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무엇을 ‘나’라고 하는가? : 오온과 무아 ②

장백산-1 2021. 5. 9. 00:26

무엇을 ‘나’라고 하는가? : 오온과 무아 ②

 

‘금강경’ 스테디셀러지만 사상(四相) 해석은 제각각

 

6~7종 전문 학술 번역서도 잘못 해석 … 중생상(衆生相) 번역이 가장 심각한 해석

중생상(衆生相) 은 연기법(緣起法) 모르고 ‘나라는 경험 주체 있다’는 그릇된 관념

오온 가운데 ‘색(色)’은 단순히 물질(物質)이라기보다 ‘감각 작용’ 자체(自體)를 의미

 

‘금강반야바라밀경’ 후진 구마라집이 번역한 금강경(金剛經)을 목판에 새겨 얇은 닥종이에 찍어냈다. 고려 충선왕 3년(1311) 각원 스님과 불자들이 뜻을  모아 목판에 새겼고, 충숙왕 8년(1321) 찍어냈다.  소매 속에 넣어 가지고 다닐 만큼 자그마하다. 가지고 다니면서 읽고 외우고자 만든 것으로 고려 불교 신앙의 한 형태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 자료다. 접었을 때 크기는 세로 6.7cm, 가로 5cm다.

 

‘금강경(金剛經)’은 현대 한국 조계종의 소의경전(所衣經典)일 뿐만 아니라, 일반 불교도들 간에도 가장 애송되는 경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위 스테디셀러이자 베스트셀러 경전입니다. 현대 한글 역으로 출판된 번역도 30여 종이 넘으며 학술적 번역이 아닌, 사찰이나 재가불교 단체에서 일반신도들을 위해 번역한 것과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고 있는 번역 등을 합치면 100종은 쉽게 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강경에 나오는 사상(四相)에 대한 번역은 그야말로 제각각이어서 도대체 이러한 번역으로 사상(四相)에 대해 무엇을 이해하고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오역과 오해의 사례들을 일일이 다 거론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몇 가지 예만 들면 인상(人相)을 “내가 인간이라는 착각·오만함” 등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 태반이며 심지어 수자상(壽者相)을 “오래살고자 하는 욕심”이라 해석하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상에 대한 번역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것은 중생상(衆生相)에 대한 번역과 해석입니다. 일반 독자를 위한 번역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까지 출판된 6~7종의 전문 학술적 번역에서도 잘못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중생상(衆生相)’을 “내가 부처가 아니라 중생이라는 생각” 혹은 “깨달은 사람과 깨닫지 못한 중생을 분별(分別)하는 착각(錯覺)”이라 해석하고 있습니다.

 

중생상(衆生相)의 바른 이해를 위한 문헌적 근거는 저의 졸저 ‘불교와 불교학: 불교의 역사적 이해’(돌베개) 제5장에 상세히 밝히고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라며 여기에서는 중생상(衆生相)에 대한 결론만 요약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중생상(衆生相)이란 의식(意識)을 포함해서 안․ 이․ 비․ 설․ 신 등의 육근(六根)의 활동에 따라 전개되는 경험(經驗)의 ‘상속’(相續)을 마치 영속적인 자아(自我)가 실재(實在)하는 것으로 확신(確信)하는 잘못된 관념(觀念)을 뜻합니다. 이는 초기불교이래 불교전통에서 줄곧 부정해온 유아론(有我論)의 한 형태입니다. 부연하자면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맡고, 촉감을 느끼고,  생각을 하는 등의 ‘경험’(혹은 의식 활동)이 감각기관과 대상의 접촉에서 발생하는 연기적(緣起的) 산물(産物)임을 모르고 ‘나’라고 하는 경험의 주체가 있어서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맡고, 촉감을 느끼고,  생각을 한다고 하는 그릇된 관념을 지칭합니다.

 

중생상(衆生相)의 의미를 현대적 관점으로 말씀드리면, 중생상(衆生相)이란 우리의 육근(六根 : 눈, 귀, 코, 혀, 피부, 뜻) 활동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살아있음’이라는 생물학적(生物學的) 존재감(存在感)을 실체적(實體的) ‘나(我)’라 착각(錯覺)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생물학적(生物學的) 존재감(存在感)’이란 비유하자면 잠을 잘 때와 같이 모든 감각기관(실은 의식은 활동중이지만)이 비활동 상태에 들어갔을 때에는 ‘존재’에 대한 의식이 없지만, 잠에서 깨어 감각과 의식이라는 육근(六根)의 활동이 개시되면서 비로소 갖게 되는 ‘나’라는 존재감을 말합니다. 

 

중생상(衆生相)을 ‘생물학적(生物學的) 존재감(存在感)’으로 이해하는 이러한 해석은 ‘중생(衆生)’의 원어 ‘사트바(sattva)’가 뜻하는 일반적 의미체계 중의 하나인 ‘유정(有情)’ 즉 ‘감정과 인식 능력이 있는 존재’라는 뜻과도 잘 부합되며 나머지 다른 세 가지 상(相 : 아상, 인상 수자상)과 구별되는 유아론의 다양한 형태를 포괄적으로 보여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아상’ ‘인상’ ‘수자상’ 등이 철학적이며 종교적 측면의 유아론이라면 ‘중생상’은 육근의 활동이라는 일상적 경험에 의해 갖게 되는 유아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아상’ ‘인상’ ‘수자상’과 같은 철학적이며 종교적인 유아론보다, ‘중생상’과 같은 일상적 경험을 통한 존재감이 무아론(無我論)을 받아들이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상적 자아(自我)를 구성하고 있는 색(色) · 수(受) · 상(想) · 행(行) · 식(識) 다섯 가지 존재요소(법) 하나하나를 살펴보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러한 현상적 자아는 생활 세계에서 일상적으로 경험(經驗)되는 ‘나’로서 이해해도 좋을 것입니다.

 

먼저 색(色)이란 ‘지각(知覺) 될 수 있는 물질성’(materiality capable to be sensed)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온설(五蘊說)의 맥락에서는 다섯 가지 감각 기관인 안근 · 이근 · 비근 ·  설근 · 신근에 대응하는 형태, 색깔, 소리, 냄새, 맛 · 촉감 다섯 가지 지각 대상(sensorial objects)을 색온(色蘊)이라고 합니다(오온설에서 색은 가장 넓은 의미의 ‘색’으로 '색'은 다섯 가지 감각의 대상이 되는 색 ·성 ·향 ·미 ·촉을 다 포함하며, 육외입처(六外入處)에서의 ‘색(色)’은 시각 대상이 되는 감각 대상 즉 형태나 색깔을 가진 지각 대상만을 뜻한다).

 

또한 불교적 관점에서 ‘색(色)’이란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감각 대상을 가리키기보다 ‘지각된 것’을 의미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색(色)은 감각 기관인 안 ·이 ·비 ·설 ·신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오온설에서 굳이 감각 주체와 감각 대상을 구분하지 않는 것은 앞서 언급한대로 색은 외부 대상만이 아니라 ‘지각된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색(色)을 ‘물질(物質)’로 이해하기보다 ‘물질성(物質性)’으로 이해하는 것이며 이런 맥락에서 색(色)이란 ‘감각 작용’ 자체를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오온설 맥락에서 색(色)은 눈(eye)이라고 하는 감각기관(sense organ) 혹은 시각(視覺) 대상이 되는 물체를 의미하기보다는 ‘보는 작용’ (seeing) 그리고 ‘듣는 작용’, ‘냄새 맡는 작용’ 등 오감(五感) 작용 일반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는 많은 불교학 개론서나 불교학자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으로 대부분 색(色)을 단순 물질 정도로 이해해 ‘눈’ 등의 감각 기관과 그 감각 대상을 가리키는 것으로만 이해하고 있다).

 

오온에 관한 말씀은 다음 연재에서 이어가겠습니다.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 stcho@korea.ac.kr

 

[1584호 / 2021년 5월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