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체성은 없다. 단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일 뿐이다.
나는 그저 그냥 단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일 뿐입니다. 다른 그 무엇도 원하지 않고 다른 그 무엇이 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나는 다른 무엇이 되기를, 다른 누군가가 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부처가 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나는 그저 그냥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나일 뿐입니다. 그리고 정확히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그것입니다.
스님이라거나, 남자라거나, 늙었다거나 젊었다거나, 어디에 산다거나, 프로필에 무엇이 들어가거나, 무슨 종단 소속이라거나, 무슨 책을 썼다거나, 이런 것들은 내가 누구인지를 결코 보여줄 수 없는 것들입니다. 외모 생김새도, 성격도, 생각이나 가치관도 그 무엇도 나일 수 없습니다.
나라는 정체성? 그런 건 없습니다. 나는 그 무엇도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그 무엇도 될 수 있습니다. 정체성이 없는 아무것도 아닌 그것이 진정한 자유(自由)가 아닐까요.
내가 누구라는 정체성으로 굳어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불변(不變)과 수연(隨緣)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본성은 변하지 않아 불변이지만, 다만 수연으로 인연(因緣)을 따라 무수히 다양한 모습을 드러낼 뿐이라는 것이지요. 인연따라 젊기도 하고 늙기도 합니다. 늙음이나 젊음은 나의 정체성이 아닙니다. 잠시 연을 따른 것일 뿐.
승속도, 남녀도, 종교도, 재산도, 명예도, 성격도, 몸과 느낌, 생각, 욕망, 마음인 오온(五蘊)도 내가 아닙니다. 출가했다 환속할 수도 있고, 남자였다가 여자로 바뀔 수도 있고, 종교를 바꿀 수도 있으며, 돈과 명예도 성격도 인연따라 계속 바뀔 뿐 그것들은 진정한 나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지금 임시로 인연따라 부여된 이대로의 이것으로 그저 즐기며 허용하고 살아갈 뿐이지요. 다른 사람들이 부여받은 그들의 정체성을 부러워하지 않으면서 말이지요. 그 또한 임시이니까요.
물론 저 또한 임시로 부여받은 이 몸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기관지가 안좋아 묵을 긁는 소리를 낼 때가 많지만, 목이 아픈 것 그것이 바로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진실입니다. 현실이 곧 진실입니다. 그 진실을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지 않고 사랑하며 있는 그대로 경험해 줄 뿐입니다. 오른 쪽 무릎이 아파 높은 산은 오르기가 어렵지만, 그 대신 낮은 산이나 바닷길 트래킹을 얼마든 할 수 있습니다. 오른 무릎이 예전처럼 다 낫기를 바라는 대신,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무릎인 것에 감사하고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물론 목이든 무릎이든 나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시도하지도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병원도 가고, 목에 좋다는 것도 먹고, 인연 따라 할 수 있는 것들은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이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나는 깨달음을 얻은 부처가 아니라, 이토록 평범한 한 사람이라는 것이 좋습니다.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몸도 찌뿌등하고, 잠을 못 잘 때는 피곤하고, 때로는 게으로게 늦잠도 자고 싶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나일 뿐입니다.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당신임이 참으로 다행이고, 감사하고, 감동이며, 사랑스럽지 않으신가요?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 그 놀라운 진리로 깨어날 기회를 스스로에게 선물해 주세요.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인연따라 부여받은 그 임시의 나라는 정체성, 그것을 온전히 살아주고 매 순간 받아들여 경험하는 것을 통해 당신은 당신만의 고유한 깨어남을 선물 받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 당신에게는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이렇게 벌어지는 이러한 삶이 꼭 필요합니다. 설사 그것이 마음에 안 들거나, 최악의 경험일지라도 그렇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이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주어진 삶이 곧 진실입니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서라는 말도 있죠.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삶, 이런 세상,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모든 것이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일 뿐입니다.
큰 창문 밖으로 보이는 벚꽃이 하나 둘씩 꽃잎을 피웁니다. 동백꽃잎도 활짝피거나 혹은 툭툭 꽃잎을 떨구며 흙으로 돌아갑니다.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아름답습니다. 완성되어 있습니다. 활짝 핀 꽃잎 뿐만 아니라 툭 떨군 동백꽃잎 또한.
2020.03.21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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