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자연(自然) 그 자체(自體)인 인간(人間)

장백산-1 2021. 5. 13. 14:19

자연(自然) 그 자체(自體)인 인간(人間)  - 몽지와 릴라

기독교에서는 자연(自然)을 볼 때 자연(自然)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로 본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 몸과 영혼을 가진 인간이 인간의 의지(意志)대로 자연(自然)을 지배(支配)하고 통제(統制)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긴다. 이같은 기독교의 자연관(自然觀) 영향 아래 놓인 서양중심 교육을 받은 현대인들은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여긴다. 인간은 하등동물과 달리 생각하고 도구를 쓸 줄 알며 말을 하고 감정이 있는 동물이라고 차별화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다른 존재들을 지배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으며 마치 자연(自然)을 벗어난 위치에 있는 것처럼 스스로 느끼게 된다.

​그러나 마음공부를 하다 보면 기독교의 가르침이 사람들의 삶을 피폐화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인간만이 세계를 지배하고 통제하고 자신마저도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은 환상(幻想)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 통제가 마음대로 안될 때 좌절하고 괴로워하며 스스로 무능력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인간은 자연보다 우위에 있지도 않고 세상과 종속관계 내지는 지배관계에 있지도 않다.

인간과 세상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인간을 포함한 이 세상 모든 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이고 세상이 나이다. 내가 세상의 우위에 있지 않고, 세상이 내 위에 있지 않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분별상(分別相)이며, 이 세상 모든 것은 각 개체가 갖추고 있는 조건 따라 인연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느끼 줄 아는 특성(特性)이 있고, 식물은 광합성을 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특성(特性)이 있다. 동물은 식물을 섭취하여 또 다른 동물인 사람들에게 양식을 제공하고, 인간은 늙고 병들어 죽으면 세균(박테리아)과 바이러스에 의해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간다. 이것은 다시 식물의 자양분이 되어 식물은 광합성 작용을 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인간(人間)은 결코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 아니다. 인간만이 갖는 특별한 능력을 만물의 우위에 서는 능력으로 본다면 엄천난 오산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식물만이 갖는 광합성 능력을 갖지 못한 모지리일 수 있다. 마음공부를 하다 보면 나라는 존재가 자연(自然)의 순환(循還) 질서(秩序)에 융합해가는 여정을 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내 뜻을 옳다고 고집하지 않고, 내 뜻을 타자에게 강요하지 않으며, 타인의 뜻도 내 뜻만큼 중요하며, 그렇더라도 그것이 실재하는 무엇으로 여기지 않게 된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순간순간의 인연(因緣)일 뿐이며 모든 인연(因緣)은 거대한 흐름 위에 있으며, 이 세상 모든 것이 무시무종(無始無終)한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자연(自然)의 섭리(攝理)에 내맡겨져 있다. 

​또한 육체(肉體)의 변화(變化)를 변화하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고, 이 세상 모든 것 모든 형상의 무상(無常)함이 거부할 수 없는 순리(順理)임을 깨우치게 된다. 무상(無常)한 자연(自然)이 찰나지간도 머물러 있지 않듯 나의 모든 것, 이 세상 모든 것이 각각의 인연(因緣) 따라 제 갈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저항 없이 보게 된다. 십우도(十牛圖)에서 보듯이 마음뿐인 이 세상의 실상이 완전히 드러난 뒤 자연(自然)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펼쳐지는 것은 사람들 자신의 자연성(自然性)이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人間)도 자연(自然) 자체(自體)라는 깨달음은 인간(人間)이 자연(自然) 그 자체(自體)로 살아가게 하는 존재방식을 터득하게 한다그동안 인공적이고 인위적이고 조작적인 삶의 패턴에서 벗어나 자연(自然)과 하나인 삶을 사는 능력을 회복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있는 그대로의 이 세상의 실상을 깨달아야 인간의 자연성(自然性)이 자연스럽게 회복된다.

이 세상 모든 현상(現像), 이 세상 모든 것이 자연(自然) 자체(自體)이다. 자연(自然)에는 머물러 있는 것이 없고 고정된 것이 없다. 따라서 자연(自然)에는 자연(自然)이라고 할 고정된 무엇이 없다. 무상(無常)의 삶, 무주(無住)의 삶. 늘 신선한 삶, 삶이라고 할 것 없는 거대한 신비(神秘)가 우리네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