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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의 진실 vs 머릿 속에 그린 허상

장백산-1 2022. 7. 21. 12:57

눈 앞의 진실 vs 머릿 속에 그린 허상


매 순간 사람들은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생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매 순간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생각을 하고, 아는 그 첫 번째 작용엔 문제가 없습니다.
매 순간 그냥 그렇게 경험할 뿐이고, 일어날 뿐입니다.

문제는 매 순간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생각을 하고, 아는 그 첫 번째 작용 이후에, 
이미 지나가버린 첫 번째 작용을 내 방식 대로 이미지화 하고, 해석하고, 분별한 뒤에 그렇게 스스로 분별해서 만들어 
놓은 그림자, 상, 기억, 허상, 허깨비, 의식의 쓰레기를 붙잡고서는 '그것'이라고 동일시하는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진짜 생생한 실재는 잠시 생겨났다가 사라지면 그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생생한 작용이 일어난 뒤에 남은 그림자, 
스스로 만든 허깨비에 대한 해석을 붙잡아 그림자 허깨비에 대한 해석에 집착을 합니다.

A라는 경험이나 작용은 이미 지나거버렸고, 지나가버린 뒤에 남은 A에 대한 나의 해석을 AA라고 가정해보지요.
사람들은 AA라는 그림자를 보고 A라고 여깁니다. AA는 내가 내 방식대로 만든 A에 대한 그림자, 상, 기억, 허상, 허깨비, 
의식의 쓰레기, 생각, 분별, 해석일 뿐이지, 진짜 A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진짜 A라고 그렇게 여기는 것이지요.

바로 그와 같은 그림자, 상, 기억, 허상, 허깨비, 의식의 쓰레기, 해석, 분별이 불교에서 말하는 의식, 식(識)이고, 
상(相)이며, 분별망상이고, 허상입니다. 사람들은 눈앞에 드러나 있는 지금 여기 이대로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기 방식대로 해석한 분별망상 속에서 그려진 그림자 허깨비를 진짜 실상이라고 파악합니다.

유식무경, 만법유식, 삼계유심, 심외무물 이라는 말은 이처럼, 우리의 허망한 분별의식이 세상 모든 것을 허망하게만 
파악한다고 해서 붙여진 말들입니다. 금강경에서는 바로 이 그림자, 허깨비, 상이 허망하다는 사실을 바로 알면 곧장 
여래를 본다고 하였습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머리로 해석해서, 생각으로 분별해서 보지 말고, 직접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눈앞의 당처를 그저 바라보세요.
있는 그대로의 진실, 있는 그대로의 실상은 언제나 눈앞입니다.

과거에 대한 모든 생각들, 미래에 대한 모든 생각들은 전부 다 허망한 허상이고, 분별망상입니다. 이미 지나가버린 
뒤에 남은 과거에 경험한 이미지를 그려놓고 지금 그 이미지 허깨비를 떠올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눈앞에 드러나 있는 텅~반 바탕자리 이것만이 진실입니다.
이렇게 매 순간 진실은 이렇게 지금 여기에 드러나 있지만, 우리는 거기에 대한 상(相)만을 취합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면 곧장 진실이 보입니다. 


2019.06.25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