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육식(六識)의 구분 – 감각지형도
뇌에는 각각의 감각 일어나는 위치 따로 존재
혀의 위치에 따라 단맛·쓴맛 등 맛을 다르게 인지하듯
각각 감각기관서 발생하는 뇌활성의 위치가 서로 달라
인공지능에 뇌활성 패턴 학습…‘마음으로 글쓰기’ 가능
불교는 일체의 존재, 즉 일체법(一切法)을 정신·물질[名色, nāma-rūpa]로 본다. 물질[色, rūpa]은 ‘변하는 특징을 가진 것’이고 정신[名, nāma]은 ‘기우는 특징을 가진 것’이다. (‘상윳따니까야 주석서(SA.ⅱ.16)’) 정신은 마음이며, 초기경전에는 알음알이[識 viññāṇa]라는 용어로 나타난다.
붓다는 여러 초기경에서 ‘식별한다고 해서 알음알이라 한다’고 알음알이를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눈의 알음알이[眼識], 귀의 알음알이[耳識], 코의 알음알이[鼻識], 혀의 알음알이[舌識], 몸의 알음알이[身識], 마노(mano 意)의 알음알이[意識]가 있다’고 여섯 가지 알음알이[六識]를 설한다. 육식(六識)이 마음이라는 것이다.
대상을 아는 것이 마음이기에 마음은 대상 없이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상윳따니까야 분석경(S12:2)’에서 붓다는 “느낌(vedanā), 인식(saññā), 의도(cetanā), 감각접촉(phassa), 주의를 기울임(manasikāra)-이를 일러 정신이라 한다”라고 설한다. 정신[識]은 느낌[受], 인식[想], 의도[思, 行]로 이루어지며, 대상에 주의를 기울여 접촉함으로써 생긴다는 것이다.
마음의 생성에 중요한 ‘대상에 주의를 기울임(manasikāra)’에 주목해보자. 지난 연재에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인식되지 않음을 ‘The Monkey Business Illusion (youtu.be/IGQmdoK_ZfY)’을 예로 보았다. 다른 데 정신을 팔고 있으면 커다란 흑곰이 지나가다가 멈춰 서서 정면을 보고 가슴을 치고 다시 지나가도 우리는 흑곰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그만큼 마음이 일어나려면 ‘대상에 주의를 기울임’은 필수적이다. 그래서 상좌부불교는 ‘manasikāra’를 모든 마음과 반드시 함께 하는 마음부수(cetasika, 心所)로 분류한다. 마음부수는 마음이 일어나게 하는 도우미들이다.
‘대상에 주의를 기울임’을 뇌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뇌의 무엇이 어디로 주의를 기울일까? 뇌는 두개골 속 캄캄한 동굴에 갇혀 있다. 뇌에 눈이 있어 형색이라는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랴, 귀가 있어 소리에 주의를 기울이랴? 눈[眼]·귀[耳]·코[鼻]·혀[舌]·몸[피부 身]은 뇌와 멀리 떨어진 몸의 바깥에 있다. 그들이 전해주는 색·성·향·미·촉에 대한 신호가 뇌에 도달할 뿐이다. 그 신호는 0.1V짜리 활동전위(action potential)들이다. 뇌에 도달한 활동전위들은 각 부분에 뇌활성을 불러일으키고 뇌는 그 뇌활성에 주의를 기울인다.
뇌가 주의를 기울인다고 했지만, 주의를 기울이는 실체는 사실 감각대상을 선별하는 기능인 의근(意根)이다. 한편,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그 뇌활성을 ‘감각한다’ 혹은 ‘포섭한다’는 의미이다.
의근(意根)은 뇌활성을 감각하고, 의근에 감각되면 그 뇌활성은 의식(意識)에 들어온다. 의근에 포섭되는 뇌활성은 무엇일까? 눈에서부터 시작한 뇌활성이면 그것은 곧 안식이고, 귀에서부터 시작된 뇌활성이면 이식이다. 안식, 이식 등 전오식을 의근이 감각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눈, 귀, 코, 혀, 몸 등 전오근은 자신의 영역만을 경험하지만[알음알이하지만], 마노[mano 意根]가 그들 각자의 영역과 대상을 모두 경험한다고 하였다.(‘맛지마니까야 교리문답의 긴 경(MN43)’). 마노가 시각, 청각 등의 전오식을 다시 포섭하여 그 의미들을 통합한다는 뜻이다. 또한, 17찰나설에서 전오식은 단 1심찰나[1/75초] 동안만 일어났다 사라진다고 한다. 전오식이라는 허깨비 하나가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격이다. 그것을 의근이 포섭하여 완전한 의식을 만든다.
다시 정리해보자. 마음[정신]은 대상으로 기울여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인데, 뇌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의근이 뇌활성을 포섭하여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알음알이]이다. 의근에 포섭되면 어떻게 하여 의식이 되는지는 현대 뇌과학도 해결하지 못하는 ‘어려운 문제’이다. 그런데, 뇌는 어떻게 ‘어떤 뇌활성은 눈의 알음알이이고, 어떤 뇌활성은 귀의 알음알이’라고 분별할까?
지난 두 연재에서 우리는 눈의 알음알이와 귀의 알음알이를 살펴보았다. 눈의 알음알이는 후두엽의 1차시각피질에서 시작하는 뇌활성이고, 귀의 알음알이는 측두엽의 1차청각피질에서 시작하는 뇌활성이다. 이처럼 안식과 이식의 뇌활성은 일어나는 위치가 다르다. 뇌는 이 위치적 상이함을 정보로 하여 각 뇌활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분별한다. 뇌에는 각각의 감각이 일어나는 위치가 따로 배정되어 있다.
이를 뇌의 감각지형도(感覺地形圖)라 한다. 각각의 감각기관에도 감각지형도가 그려져 있다.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감각지형도는 혀[舌根]의 맛지도이다. 혀의 앞부분에는 단맛, 뒷부분에는 쓴맛, 옆쪽에는 짠맛과 신맛, 가운데는 감칠맛이 감각된다. 이러한 혀의 맛지도는 그대로 서로의 위치 관계를 유지하면서 대뇌의 1차미각피질로 전달된다. 따라서 대뇌 미각피질 내의 특정부위의 뇌활성은 특정한 맛을 대변한다. 의근이 그 위치의 뇌활성에 주의를 기울여 포섭하면 나는 그 맛을 느낀다고 알게 되는 것이다.
형색에 대한 지형도는 눈의 망막에, 소리의 높낮이는 귀의 달팽이관에 있는 코르티기관의 바닥막에, 냄새는 후각망울에 그려진다. 맛지도는 혀에 그려진다고 했다. 몸[피부]은 몸의 각 부위 자체가 몸감각지형도이다. 피부의 각 부분이 그대로 뇌의 1차몸감각피질과 연결되어 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피부의 감각수용체 하나하나가 뇌의 1차몸감각피질인 중심고랑뒤이랑에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입술, 손, 엄지손가락과 같이 민감한 피부에는 감각수용체가 많기에 뇌에서 상대적으로 넓은 위치를 차지한다. 피부 감촉이 뇌에서 차지하는 면적에 비례하여 만들어본 상상의 인간을 감각축소인간이라 한다. [참고그림]
이처럼 뇌의 각 부위는 특별한 정보를 대변한다. 2021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과학자들은 이러한 원리를 이용하여 마음으로 글을 쓰는 장치를 개발하였다.
과학자들은 사지가 마비되어 손을 전혀 쓸 수 없는 피험자에게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칩(chip)을 왼쪽 뇌에 두 개 심었다. 각 칩에는 100개의 작은 전극이 있어 손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신경세포들의 신호를 포착하여 인공지능 컴퓨터에 전달한다. 피험자에게 손으로 쓰듯 a, b, c, d 등 알파벳을 마음속으로 쓰게 하고 인공지능에게 그때의 뇌활성의 패턴을 학습시켰다. 어떤 뇌활성이 a이고, 어떤 뇌활성이 b인지 등을 학습시킨 것이다. 학습결과는 놀라웠다. 인공지능은 분당 90자의 속도로 피험자의 ‘마음으로 글쓰기[mindwriting]’를 컴퓨터 화면에 표시하였다. [참고그림]
문일수 동국대 의대 해부학 교수 moonis@dongguk.ac.kr
[1678호 / 2023년 4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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