤 마음을 갖고서 어떤 생활하느냐, 바로 거기에 달려 있습니다. 자성불(自性佛)을 중생심(衆生心/分別心)에서 불심(佛心)으로 바꾸는 노력이 바로 기도(祈禱)이고 수행(修行)입니다. 오늘 법회 인연으로 모든 재앙이 사라지고 여러분 가정에 부처님 가피가 충만하기를 기원 드립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지난 2021년1월29일 부산 동명불원 대웅전에서 봉행된 ‘삼존불 개금불사 회향법회’에서 경선 스님이 설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1573호 / 2021년 2월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