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오직 모를 뿐이다.

장백산-1 2023. 12. 6. 14:28

오직 모를 뿐이다.


괴로운 일이 닥치면, 그 괴로운 일에 대해 ‘괴롭다’고 해석하지 말고, 그저 일어나는 일 그대로 일어나도록 허용해 주고, 그 일 속으로 뛰어들어 그 일을 있는 그대로 경험해 주라. 돈이 없으면, ‘돈이 없어 괴롭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저 그 돈 없는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돈 없는 상황을 마땅히 살아주기를 선택하라는 말이다.

그렇게 했을 때, 돈이 없는 그 상황으로 인해 괴롭고 가난하다는 생각 때문에 또 괴로워하는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게 되고, 그렇게 받아들였기에 돈이 없는 그 상황이 나를 괴롭히지 않게 된다. 돈이 없는 상황을 받아들일 때 돈이 없는 상황은 더욱 빠르게 지나간다. 돈이 없어 괴로운 상황이 소멸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해야할 것도 없으며, 그저 분별하던 것을 분별하지 않기만 하면 될 뿐이다. 이것이 무위법이며, 중도를 실천하는 길이다. 이처럼 삶 속의 모든 괴로운 일을 만날 때, 그것을 분별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라. 분별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곧 그 상황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불이법의 실천이다.

사실 어떤 상황이 나에게 정말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받아들일 때 분별없이 받아들이라는 말은 곧 ‘모를 뿐’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쉽게 분별하여 쉽게 ‘안다’고 하지만 사실은 정말 아는 것이 아니라, 분별해서 아는 것일 뿐, 진실로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십팔계(육근+ 육경+ 육식)가 화합하여 ‘안다’는 착각, 즉 육식을 일으킨 것일 뿐이다. 그러니 참된 진실은 ‘모른다’는 것이다.

‘모를 뿐’이라고 할 때, 육식(六識)이라는 허망한 분별의식의 작용이 멈춘다. 육식이라는 의식이 자신을 주인으로 내세워 ‘나’, ‘내 생각’, ‘내가 안다’고 여기지만, ‘모를 뿐’이라고 하면, 곧장 분별의식의 작용이 멈추고, 중도가 실천되어진다. 세계 4대 생불이라고 추앙받으며 해외 포교에 매진하셨던 숭산 큰스님께서 그렇게 ‘오직 모를 뿐’이라는 화두를 설하셨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현대적인, 선(禪)적인 중도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