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멸하는 것과 불생불멸하는 것 (길 위의 행복 명상)
길을 걷다 걷다 잠시 쉬어갈 겸 작은 카페 한 켠에 앉아
커피 한 잔과 따스한 햇살, 들려오는 음악과 사람들의 재잘거림,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의 아름다움과 함께 한참을 이러고 있습니다.
소리들도 왔다가 사라져가고, 사람들도 왔다가 사라져가고,
커피의 따스함도 왔다가 사라져가고, 바람도 왔다가 사라져갑니다.
내 몸의 감각도 느껴졌다가 사라져가고 생각들도 왔다가 사라져갑니다.
나라고 이름붙인 이것도 사실은 왔다가 사라져가는 무엇이고,
이 세상 모든 것들, 모든 존재들도 모두 왔다가 사라져가는 것들 뿐입니다.
인연생 인연멸(因緣生 因緣滅)하는 이 세상 모든 현상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인연따라 생겨났다가 인연따라 사라지는 것들일 뿐입니다.
인연생 인연멸하는 현상 그 이면에 그 생멸 이면에 전혀 다른 뜻은 없습니다.
무슨 목적이 있어서 무슨 이유가 있어서 무슨 뜻이 있어서 왔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냥 우주법계의 무한한 중중무진의 법계연기의 이치에 따라 인연이 모이면 왔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져가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중요도를 부여하며 심각해하고, 집착하거나 거부하고,
나는 내 인생에 특별한 사람이라거나 나는 내 인생에 사라져버려야 할 사람이라고
내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은 내 생각, 판단일 뿐입니다.
그런 해석 그런 생각과 판단이 없으면 그저 인연따라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고
인연따라 사라져야 할 것들이 사라질 뿐입니다. 그 뿐입니다.
인연따라 생기고 인연따라 사라지는 것들은 이처럼 아무 이유도 없고
무엇보다 영원불변하는 고정된 실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무아(無我)입니다!
생기고 사라져버리고, 그냥 그것으로 끝! 이것이 존재의 실상입니다. 허무하죠?
그런데 생기고 사라져버리는 것들 여기에 주목해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인연따라 생겨나고 인연따라 사라져버리는데,
그 모든 것들이 생겨나고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을 누가 알죠?
누가 무엇이 그 사실을 보고 알고 있나요?
분명히 인연따라 생겨나고 인연따라 사라지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목격됩니다.
인연따라 생겨나고 엔연따라 사라지는 것들이야 그것들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희극이든 비극이든, 행복하든 불행하든, 그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좋고 나쁜 것들이 일어나고 사라진다는 사실을 무언가가 알고 있습니다.
공적영지(空寂靈知)! 텅~빈 가운데,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소소영령하게 아는 것이 있습니다.
바다 에서 물결이 일듯, 무수한 삶의 좋고 나쁜 내용들이 물결처럼 오고 가지만, 잠시 시선을 돌려
무상하게 생멸하는 물결처럼 생멸하는 것들이 아니라 생멸하는 것들이 왔다가 사라져가는 바탕,
왔다가 사라져가는 사실을 아는 '이것'으로 시선을 돌려보세요.
우리는 그동안 나는 괴로워 나는 행복해 등의 인연따라 왔다가 인연따라 사라져가는 내용에만
관심을 가져왔지만, 왔다가 사라져가는 그것이 뭐가 되었든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보는 그 놈을 돌이켜 보지는 못했습니다. 이를 일러 회광반조(廻光返照)라고 하죠.
왔다가 사라져가는 사실을 보는 그놈을 돌이켜 보라, 알아차리는 그놈을 알아차려라.
옛 선사스님들은 부처가 무엇이냐고 묻는 제자에게 그렇게 묻는 그놈이 부처라고 답합니다.
인생이라는 연극무대 위에 무수한 내용들이 왔다가 사라져가지만 그 내용을 좋게 바꾸기 위해
애쓰던 삶을 돌이켜, 좋은 삶과 행복을 추구하던 그 추구심을 멈추고, 추구하는 그놈을 돌이켜 보세요.
바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눈앞에서 많은 것들이 경험되죠? 많은 것들이 저절로 알아차려집니다.
저절로 알아차려지는 내용은 신경쓰지 말고, 저절로 알아차려지는 내용을 조작해서 취사간택 하지 말고,
그 순수한 알아차려짐, 일어나고 사라지는 사실이 저절로 알아차려지는 지금 여기에 있어 보세요.
이것이 진정한 당신의 본래 주인공 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것이라 할만한 뭔가가 아닙니다. 이것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니어서 의식으로는 가 닿을 수 없습니다.
이해는 이해가 되거나 이해가 안되거나 해야 하는데
이것은 이해 너머, 분별 너머, 출세간법이기에
인식의 언어나 생각으로는 있느냐 없느냐라고 결론 짓듯 말할 수 없습니다.
눈앞의 이것! 저절로 알아차려지는 이것! 이것을 눈치채셨나요?
2020.01.20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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