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으로 세상을 보라. - 법상스님
지금 이 순간으로 보아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으로 보아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으로 볼 때 무분별심(無分別心)으로 볼 수 있고, 지금 이 순간으로 볼 때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으며, 지금 이 순간으로 볼 때 존재의 본질(本質)에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며, 근원의 성품(근본성품/본성), 진짜 나를 볼 수 있습니다.
모르긴 해도 사람들이 세상을 볼 때 지금 이 순간으로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생각됩니다.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은 과거 기억의 잣대를 가지고, 과거에 경험한 것, 과거에 배워 익힌 것들을 사용해서 삐뚫어진 모습의 지금 이 순간을 재어 보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를테면 여기 ‘목탁’이 있을 때 이것을 보며 ‘목탁이다’ ‘나무다’ 라고 이름짓기를 시작하고, 한 발 더 나아가 ‘호감가는 것’ ‘싫은 것’이라고 느낌을 개입하기 시작한다면 사람들은 목탁을 지금 이 순간으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본질로 다가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목탁이다’라고 하면 벌써 그것은 과거에 배워 익힌 것이고 경험을 통해 안 것을 끄집어 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물론 ‘나무’라고 말하는 것도 한 단계 이름짓는 분별심(分別心)을 벗겨냈을 뿐 여전히 지금 이 순간으로 온전히 보고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을 만납니다. 부모님, 형제, 자매, 친구들, 직장동료라도 좋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을 만나는 순간 벌써 과거로 그 사람을 보게 됩니다. 과거에 나에게 욕하고 나를 때린 사람, 나와 의견이 잘 안 맞는 사람, 혹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 미워하는 사람 등등 과거로부터 온 수많은 그 사람에 대한 분별심((分別心)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게 됩니다. 그것은 과거로 보는 것이지, 지금 이 순간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로 본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그 사람을 온전히 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과거는 환상(幻想), 꿈, 물거품, 그림자, 신기루 같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을 지금 이 순간으로 보지 못하고 과거로 지금 이 순간을 보게 되면 우린 지금 이 순간에, 존재의 근원에서 자꾸만 멀어지게 될 뿐입니다. 그 사람이 과거에 행한 그 어떤 잘잘못이나 선행을 가지고 지금 이 순간의 그 사람을 대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지금 이 순간으로만 그 사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로 그 사람을 보게 되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일 수도 있고, 미운 사람일수도 있고, 나에게 욕한 사람이기도 하고, 칭찬해 준 사람이기도 하고 온갖 분별심(分別心)으로 그 사람을 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으로 사람을 본다면 그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우리는 무분별 무차별의 평등(平等)한 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런 분별도 짓지 않고 그저 순수한 있는 그대로의 한 사람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랬을 때 우린 그 사람을, 또 그 사물을 온전히 보는 것이고, 그 존재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는 것입니다. 늘상 바라보던 대로, 과거의 잣대를 가지고 사람을 만나게 되면 사람을 바꿀 수 없습니다. 늘상 과거의 기억 대로 미운 사람, 사기꾼으로만 상대를 보게 되면 내 마음 속에서도 ‘미운 사람’으로 남아 있을 것이고, 그 사람의 마음 속에서도 스스로 ‘미운 사람’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과거로 인해 시작된 분별을 놓아버리고 지금 이 순간 텅~빈 마음으로 무분별심(無分別心) 무차별심(無差別心)으로 상대를 만나게 되면 나도 상대방도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당장 변화(變化)를 시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잣대를 가지고 있는 한 지금 이 순간을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과거의 잣대를 다 놓아버리고 텅 비어 평등한 무분별의 시선으로 보아야 그 존재를 변화시킬 수 있고, 나 또한 변화를 시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을 만날 때 이 사람이 미래에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어떤 이익을 줄까를 생각하고 만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미래로 보는 것이지 지금 이 순간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랬을 때 우린 그 사람의 본질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으로 그 사람을 볼 수 있다면 그 사람에 대한 그 어떤 분별도 붙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지금 이 순간 나는 한 사람(사람이라는 것도 분별이지만)을 보고 있을 뿐입니다. 좋은 사람, 미운 사람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 도움될 사람, 도움 안 될 사람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 그냥 그저 한 사람을 보고 있을 뿐입니다.
세상 모든 만물을 대할 때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으로 만날 수 있다면 우린 그 존재를 분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나무 한 그루를 볼 때에도 그 어떤 사람을 만날 때라도 지금 이 순간으로 볼 수 있다면 그 때 비로소 우린 나무를, 한 사람을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나 미래에 투영(投影)된 색안경(色眼鏡)을 끼고 상대방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판단이나 기억, 분별도 다 놓아버린 평화로운 시선으로 있는 그대로를 직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나무 한 그루를 보면서 우주 법계 전체를 볼 수 있고, 한 사람을 보면서 부처님의 모습을 만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단 한 순간 만이라도 지금 이 순간으로 세상 만물을 보도록 해 보세요. 물론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반면 너무나도 쉬운 일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은 항상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언제나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그저 우린 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실은 ‘있는 그대로’ ‘지금 이 순간으로’ 보는 것이 더 쉬운 일이지요. 그냥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더 쉽지, 우리들처럼 ‘있는 그대로를 과거나 미래의 잣대로써 왜곡하여 보는 것’이 더 쉽겠어요?
아무런 이름도 짓지 말고, 아무런 분별도 하지 말고, 아무런 과거의 연상작용도 가지지 말고, 아무런 미래의 기대도 가지지 말고, 기존의 지식이나 상식, 경험들일랑 다 불살라 버리고 오직 지금 이 순간으로 그냥 보기만 하면 됩니다. 과거나 미래라는 시간(時間)의 관념(觀念)에서 해방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의 나를 형성시켜 왔고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 준 것이 과거(過去)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 내 꿈과 희망을 실현시켜 줄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있는, 그 미래에 대한 기대 또한 다 놓아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으로 본다는 이 말의 의미를 조금 더 깊이 사유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으로 본다는 이 말은 아주 중요한 말이고
마음 공부에 있어서, 또 세상 사는 삶의 방식에 있어서 아주 소중하고 밝은 해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아마도 지금까지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은 지금 이 순간이 아닌 과거나 미래로써 세상을 보기만 했을 것입니다. 과거로써 또 미래로써 사람이며 모든 사물들을 판단했을 뿐, 지금 이 순간으로 사람이며 사물을 보지 못했습니다.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세요. 과거(過去)와 미래(未來)가 실존(實存)하는 것일까요? 과거나 미래가 실제로 있습니까? 과거나 미래를 살아 본 사람이 있습니까? 우린 오직 지금 이 순간을 살 수 있을 뿐입니다. 과거와 미래는 없습니다. 시간이라는 개념(槪念)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환상이고 꿈이며 신기루입니다. 여몽환포영이며, 여로역여전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일 분, 이 분, 한 시간, 한 달, 일 년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착각(錯覺) 속에서 살지만, 어디 시간을 우리가 볼 수가 있을까요? 시간이라는 개념 관념은, 과거나 미래라는 개념 관념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환상, 꿈, 허깨비에 불과합니다.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말할 것도 없고, 과거는 우리 머릿속에 기억된 지나간 지금 이 순간의 흔적일 뿐, 실체적이거나 모양을 가진 실재가 아닙니다. 내가 분명히 과거를 살아왔다고 억지를 쓸지 모르지만, 우리는 분명 지금 이 순간만을 살아왔지 과거를 살아 오지는 않았습니다. 과거의 그 순간은 분명 지금이엇지 과거가 아니엇다는 말입니다.
과거의 살아온 기억들이나, 지금 이 순간의 몸뚱이, 성격, 특기, 재능 혹은 지금 이 순간의 지위, 권력, 돈, 명예 그런 것들이 ‘나’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런 것들은 ‘나’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과거의 모습나 미래의 모습들을 ‘나’라고 착각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과거나 미래로만 세상을 보며 살아갑니다. 물론 미래에 그 어떤 꿈과 희망을 꿈꾸며 행복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꿈과 희망은 사람들을 지금 이 순간에서 멀어지게 만듭니다. 미래의 희망을 품는 것은 또 과거의 배운 것들을 잘 기억하고 떠올리는 것은 그동안 아주 바람직하며 올바른 것이라고만 교육(敎育)을 받아왔습니다. 그것이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기도 했지요.
그러나 이제 그런 고정관념(固定觀念)일랑은 완전하게 비워버리셔야 합니다. 상식(常識)은 몽땅 쓰레기라고 누가 말했다고 하데요. 또 틱낱한 스님은 희망을 꿈꾸지 말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과거나 미래는 환상이며 허깨비이며 신기루이기에 과거나 미래에 끄달리고 집착하면 안 된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마음공부, 수행 열심히 하면 행복해 질 수 있느냐고, 나도 깨달을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답변은 ‘아니요’입니다. 언젠가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그 순간이라는 것을 다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깨달음을 향해, 삶의 행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걷고 또 걷고 달리고 있지만 우린 한 발자국도 가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바라는 바로 그 순간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으로 세상을 사람을 사물을 볼 수 있어야 아무 분별도, 잣대도, 옳고 그름도, 맞고 틀림도 없는 온전한 무분별(無分別), 무차별(無差別)의 정견(正見 : 올바른 견해)으로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부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현재라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만이 우리 안에 깃들어 있는, 온 우주 법계에 충만해 있는 자성불, 주인공, 본래 면목, 진짜 나를 만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자성불, 주인공, 본래 면목,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지금 이 순간’ 입니다.
이 세상엔 본래부터 옳고 그름, 맞고 틀림, 좋고 싫음과 같은 분별(分別)이 없습니다. 본래부터 무분별(無分別)이고 무차별(無差別)이지 차별, 분별은 우인간들이 만들어 낸 환상(幻想)입니다. 인간 스스로 그런 환상이라는 분별을 만들어 내어 그 환상 속에 빠지고 그로 인해 괴로워 한단 말입니다. 그러니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어요. 본래 고요하여 한 번도 괴로운 적 없었던 여여한 법계를 사람들이 제 스스로 분별짓고 차별하여 좋고 싫음, 맞고 틀림, 나고 죽음 등의 분별을 만들어 냈고, 또 스스로 만든 그런 분별에 울고 웃고 하며 괴로움과 즐거움에 헤매이고 있다는 말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이 얼마나 기가 막히는 짓이고 어리석은 짓입니까. 세상은 본래부터 고요하고 텅 비어 아무런 분별이 없습sl다. 세상은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으며 시간이란 관념 따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시간이며 과거, 미래가 없으니 물론 현재라고 표현하는 것 조차 군더더기일 뿐이지만, 억지로 애써 방편(方便)으로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보니 ‘지금 이 순간으로 보라’ ‘현재로 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으로 세상을 보면 아무 괴로움도 있을 수 없습니다. 과거로 보고 미래로 보았을 때 즐거움이라는 분별이 있고, 괴로움이라는 분별이 일어나지 현재로 본면, 지금 이 순간으로 보면 아무 분별이 없기 때문에 즐거움도 없고 괴로움도 없습니다. 아무리 괴로운 순간이라도 그 순간 온전히 지금 이 순간으로 보게 되면, 온전히 깨어있는 마음으로 괴로운 순간을 관찰하게 되면 괴로운 그 순간은 ‘괴로운 순간’이 아닌 그저 ‘지금 이 순간’일 뿐입니다. 무분별의 순간이 될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으로 세상을 보면, 현재로 세상을 보면 이 세상은 고요하고 텅~비어있습니다. 이 세상엔 아무 분별도 없으며, 그 때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비로서 그 때 일체 만물의 근원, 일체 존재의 근원, 본질을 볼 수 있습니다. 나와 만물의 성품자리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견성(見性)입니다.
지금 이 순간 아무런 분별도 짓지 말고 과거 미래라는 시간의 잣대를 다 놓아버리고 오직 지금 이 순간으로 세상을 사람을 사물을 보기만 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이 우리가 그렇게 열심이 찾고 있던 ‘바로 그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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