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가는 곳마다 내가 주인임을 잊지 말고 세상 장엄하며 삽시다

장백산-1 2022. 10. 12. 14:40

가는 곳마다 내가 주인임을 잊지 말고 세상 장엄하며 삽시다

선을 쌓은 집안엔 경사가 있고 불선을 쌓은 집에는 재앙 있어
내가 있는 지금 이곳이 세상 중심이니 현생에서 참 부처 찾길
가족 이웃 모두를 공양하는 마음으로 살면 세상이 바로 내 것

 
 

조계총림 방장 현봉 스님은 “인류의 이기심이 오늘날 미래를 걱정할 만큼의 자연환경 변화를 초래했다”며 늘 선한 발원을 하며 살아갈 것을 당부했다.

 

 

오늘 이 지리산 대화엄사에서 대덕스님들과 불자님들을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지난 봄 네팔에 일이 있어 갔을 때 히말라야의 눈이 많이 녹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알프스 쪽 빙하들도 녹아서 산사태가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또 북극의 얼음도 녹고, 지구 온난화로 인해 바닷물의 온도도 많이 올라갔다고 합니다. 이처럼 자연환경의 변화로 지금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아마도 지구를 혹사했기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긴 세월 아름다웠던 지구별을 감싸고 있던 오존층이 파괴되고, 지하수가 오염되고, 강물이 흐려지고, 바닷물이 오염되고, 미세먼지가 대기를 감싸는 등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러다보니 고기들의 지느러미가 비틀어지는 등 많은 부작용이 생기고 있습니다. 산업화가 시작된 이후로 이런 변화가 일어났고, 우리나라 산업화는 한 60여년 밖에 안됐음에도 이러한 일이 생기고 있습니다.

왜 지구가 이렇게 오염됐을까요? 인류가 지구상에 살아온 이래로 지금처럼 문명의 혜택을 누린 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예전이라면 황제도 꿈꾸지 못한 삶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문명의 이기가 반대로 자연을 훼손하면서 100년 뒤에도 아름다운 지구가 존재할 수 있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지금 인류학자들이 걱정하는 미래입니다.

옛날부터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적불선지가 필유여앙(積不善之家 必有余殃)’이라고 했습니다.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고, 불선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재앙이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이처럼 잘 살 수 있는 것은 옛날 조상님들께서 이 아름다운 환경을 무너뜨리지 않고 친환경적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이 하는 행태는 불선을 쌓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지금 많은 분들이 좀 먹고살만해졌다고 해서 사치하고, 음식물 쓰레기도 많이 배출하고 그렇습니다. 동물들도 제 배가 부르면 먹지 않고 다른 동물을 해치지 않는데, 사람들은 제 배가 부른데도 필요 없이 다른 생명을 죽이고 해코지를 합니다. 연기관계로 보면 그것은 반드시 과보가 돼서 우리 스스로 받게 될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 100년 뒤 후손들은 지금 우리들 때문에 큰 재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집에서 허투루 쓰고 버리는 물 한 방울, 쓰레기통으로 나가는 쓰레기 한두 가지가 나중에 과보로 돌아오게 될 것이란 말입니다. 이대로라면 전례 없는 큰 태풍이 불어오고, 큰 지진 등 삼재팔난이 겹겹이 몰려올 수도 있습니다. 또한 전쟁이나, 모두 자국 중심으로 움직이는 세계 경제 등으로 인해 미래가 불확실합니다. 인류가 각자 자기 욕심을 갖고 자기만 잘 살려고 하는 이기심 때문에 이런 결과가 초래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나 혼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게 됩니다. 연못에 돌을 하나 던지면 파도가 하나만 일어납니까. 그 파도는 다시 다른 파도를 일으키면서 동심을 그리며 연못 끝까지 파문이 번져갑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이 행동이 주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선한 발원을 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 불자님들은 기도를 할 때, “우리 사업이 잘 되게 해 주십시오”하면서 “우리 거래처들도 다 잘 되게 해주십시오”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거래처들은 우리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니, 그 거래처의 거래처들이 잘 되게 해달라고 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게 잘돼야 결국 우리가 잘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願以此功德 普及於一切)입니다.

그 파문은 다시 언젠가 다시 다른 파장이 되어 내게로 오게 됩니다. 우리가 한 생을 살다가 죽으면 각자에게 그동안 살아온 삶이 그대로 다 저장되어 있는 블랙박스가 있습니다. 각도가 다르고, 위치가 다른 곳에서 본다고 해서 가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이 아주 투명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바로 이 세상의 중심입니다. 적도나 북극과 남극, 그리니치 천문대가 있는 곳이 중심이 아니라 내가 쓰는 바로 이 자리가 지구의 중심입니다. 그리고 내가 서서 쓰던 이 자리를 누가 대신 서 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40년 50년 살던 그 끝자락이 지금 바로 이 순간입니다. 앞으로 30년 40년을 살지 모르겠지만, 그 시작은 지금 여기에서부터입니다. 오늘 저녁에 집에서 다시 계산해보면, 이제까지 한평생 살아오고 지금 이 법회에 왔던 일도 과거가 됩니다. 그리고 먼 미래는 시작은 바로 또 그 순간부터가 됩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은 먼 과거의 끝이면서 먼 미래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무시무종이라고 합니다. 종말을 파는 종교가 있는데, 태초라는 구절이 있으니 결국은 종말을 팔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 불교 안에서는 무시무종입니다. 매 순간마다 태초가 되고, 매 순간마다 종말이자 먼 미래의 태초가 된단 말입니다. 그러니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은 바로 절대의 시간입니다. 그리고 내가 서 있는 바로 이 자리는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절대의 자리라는 말입니다.

부처님 법이 아무리 귀하고, 과거 삼천년 전 부처님께서 훌륭한 분이라지만 그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여러분들입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절대자 아닌 분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순간순간마다 모두가 절대 시간에 있습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 심지어 광물질까지도 모두가 그 절대의 자리에 서 있고, 절대의 순간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을 해보면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즉 하나의 미세한 티끌이 시방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먼지마다 다 그렇습니다. 또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이라, 하나 가운데에 모두가 있고 그 모두마다 낱낱이 다 그러하지 아니한 존재가 없습니다. 그렇게 내가 이 작은 눈구멍을 뚫고 지리산을 보면 지리산이 다 눈 안으로 들어옵니다. 지리산이 이렇게 다 들어왔으니까 다른 사람은 지리산을 볼 수 없을 텐데, 다른데서 눈구멍을 뚫고 거기서 보면 또 지리산이 거기서 비칩니다. 다 위치가 다릅니다.

지금 여기 내 동공에 비치는 여러분들, 그리고 여러분들 안에 비치는 이 모든 그림은 다 다르게 비춰진다는 말입니다. 전부 제 모양, 제 빛깔별로 그렇게 각자 그릇에 따라 이 세상을 수용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치를 깊이 깨달으신 옛 스님들께서 절을 세우시고, 중중화엄 세계가 바로 내 한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일러주셨습니다. 화엄사라는 이름도 그래서 붙여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내 몸과 온갖 번뇌와 갈등 하는 마음도 언젠가는 사라지지만, 진정한 나의 참 생명은 영원히 지리산보다도 더 깊고 저 섬진강 물보다도 더 오래 길게 흘러갈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기 위해 지금 여기 화엄사를 참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삼보의 공덕을 갚는 것이기도 합니다.

세월은 결코 기다리지 않습니다. 다음 생을 기약하지 말고 지금 사람의 몸을 받았을 때 반드시 참 부처를 찾아야 합니다. 그렇게 나도 각황의 그 왕위를 물려받겠다는 원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아무리 똑똑하고 잘나도 조폭 무리에 가면 깡패가 되고 맙니다. 반대로 아무리 자질이 못난 사람도 임금이 입양을 하면 왕자가 됩니다.

내가 과거 전생에 지어온 업이 두터운 하잘 것 없는 중생이라 할지라도 부처님께 귀의해서 원을 세우고, 오계를 받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진정으로 불자가 되는 것입니다. 왕자보다 더 높은 것이 불자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각황의 여러분들은 스스로 저마다 불자의 길을 가면 될 것입니다. 부처님은 부처님 길을 가고, 나에게는 나의 길이 있다는 말입니다. 국화꽃이 꼭 홍매를 닮을 필요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 가을에 나는 국화로 피러나겠다, 나는 저 패랭이꽃으로 피어나겠다, 나도 내 모양 내 빛깔로 내 아름다운 꽃을 한껏 피워서 이 세상을 장엄하겠다 하는 그것을 잡화음식이라고 합니다. 연꽃만이 꽃이 아니고 모든 꽃들이 아무리 잡초라도 다 자기 나름대로 꽃 이름이 있습니다. 그 모든 꽃들이 피어나서 아름답게 어우러진 그것이 바로 잡화음식이고 그것을 바로 화엄이라고 합니다.

우리 불자님들의 아이들을 황자라고 해야겠습니다. 각황전에 전부 입양을 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모두 절에 와서만 착한 불자인척 하지 마시고, 집에 가서 남편과 아내를 불보살님처럼 그리고 자식들을 전부 황태자처럼 여기고 이웃에 있는 모든 분들을 다 그렇게 공양하겠다는 마음을 지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바로 이 세상이 여러분들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수처작주, 이 세상에 내가 가는 곳마다 주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그렇게 세상을 장엄하면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정리=신용훈 기자 boori13@beopbo.com

이 법문은 조계총림 방장 현봉 스님이 9월3일 지리산 화엄사 화엄법회에서 설한 내용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1652호 / 2022년 10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