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가장 중요한 순간은?

장백산-1 2022. 1. 14. 13:51

가장 중요한 순간은?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많이 포근해 졌다. 그리고 들녘에는 벌써 이렇게 새봄을 맞이하는 꽃들이며 봄나물들이 한창이다. 이렇게 세월은 하루가 다르게 흘러가는데 내 속 뜰의 공부는 얼마만큼 그 흐름에 부응하며 보내왔는지… 하루 이틀, 한 시간, 일분, 일초 이렇게 흐르는 시간을 너무 쉽게 소모해 버리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날이 갈수록 단순한 아쉬움에 그치지 않고 좀 더 뻐근한 가슴앓이로 다가온다.

 

이 소중한 기회 이 소중한 순간을 놓쳐버리면 다음 순간이란 그다지 소중하지 못하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내게 주어진 이번 생에 가장 소중한 순간이 되어야 한다. 백일 천일 공부할 것도 없고, 전생 공부 인연 논할 것도 없으며, 다음 생에도 이 공부인연 이어지기를 구할 것도 없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내가 그렇게 찾던 목매어 찾던 '바로 그 순간'임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계속해서 바라고 또 바란다. 많은 돈을 벌기 바라고, 지위가 높이 오르길 바라고, 크게 성공하길 바라며, 계속해서 무엇인가 이루길 바란다. 그러나 바라는 순간 바라는 그 마음은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없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를 최선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바라던 그 모든 일이 이루어진 순간이 되어야 한다. 자꾸 어디로 가려고 애를 쓰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우린 이미 완전하게 도착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밥 먹는 그 사소한 일상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깨달음의 순간인 것이다. 밥을 빨리 먹고 일 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오직 밥 먹는 그것이 그대로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밥을 먹는 순간은 온전히 밥만 먹는 것이다. 밥을 먹으면서 다른 생각을 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과거를 떠올리는 등, 그렇게 번잡스럽게 하지 않고, 오직 밥만 먹어야 한다.

 

밥을 먹는 순간, 일을 하는 순간, 걷는 순간, 대화하는 순간, 매 순간 순간 몸과 마음이 온전히 매 순간에 있어야 한다. 매 순간 도착해 있어야 한다. 어느 다른 목적지를 향해 달려 갈 필요는 없다. 이미 도착지에 도착해 있기 때문이다. 이미 도착해 있기 때문에 도착하려고 애쓸 것도 없고, 깨달으려고 애쓸 것도 없고, 이 괴로운 세상 잘 살아 보려고 애쓸 것도 없이, 매 순간 순간 이미 도착해 마친 것임을 알면 된다.

 

그랬을 때 더없이 평화롭고 향기로울 수 있고 낱낱의 모든 움직임이 그대로 좌선이고 깨어있음이 된다. 모든 순간 순간 더 이상 도달할 곳이라고는 없이 그 순간이 가장 온전한 순간이 되는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우리들이 그렇게 찾아 나서던 궁극의 순간인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 마음을 돌아보자. 늘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려 하고, 무엇인가 목적 달성을 위해 애쓰고, 끝이 보이지 않는 욕망과 집착의 사슬에 빠져 한 시도 만족하지 못하며, 한 시도 도착의 평화로움을 맛보지 못하는 이 마음을…

 

시간이란  사람들이 만들어 낸 조잡한 관념이라는 환상에 불과하지만, 너무나도 빨리 스쳐 지나가는 이 시간 속에 내가 온전히 살고 있는 순간은 얼마나 되는가? 이런 물음을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야 할 것이다.

 

지금 순간을 살면 시간이란 개념인 환상은 없다. 지금 이 순간을 살면 과거가 없고 미래가 없는데 시간이란 환상이 어디에 붙을 수 있겠는가. 이 새로운 순간. 이 소중한 순간 순간을 결코 소홀히 흘려보내지 말라.

법상 스님  <법보신문, 2003-04-02/70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