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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치는 삶은 내가 아니다

장백산-1 2023. 2. 22. 16:19

파도치는 삶은 내가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세상은 무엇인가? 삶은 무엇인가?
바다에 무수한 인연 따라 파도가 치듯, 삶도 일어났다 사라지는 파도에 불과하다.
온갖 존재가 연극을 하고 있는 울고 웃는 삶의 스토리가 다만 일어났다 꺼지는 ‘파도’일 뿐이다.
그렇기에 파도는 본질(本質)이 아니다. ‘바다’만이 참된 본성, 본질이다.

선(禪)에서 바다와 파도의 비유는 존재의 본성과 우주의 실상을 밝히는데 종종 사용되는 비유다. 하나의 바다가 있고, 하나의 바다표면에서는 인연 따라 수많은 파도가 친다. 날씨가 좋을 때는 파도가 잔잔하고 날씨가 거칠 때는 파도도 거세다. 그러나 파도가 잔잔하든 거세든 바다의 깊은 곳은 언제나 고요하다. 파도는 인연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바다는 언제나 한결 같이 그렇게 있을 뿐이다.

내 몸과 내 마음이 일으키는 생각, 감정, 욕망, 의식, 그리고 세상과 세상 속의 온갖 사건들은 바로 파도와 같은 것일 뿐이다. 인연 따라 파도가 치듯, 인연 따라 행복도 괴로움도 일어난다. 좋고 나쁜 온갖 느낌 감정들도 일어났다 사라지고, 사업도 성공했다가 실패한다. 존재 또한 태어났다가 죽는다. 생노병사, 성주괴공, 생주이멸이라고 하듯이 생겨난 것은 잠시도 머물지 않고 변화하고 온갖 풍랑과 우여곡절을 겪다가 인연따라 때가 되면 사라진다. 그러나 이 모든 현상들이 파도일 뿐이다

파도는 본질 실체가 아니다. 그 아래의 바다가 파도의 실체다. 그런데 우리는 이 파도를 나로 여긴다. 거센 파도가 치듯, 격열한 화나 욕망이 몰아칠 때는 그 감정에 빠져 사로잡힌다. 실패하고 성공할 때마다 울고 웃기를 반복한다. 그 모든 것이 진짜라고 여기고, ‘나’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모든 오고 가는 것들은 다만 파도일 뿐이다.

파도는 인연따라 생겼다가 인연따라 사라지는 실체가 없는 허망한 것일 뿐이다. 우리는 그동안 파도를 나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파도의 모양에 따라 울고 웃기를 반복하며 살았지만, 우리의 본성(本性), 본래면목, 진짜 나, 본마음, 성품은 파도가 아닌 바다다. 그 어떤 울고 웃을 일들이 일어나더라도 바다는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본성은 겉모습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평생 파도만 보며 울고 웃지 말고 배경의 바다를 확인하는 것, 그것이 바로 마음공부요 선(禪)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라고 여기는 모든 것은 파도일 뿐이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파도일 뿐이다. 생각과 분별심 너머에서 곧장 이 모든 것이 파도가 아닌 바다였음을 다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법상 합장> 2016.03.11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