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머물러 안주할 수 있는 곳을 찾지말라

장백산-1 2022. 5. 6. 16:26

머물러 안주할 수 있는 곳을 찾지말라


'머물러 안주할 수 있는 곳을 찾지말라'는 말을 금강경에서는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고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계속해서 끊임없이 머물수 있고, 안주할 수 있는 곳을 찾습니다.

 

돈을 많이 벌거나, 크고 비싼 집을 사거나, 사람과 사랑을 나누거나, 생각으로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견고히 하여 '많은 돈, 크고 비싼 집, 사랑, 견고히 쌓은 가치관이나 세계관 거기에' 의지해서 살면 안심할 수 있는 어떤 '사상', '철학', '종교', '물질적 대상' 같은 것을 찾아서 그같은 사상, 철학, 종교, 물질적 대상 거기에 머물고 안주하고자 하는 경향이 매우 큽니다.

 

그러나 그렇게 머물 수 있고 안주할 수 있는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본래 한 법도 없기 때문입니다(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무엇인가에 머물고 안주하고자 하는 마음이 나를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아 나서게 만듭니다. 머물 수 있고, 안주할 수 있는, 든든한 나의 고향이 될 만한 의지처를 찾게 만듭니다. 그런 무언가를 추구하는 마음(추구심)은 사람들을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있게 못하게 해서 의지처를 찾아 나서게 만들 뿐입니다.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있지 못하고 의지처를 찾아나서는 동안에는 진정으로 안심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같은 추구심, 안주하려는 마음, 머물 곳을 찾는 마음이 놓여질 때,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됩니다.
당신이 머물 수 있고 안주할 수 있는 곳은, 그저 아무 것도 아닌, 오직 바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뿐입니다.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당신 자체야말로 온전한 진실입니다.

 

그렇다고 진리를 깨닫겠노라는 발심도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되 하지 않아야 하고, 하지 않되 해야 합니다. 이것이 중도의 길입니다. 이 말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해하려 하지 마시고, '도대체 어쩌란 말이야?' 하고 답답하고 도무지 모르겠어 하는 그 마음으로 공부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곧 머물지 않고 안주하지 않는 공부 아닌 공부입니다.


2019.02.07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