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치 아픈 문제? 괴로움? 그건 실체가 아니다.
매사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노심초사하고 초조해 하는 바로 그 마음, 그 생각이 가장 큰 문제를 초래한다. 문제가 생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가 생기는 것을 문제라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문제다. 문제 없는 삶이야말로 사실은 가장 큰 문제다.
우주는 다양한 삶의 문제를 통해 사람들을 깨어나게 한다. 당신의 삶에 문제가 생기는 유일한 목적은 오직 당신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니 골치가 아픈 큰 문제가 생겼을 때 업장이 두텁다고 여기며 스스로를 자책할 필요는 없다.
업보는 단순한 구조적 요소일 뿐, 업보 그 이면의 진실은 당신이 깨닫기를 바라는 우주의 무한한 자비에 있다. 업보가 많아서 괴로운 일이 나에게만 생기는 것이라고? 아니다 그건 인과응보적 발상이기는 해도, 표면적인 이해일 뿐이다. 더 큰 의미는 따로 있다.
당신은 업보가 많아서 괴로운 것이 아니다. 그런 걱정일랑 할 필요가 없다. 당신에게 괴로움이나 문제가 생기는 유일한 이유는 우주가 당신에게 이제 비로소 삶을 깨닫게 하고 배우게 하기 위한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당신에게 발생하는 모든 문제와 모든 고통의 가장 깊은 이유다.
우주법계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 처럼 그렇게 두려운 곳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처럼 그렇게 나쁜 존재가 아니다. 당신은 업장이 두터운 존재가 아니다. 그런 고민을 부여잡고 두려워 하던 마음을 이제 가볍게 내려 놓고, 완전히 안심 해도 좋다. "두려워하지 말고, 부디 안심하라."는 이 말을 명심하라. "당신은 당신 삶에서 완전히 안심해도 좋다."
본래, 우리 삶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고 괴로움(苦)도 없다. 내 생각이 문제나 괴로움을 문제라고 문제 삼기 전 까지는 말이다. 문제나 괴로움을 통해 삶을 기꺼이 배워나가라. 고통을 통해 인생을 깨달아라. 문제나 괴로움은 문제나 괴로움이라는 탈을 쓴 자비(慈悲)와 지혜(智慧)의 신호일 뿐이다.
내가 갖고 있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한번 적어 보라. 골칫거리들과 생각만 해도 괴로운 것들을 적어 보라. 그 목록을 인식하는 내 내면의 해석과 태도와 분별들을 말 그대로 인식전환 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사실은 내 바깥에 실제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에서 그것들을 문제라고 '인식'했을 뿐이다. 바로 그 내면의 '인식(認識)'을 바꾸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그러니 외부의 문제를 바꾸려고 들지도 말고, 골칫덩이라고 해석하며 밉게 볼 아무런 이유도 근거도 없다.
중요한 사실은 외부의 문제를 내가 밉게 보면 그것은 내게 와서 미운 경계(境界)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그동안 우리는 스스로가 스스로의 문제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목록으로 작성한 문제들을 향해 가볍게 소리쳐 보라. 심각하게 소리치지 말고, 그저 가볍게 소리쳐 보라.
'왔니? 친구!' '또 무엇을 가르쳐 주려고 왔지?' '네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있고 싶을 만큼 있다가 가고 싶을 때 가도록 해! 내 존재 위를 오고 가는 것을 허락해 줄께' 우리는 단지 흥미로운 마음으로 내게 온 문제가 내게 가져다 줄 깨달음과 배움과 교훈들을 농부의 마음으로 수확하기만 하면 된다. 물론 그 배움과 깨달음의 학습은 일종의 게임과 같아서 잘 풀릴 때도 있지만 잘 안 풀릴 때도 있고 겉으로 보기에는 괴로울 때도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귀한 가르침은, 겉으로 보이는 것들에 속지 말라는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들 그건 단지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지, 진짜로 그런 것은 아니다. 고통, 아픔 그게 뭐라고 그 가짜를 받아들이지 못해 안달볶달하며 심각하게 괴로워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건 우리들 위를 잠시 스쳐 지나가는 우리 인생을 박진감 넘치게 만드는 장치들일 뿐이며,게임 요소들일 뿐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들 그건 진짜가 아니다. 그건 신기루며 꿈이고 진짜처럼 보이게 해주는 기가 막히게 생동감 넘치는 뛰어난 삶의 장치일 뿐이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그런 장치들은 너무 정교하고 우수해서 진짜로 괴로운 것 같고, 정말로 아픔을 주는 것들인 것같다.
꿈 속에서도 아플 때는 아프지 않은가. 영화를 보면서도 주인공에게 동화가 되면 주인공처럼 내 마음도 아프지 않은가. 그러나 그 아픔은 진짜가 아니기 때문에 흘러가고 지나간다. '이것도 다 지나가리라' 잠깐 아프기는 할 지언정 아픔도 흘러 지나가는 것이다. 진짜 아픈게 아니라 가짜로 아픈거고 계속 아픈게 아니라 잠시 아픈 것일 뿐이다.
이번 생에 태어나 한 평생을 한바탕 잘 살아보려고 이 지구별에 온 사람이 그 정도 아픈 연극 쯤이야 까짓거 뭐 별 일인가. 인생은 심각해 할 아무것도 없다. 다 가짜인 걸 뭐. 그러니 이제부터는 문제가 생겨날 때, 가만히 마음을 살펴보라. 문제를 '문제'라고 낙인 찍고 있는 순간을 발견해 보라. 이제부터는 문제를 '문제'라고 낙인 찍고 있는 바로 그 순간, 미소를 지으며, '이번 문제는 나에게 어떤 교훈을 주려고 왔을까?' 하고 흥미롭게 받아들여 보라.
그동안의 습관적인 문제 양산에서 문제를 받아들임으로의 '대전환의 순간' 당신의 내면에서는 너털웃음이 터져나올 것이다. 우주법계가 당신과 함께 파안대소 할 것이다. '대전환의 순간' 이것이 바로 우주법계가 우리를 깨닫게 하는 방식임을 이제서야 눈치를 챈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주법계가 우리들에게 '지혜'를 주기 위한 '자비'의 계획이다.
붓다는 바로 '지혜'와 '자비'의 화신이 아닌가. 우주법계는 고해라는 인간계의 반어적 구조를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지혜와 자비를 씨뿌리고 있는 한없이 자비로운 법신(法身)이요 부처(佛)다. 이제 그만 '안심'하고, 분별 없이 모든 것을 법신불(法身佛), 진리(眞理)에 내맡기고 수용해 보라.
2013.06.16 글쓴이: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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