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고통의 강을 완전하게 건너가자

장백산-1 2022. 8. 31. 15:32

고통의 강을 완전하게 건너가자  - - - 월호스님

 

누구나 이미 불성(佛性 : 부처의 성품, 부처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불성(佛性)은 나에게도, 남에게도, 온 세상에도 충만해 있다. 그러므로 불성(佛性)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마치 바다 속에 살고 있는 물고기가 바다를 얻으려고 하는 것과 같고, 허공을 날아다니는 새가 허공을 얻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이세상 모든 것들은 불성(佛性)자리에서 드러나서 불성(佛性)자리 속에서 살다가 불성(佛性)자리에서 죽는다. 죽었건 살았건 상관없이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다  불성(佛性)자리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성(佛性)자리는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확인하기만 하고 보기만 하면 된다.

 

불성(佛性)자리를 확인하고 보기 위해서는 고정관념(固定觀念)을 쉬어야 하는데, 고정관념 중에 제일 큰 고정관념이 증오하는 마음과 애착하는 마음이다. 증오심(憎惡心)과 애착심(愛着心)의 정체는 무엇일까? 증오심과 애착심은 손님이다. 증오심의 뿌리나 애착심의 뿌리나 결국 뿌리는 동일하다. 손바닥을 위로 향하면 애착심이고 아래로 향하면 증오심이다. 마음을 잡아당기는데 쓰느냐, 미는데 쓰느냐, 그 차이일 뿐이다.

 

그래서 손님인 증오심이나 애착심이 일어나면 얼른 '손님이 찾아왔구나'하고 알아차리고, 그 손님에게 자기 닉네임(법명이나 별명)을 붙여서, “OOO가 누구를 미워(증오)하고 있구나.” 혹은 “애착하고 있구나.”라고 관찰한다. 촬영기사와 해설자 역할을 동시에 하는 것이다. 이렇게 꾸준히 관찰하다보면 마음이 생겨나서 머물다가 사그라져 마침내 미원하는 마음이나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과정을 알 수 있게 된다. 증오심이나 애착심과 동일시가 되지 않고, 다만 관찰자의 입장에서 증오심이나 애착심을 관찰하는 기쁨이 샘솟는다.

 

하지만 뿌리 깊은 애착심과 증오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경우에는 우선 모든 고통이 사라지는 진언을 외운다. 오온(五蘊)의 무더기나 혹은 육근(六根)의 무더기가 텅~비어있음을 비추어보고 모든 고통을 여의면 천만다행이겠지만, 아직 오온개공이나 육근개공을 사무치도록 깨닫지 못한 입장에서는 오온 육근의 무더기가 여전히 ‘나’라고 여기니까 고통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 세상 모든 것은 근원에서 보면 무아(無我)다 무아(無我). 나라고 하는 고정된 실체가 없는데 왜 중생들은 고통스러워 하는가? 중생들은 아직 무아법에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생들에게 무아는 이상이요 윤회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반야심경>에서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라는 진언으로 끝을 맺으며 이 진언을 외우라고 가르쳐 주신 것이다.


출처 :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