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스님과 현대물리학

영생불멸(永生不滅)한 우주(宇宙)를 부처(佛)님이라 표현한다.

장백산-1 2021. 6. 10. 13:40

영생불멸(永生不滅)한 우주(宇宙)를 부처(佛)님이라 표현한다.  - - 청화스님


노자(老子)는 ‘인생은 영원한 나그네 길이다’ 나그네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 것인가? 이것도 알 수가 없어 그냥 나그네 길에서 살다가는 것이 인생이다 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물론 노자의 본뜻은 보다 깊은 뜻이 있겠습니다마는 보통 일반 사람들 수준을 본다고 생각할 때는 나그네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 것인가 이것도 모르면서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불교 인연법(因緣法)에서는 한 자리에 앉아서 이렇게 마주대해서 같이 얘기도 하고 마주 보고 하는 인연이 오백생(五百生) 인연이라 합니다. 이 자리에 계시는 분들 중에 불교의 윤회(輪廻)를 믿지 않으시는 분도 계시겠지요. 인정 안하시는 분도 계십니다마는 불교의 윤회법은 비단 석가모니만 말씀을 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의 피타고라스나, 엠페도클레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도 윤회설을 인정을 했습니다.

우리가 낳고 늙고 병들고 죽고 하는 것이 금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 전생도, 불교말로해서 무시이래(無始以來)라, 즉 끝도 갓도 없는 무시(無始)로부터서 몇 천 생 몇 만생을 낳고 죽고 그렇게 되풀이 해왔다는 것입니다. 또한 미래 역시 두고두고 몇 천생 몇 만생 끝도 갓도 없이 무종(無終)이라 끝이 없이 다시 또 연장돼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수많은 생을 되풀이 하면서 금생에 한 번 슬쩍 이렇게 만나서 얘기하는 것도 역시 오백생 동안 다시 생을 되풀이해서 만나는 것이지 그냥 우연히 만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길을 가다가 잠시잠깐 스쳐가는 것도 역시 삼세인연(三世因緣)이라, 즉 세 번 낳고 죽고 하는 인연(因緣)이 상합(相合)이 돼서, 인연(因緣)이 합해져서 금생에 잠시 스쳐가는 인연(因緣)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만나는 우리 인연(因緣)도 더구나 해외 만리타향 미국땅에서 만나는 우리 인연(因緣)은 그야말로 오백생의 인연(因緣)이 훨씬 더 넘는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대단히 참 여러분들에 대해서 저는 친밀한 동포애를 한결 더 깊게 느끼게 됩니다.

저는 이와 같이 승려(僧侶)의 복색(服色)을 하고 있습니다만 제 마음은 불교라 하는 테두리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특히 참선하는 선방에 가서 보면 참선하는 사람들은 불상도 안 모십니다. 불상도 안모시고서 달마(達磨)스님이라든가 어느 성자의 초상화만 모시고서 우리 마음을 그렇게 절제하는, 마음을 다스리는 상징적인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 어느 불상을 모셔놓고 그 앞에다 뭣을 붙이고 또는 절도 하고 그렇게는 하지 않습니다. 그건 왜 그런가 하면 진리(眞理)라는 것이 부분적으로 어디에만 있는 것이 아닌 것이고, 진리(眞理)라는 것이 석가모니(釋迦牟尼)한테만 있는 것도 아니고, 불교 인생관에서는 바로 우주(宇宙) 자체(自體)를 하나의 유기적(有機的)인 생명체(生命體)로 봅니다. 따라서 불교는 인간만이 최고다 하는 인본주의(人本主義)는 지양(止揚)을 합니다. 인간을 비롯한 동물, 식물, 지구, 하늘에 있는 성조, 태양, 달, 은하계 등 모두가 다 하나의 생명(生命)으로 연결(連結)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불교의 세계관이자 인생관입니다. 불교의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면 ‘우주가 바로 부처의 몸이다’ 법계신(法界身)이다. 이와 같이 말씀을 합니다. 불교 말씀만 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마는 제가 아는 것이 그것밖에 없어서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불교에서 부처님(佛)을 말할 때 일반인이나 불자들도 부처님(佛)이라 하는 개념(槪念)에 대해서 명확한 지식이 없으면 부처님(佛)이라는 명칭에 대해 상당히 오해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님은 석가모니만을 부처님이라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까 제가 말씀드린 바와같이 우주 전체를,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우주, 영생불멸(永生不滅)한 우주를 바로 부처님(佛)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한 명의 사람으로 태어나서 우주의 생명체, 우주의 생명 자체와 함께 하나가 되었단 말입니다. 분별 망상 번뇌를 녹이고 인간의 여러 가지 좋지못한 업(業)을 없애고서 청정무비(淸淨無比)한 그러한 마음자리가 돼서 우주(宇宙)의 진리(眞理)와 하나가 된 분이 석가모니고 또는 석가모니뿐만이 아니라, 그 뒤에 달마스님이라든가, 한국의 원효(元曉)대사라든가 서산(西山)대사 그분들도 똑같이 마음을 깨달아서, 즉 인간성(人間性)의 본질(本質)을 깨달아서 부처(佛)가 됐다는 말입니다. 우주와 하나가 됐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석가모니, 달마스님, 서산스님 그 분들도 다 깨달아서 부처가 된 분이고 그러면 우리 중생들은 어떠할 것인가? 성자가 못 된 우리 중생들도 깨닫지 못해 있을 뿐이지 석가모니, 달마스님, 원효대사, 서산스님과 똑같이 본래 우주생명자리인 부처(佛)를 갖추고 있는 것은 똑같다는 말입니다.

‘일체중생(一切衆生) 개유불성(皆有佛性)’이라, 즉 모든 중생이 다 부처의 성품을 갖추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중생 그러면 비단 우리 사람만이 중생이 아니라 앞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동물 식물 무생물이나 하여튼 유상, 무상, 유정, 무정 모든 존재가 다 중생이라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존재에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는 성불(成佛)할 수 있는 씨앗이 다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자가 된 분들은 이미 다 부처가 됐고, 우리 중생들은 본래는 다 부처지만, 본래는 부처가 될 능력은 갖추고 있지마는 아직 부처가 안 돼있다는 그런 차이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처(佛)라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를 말씀드리면 가장 간단합니다. 그건 왜 그런가 하면 앞서도 말씀드린바와 같이 부처(佛)는 어디에나 언제나 존재하고 또는 이 세상 모든 것은 무엇이나 다 부처(佛)로 돼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바다에서 바람이 불면 바람 따라서 이 파도, 저 파도 천파만파의 파도가 일어나겠지요. 물거품도 수억의 거품이 일어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우주(宇宙)라 하는 것이 부처라 하는 부처라 안 해도 그때는 좋습니다. 유교(儒敎)식으로 하면 태극(太極)이라든가 또는 우주의 정기(精氣)라든가 또는 이기(理氣)라든가, 원리라는 리(理)자, 기운 기(氣)자, 이기(理氣)라든가 이렇게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튼 우주(宇宙)의 정기(精氣)를 부처(佛)라고도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의 정기가 연기적(緣起的(으로 그때그때 인과(因果)의 법칙 따라서 삼라만상만물이 되듯이 앞서 제가 말씀드린바와 같이 바다가 바람 따라서 천파만파 일어나고 또는 무수의 거품이 일어나듯이 우리 중생도 똑같이 부처(佛)라 하는 우주의 생명체로 부터 인과의 법칙 따라서 사람이 되고, 다른 동물이 되고, 천체가 되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불교의 세계관 인생관에서는 우주(宇宙)를 부처(佛)를 거대한 하나의 생명(生命)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처의 자리, 우주는 어떠한 능력이 있는가?

부처자리, 우주의 본래 생명자리, 이 자리는 무한공덕(無限功德)이라 한도 끝도 없는 그런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능력을 우선 간추려서 4가지 공덕, 열반사덕(涅槃四德)으로 간추려서 말씀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를 믿는 사람이라든가 또는 불교를 안 믿는다 하더라도 철학적(哲學的)으로 인생(人生)과 우주(宇宙)의 본체(本體), 근본(根本)이 무엇인가? 하는 관심을 가지고서 제 말씀을 들으시면 도움이 되실 런지 모르겠습니다.

 
4 가지 속성을 들어 우주(宇宙)의 본래(本來) 생명(生命) 자리를 얘기합니다.

하나는 영생불멸(永生不滅)하는 생명(生命), 인생과 우주의 본래의 부처자리 그 자리가 영생불멸하는 생명자리라는 것입니다.<상덕(常德)> 또 한 가지는 행복(幸福)이 완벽한 자리라는 것입니다.<낙덕(樂德)> 인간의 몸이라든가 또는 현상계라 하는 것은 생사가 있고 또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어서 소멸이 있다고 봅니다마는 본질적인 그 자리는 생사도 없고 죽고 낳는 것도 없이 항시 그대로 영생불멸(永生不滅)하는 것이고 또는 그 뿐만 아니라 완벽한 행복을 갖추고 있다 말입니다. 조금도 고통도 없고 번뇌도 없고 모든 그런 행복 안락을 갖추고 있다는 그런 것이 역시 하나의 영생불멸(生住異滅)한 우리 인생과 우주의 본래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3번째는 신통자재(神通自在)라, 신통(神通)은 중생들이 알 수 없는 기적적인 것이 신통 아니겠습니까. 신통은 신화(神話)에나 있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들 하십니다마는 불교에서는 그렇게 안 봅니다. 우리 인간성이나 우주성 자체, 우주의 본래성품 자체에 있어서 기적적인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아덕(我德)>

4번째는 청정무애(淸淨無碍)라 조금도 더렵혀 진것 없고, 또는 분별 망상 번뇌도 없이 아주 맑기가 한도 끝도 없이 청정한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정덕(淨德)>

우주의 본래 생명자리는 이와 같이 영생불멸하고, 완벽한 행복을 갖추고 있고, 신통묘용(神通妙用)이라 무한기적을 다 갖추고 있다 그 말입니다. 또는 청정무비해서 조금도 번뇌라든가 또는 찌꺼기라든가 그런 흐림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성의 본질인 동시에 우주의 본성인 바로 부처의 속성입니다. 불교인들이 수행을 하고, 염불(念佛)해서 부처의 이름도 외우고, 또는 명상(冥想)해서 참선(參禪)도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은 그 뜻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그와 같이 우리 인간이 본래 갖추고 있고, 일체 존재가 본래로 갖추고 있는 그런 자리, 영생불멸(生住異滅)하고, 완벽한 행복을 갖추고 있고, 일체 존재를 다 알 수가 있고, 그와 동시에 청정무비해서 조금도 번뇌나 또는 흐림이나 그런 찌꺼기가 없는 그런 의식의 경계가 우주 본체의 갖추고 있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능력을 갖춘 분은 성자이고, 부처이고, 능력을 갖추지 못한 분은 범부(凡夫)고, 중생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비단 석가모니뿐만 아니라 아까 말씀드린바와 같이 불교내의 각 도인들도 마찬가지이고 또는 예수님이나 또는 공자님이나 또는 노자님이나 그런 분도 똑같이 인생과 우주의 본래자리를 깨달아서 우주의 본 성품과 하나가 되는 성자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들이 온전한 성자라고 하면 그때는 응당 아까 말씀드린바와 같이, 몸은 하나의 물질이기 때문에 몸은 그때그때의 인연(因緣) 따라서 생멸(生滅)된다 하더라도 마음은 영생불멸(永生不滅)하고 동시에 행복도 완벽합니다.

성자의 행복은 눈에 보이는 세계의 행복이 아닙니다. 물질이나, 지위라든가 또는 자기 권속을 잘 만나고 못 만나고 하는 그런 저런 문제가 아닙니다. 성자의 행복은 얼마만치 영생, 영생의 그러한 본질적인 것을 자기가 누리고 있는가 거기에 성자의 행복이 있습니다.

또는 일반 중생들이 얼마만치 영생불멸(永生不滅)한 그런 자리로 갈 수 가 있는가.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불교 인생관에서 본다고 할 적에 나나 너나 절대로 차이가 없고 둘로 안 보는 것입니다. 일체(一切) 존재(存在)의 생명(生命)이 바로 부처(佛)라 하는, 우주(宇宙)라 하는 그런 자리이기 때문에, 부처(佛) 그러면 우주(宇宙)의 본체(本體)를 인격적(人格的)으로 표현해서 부처(佛)라 그럽니다. 마치 하나님 하듯이 말입니다. 우주의 하나의 도리, 천지 우주가 다 순수한 정기, 순수한 에너지 그자리가 바로 부처(佛)로 표현하는데 그 자리는 생명(生命)이기 때문에 인격적으로 표현해서 부처(佛) 그러는 것입니다. 또는 그 자리는 우리 마음의 본체이기 때문에 마음 심(心)자를 보태서 그때는 불심(佛心) 그러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인생을 비롯해서 일체존재의 근본성품이기 때문에 근본 실상이기 때문에 그때는 불성(佛性) 그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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