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헛된 꿈(幻夢)

장백산-1 2023. 5. 1. 16:55

헛된 꿈(幻夢)

 

어떻게 살 것인지 묻는 희망가

간결함과 군더더기 없음이
선승으로서 태율 선사 매력
항상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열심히 수행 정진하라는 뜻

 

헛된 꿈 풍진세상이여
크게 깨우친 이 누군가.
오경에 봄잠에서 깨보니
물물이 모두 순진하다.
幻夢風塵界(환몽풍진계)
誰能大覺人(수능대각인)
五更春睡罷(오경춘수파)
物物摠天眞(물물총천진)
-월파태율(月波兌律, 1695~1775?)

 

1980년대 초, 문득, 학창(대학) 시절에 불렀던 ‘희망가’가 생각난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같도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담소화락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몰하랴/ 세상만사를 잊었으면/ 네 맘이 족할까”(‘희망가’ 전문)

최루탄에 눈물 몇 컵 떨군 날이면, 우리들은 꼭 막걸리집에 모여 이 노래를 떼창으로 불렀다. 어쩔 땐 필자 혼자 막걸리와 소주에 취해 비틀거리며 비장한 마음으로 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땐 왜 그리도 세상이 비통하고 허무하던지, 왜 그리도 내 청춘의 EXIT(탈출구)가 보이지 않던지, 내 삶의 방향은 어디고 나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공부는 해 뭐할 건지, 죽어야 할지 계속 살아야 할지, 한쪽에서는 세상을 위해 분신(焚身)하고 또 한쪽에선 감옥에 갇히고, 쫓겨야 하는지, 나는 이대로 편하게 밥 먹고 술 먹고 노래 부르고 연애하고 살아도 되는지…, 우골탑(牛骨塔)이 최루탑(催淚塔)이 되고, 밤이면 대자보를 써서 도둑처럼 붙이고, 교수님들은 눈에 불을 켜고 내 뒤를 밟고, 방학이면 담당교수가 필자 몰래 시골 고향집 아버지를 찾아가 근황을 묻고 가고, 아버지는 거기에 실망해 망연자실하고, 그 아버지는 흙이 된 지 오래지만 아직도 그때 그 시절만 생각하면 아버지께 죄송하고, 눈물도 솟구친다.

‘희망가’는 어쩌면 태율선사의 이 선시를 바탕으로 써졌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일제 탄압 시대, 어떤 눈 밝고 귀 맑은 선구자가 이 선시를 읽고 가사를 짓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여기서 ‘대각인(大覺人, 크게 깨우친 이)’은 시대의 선구자이자, 세상을 바로 잡는데 뜻을 둔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태율선사는 이내 직관한다, (실상은) 그 모든 것이 ‘헛된 꿈’이요 한바탕 ‘봄잠[춘몽(春夢)]’이라고. ‘세상 모든 것이 깨끗하고 순진하다[물물총천진(物物摠天眞)]’고. 그러고 보면 필자의 젊은 시절도 한바탕 ‘봄잠’이었다. 그리고 그 ‘봄잠’을 아직도 계속 자고 있다.

얘기를 잠시 되돌려 보자. 사실 ‘희망가’는 일제 식민치하의 암울한 사회를 직시한 비탄과 절망의 노래지만, 역으로 세속을 떠난 진짜 행복과 희망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암시하는 ‘희망’의 노래이기도 하다. 가사가 비탄적이고 절망적이고 허무한 내용이지만, 제목을 ‘희망가’라고 붙인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월파태율 선사 역시 ‘헛되고 티끌 같은 세상[환몽풍진계(幻夢風塵界)]’이지만, 그래도 세상은 ‘깨끗하고 순수한 것[물물총천진(物物摠天眞)]’으로 가득 찼으니,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열심히 수행 정진하라는 뜻으로 이 선시를 지었으리라 여긴다. 이 시의 원제목이 ‘춘면각(春眠覺)’인데서 태율선사의 속뜻을 알 수 있다.


덧붙이는 말. 월파태율 선사의 선시에는 특징이 있다. 절대로 고사(古事)를 차용하지 않고, 함축적인 방식으로 시상을 직접 전개한다. 또한 논리적 사유와 직관보단 군더더기 없는 간결함을 추구했다. 이 선시도 마찬가지다. ‘헛된 꿈 풍진세상이여[환몽풍진계(幻夢風塵界)]’라며, 바로 (간결하게) 치고 들어갔다. 그리고 ‘물물이 모두 순진하다[물물총천진(物物摠天眞)]’고 바로 치고 나왔다. 이 간결함과 군더더기 없음이 선승으로서 태율선사의 매력이다. 그리고 우리 후학들은 그 간결함과 군더더기 없음으로 대장부의 길을 더 잘 가고 있다. “불도(佛道)야말로 대장부의 할 일”이라고 외치던 태율선사의 말씀처럼. 참, 태율선사의 생몰 연대는 ‘1695~?’, 또는 ‘1693~1775’ 두 가지 설이 있다. 그러나 전자로 더 많이 통한다.

승한 스님 빠리사선원장 omubuddha@hanmail.net

[1678호 / 2023년 4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