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없고 너도 없고 이 세상은 인연따라 작용되고 있을 뿐이다.
불교 가르침의 핵심은 연기법(緣起法)과 무아(無我)다.
세상 모든 것들, 삼라만상은 전부가 다 인(원인)과 연(조건)이 화합하여 생겨나고, 인연이 다하면 사라질 뿐.
생겨나고 사라지는 거기에 어떤 고정된 실체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라고 여기는 것 또한 인연 따라 생겨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질 뿐, 고정된 실체적인 자아를
찾아볼 수 없어서 무아다.
사람들은 저 바깥의 물질세계나 자연계는 인연 따라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실체도 없고, 영혼도 없는 것이라고
여기지만, 사람만은 그것들과는 다르다고 확신한다. 만물의 영장이고, 마음이 있고 생각이 있고 의지가 있어서
사람만은 다른 것들과 달리 특별하다고 여긴다. 사람은 동물, 자연, 식물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느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연기법과 무아의 가르침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설하고 있다.
'나'라는 고정된 실체는 없다. 선불교에서도 참나, 자성, 본래면목을 설하지만, 그것은 다 방편일 뿐 본래무일물이며,
그런 방편의 말들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라고 설한다.
이 몸과 마음이 저 바깥의 나무, 건물, 바람, 구름, 태양과 다를 것이 없다. 다르다고 여기는 한 생각, 저 바깥에 있는
모든 것들과 다른 '나'가 있다고 여기는 생각, 이 몸과 마음이 나라고 여기는 생각이 바로 아상이고 에고다.
이에 대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오온개공, 오온무아를 설하셨다. 그런 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엇을 붙잡아 집착할 것인가? 나를 확장하고, 나를 내세우고, 내가 잘나고, 내가 대단해지며, 능력있어지고,
돈도 많이 벌고, 칭찬 받는 그런 허망한 일들을 꾸며내는 것만이 이 한 생을 가장 잘 사는 일이라고 자위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 허망해지지 않는가?
나도 없고 너도 없고, 그저 이렇게 인연따라 세상은 작동되고 있을 뿐이다. 일어나고 사라질 뿐이다. 마치 꿈처럼.
다만 사람이 생각, 의식, 알음알이, 분별심을 일으켜, 나도 있고 너도 있고, 잘난 나를 만들고, 욕심을 채우는
나를 만드는 등 스스로 나와 세상을 의식으로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다.
바로 그러한 생각으로 만드는 허망한 착각의 세계를 진짜라고 여기기 때문에, 이 세상이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인연따라 오고 가는 모든 것들을 그저 있는 그대로 오고 가도록 허용해 주라.
거기에 내가 시비를 걸려고 애쓰지 말라. 그런 나는 없으니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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