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행운은 언제나 내 것이 아니다

장백산-1 2023. 4. 9. 00:40

나비를 따라가면 - 정일남

 

행운은 언제나 내 것이 아니다

흔히 행운이라 생각하는 것도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허망
잡아당기면 갈기갈기 찢어져
내가 거미줄 걸렸음 자각해야

 

행운이 내게 오기를 바라지 않고 살았다
만약 행운이 안기면 졸도하고 말 거다

나비가 내 집에 들어왔다
꽃을 마다하고 나를 찾아오다니
반갑기는 하나 줄 것이 없었다
잠시 머물다 지친 몸으로
떠나기에 나비 뒤를 따라
그가 가는 숲속을 따라갔다
불행하게도 나비는 거미줄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생이란 언젠간 몸을 바쳐야 하지만
차마 참상을 볼 수 없어 돌아서고 말았다

저것이 어찌 나비만의 일인가
나도 평생 그물망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하고
사각(四角)의 방에 갇혀 사느니
(‘시와 소금’ 38호, 2021년 여름호)

 

행운이 저절로 오기를 바라지 말고 살자. 시인은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만약 어느 날 문득 “행운이 안기면 졸도하고 말 거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마음 한켠에 행운을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예를 들면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되어 몇 십억 원을 순식간에 얻는 꿈을 은근히 꾸었던 것은 아닐까? 다른 행운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 나와 함께 ‘21세기 전망’ 동인으로 초창기에 잠깐 활동하다 절필한 박인택 시인의 시 중에 “삼촌의 꿈은 마도로스 (…)/ 나의 꿈은 시인, 김수영 문학상을 타먹는 것”이라는 구절이 얼핏 생각나는데, ‘김수영 문학상’을 타는 것도 로또복권 같은 행운일까?

로또복권 같은 행운 대신 ‘김수영 문학상’ 같은 나비가 시인의 집에 들어왔다. 그것이야말로 행운이라고 생각한 시인은 나비에게 줄 것을 찾았지만, 아무리 보아도 방 안에서 나비에게 줄 만한 것은 찾을 수 없었다. 나비는 이 방에서는 별 볼일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밖으로 나간다. 시인은 굴러들어온 행운이지만, 움켜쥘 수도 없는 행운인 나비를 따라나선다. 나비가 숲속으로 가자 시인도 숲속으로 따라간다. 그런데 그만 나비는 거미줄에 걸려버렸다. 그 다음 일을 차마 볼 수가 없어 시인은 발길을 돌린다.

거미줄에 걸린 나비는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할까? 어떻게든 거미줄을 끊어서 나비를 구출해야 할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거미줄에는 끈끈한 풀이 묻어 있어, 나비를 잡아당기면 오히려 날개가 찢어지기 십상이다.

나비가 행운의 상징이라면, 행운이란 놈도 그렇지 않을까? 행운이라 생각했던 로또복권에 당첨되었던 사람들이 오히려 패가망신했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다. 그것은 로또복권이라는 행운이 끈끈한 거미줄에 걸렸는데, 그것을 내 것이라고 잡아당겼기 때문이다. 행운이라 생각했던 문학상 같은 것도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허망한 것, 그것을 내 것이라고 잡아당겼다가는 ‘상의 날개’도 찢어지고 말 것이다.

돌아오면서 시인은 “저것이 어찌 나비만의 일인가/ 나도 평생 그물망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하고/ 사각(四角)의 방에 갇혀 사느니”라고 생각한다. 그물망과 ‘사각의 방’이 거미줄의 다른 이름이라면, 우리 또한 거미줄에 걸려 있는 것이다. 그물망은 윤회의 사슬이요, ‘사각의 방’은 오온(五蘊)이다.

나비의 한살이를 생각해볼 때,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이야말로 엄청난 행운이 아닐까? 땅 속에 묻혀 있던 굼벵이나, 나뭇잎을 갉아먹으며 겨우 기어가던 벌레들이 어느 날 대폭발하여 날개 달린 천사(天使)가 된 셈이 아닌가?

프랑시스 퐁주는 나비의 탄생 장면을 “줄기에서 정성껏 만들어진 당분이 잘 씻기지 않은 컵 모양의 꽃의 바닥까지 솟구쳐오를 때, 땅에서는 대단한 역작이 이루어져 나비가 갑작스레 날아오른다”(‘나비’)라고 묘사하는데, 애벌레 입장에서는 나비야말로 일생일대의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행운을 경계하자. 행운은 언제나 내 것이 아니다. 내 것이라며 행운이라는 나비의 날개를 잡아당겼다가는 날개는 갈기갈기 찢어지고 말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거미줄에 걸려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선사들은 입구가 좁은 병 속의 새를 어떻게 꺼냈을까? 나는 끈끈한 거미줄에 걸린 나비를 어떻게 구출할 것인가?

동명 스님 시인 dongmyong@hanmail.net

[1675호 / 2023년 4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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