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성취하고 도달해야 할 열반의 세계가 있다는 허망한 생각이 사라지는 것이 참된 열반이다.

장백산-1 2024. 3. 14. 16:57

성취하고 도달해야 할 열반의 세계가 있다는 허망한 생각이 사라지는 것이 참된 열반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방편을 사용해서 중생의 괴로움을 해결하시고자 사성제를 설하셨다. 사성제에서는 괴로움이 완전히 소멸된 경지를 멸성제라고 하여 그 경지를 해탈 혹은 열반이라고 표현했다. 멸성제인 해탈, 열반이라라는 의미가 묶여있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 불타는 불길을 꺼버린 것, 괴로움의 원인을 소멸시킨 것이란 뜻이다.

해탈, 열반, 멸성제는 이처럼, 허망하게 묶여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게 하고, 망상으로 일으킨 번뇌의 불길을 꺼버리며, 괴로움의 원인을 소멸하는 것일 뿐이지, 또 다른 해탈의 세계, 열반의 차원, 멸성제라는 또 다른 청정국토나 청정한 마음의 세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해탈, 열반, 멸성제은 별도로 따로 있지 않다. 그저 묶여있는 상태에서 풀려나는 것일 뿐이고, 번뇌의 불길을 꺼버린 것일 뿐이다.
괴로움이 없는 것이 곧 해탈, 열반, 멸성제일 뿐이지, 따로 청정한 열반의 세계를 성취한 것은 아니란 뜻이다. 도달해야 할 지극한 열반의 세계가 따로 있다는 생각이 사라지는 것이 곧 참된 열반이다.

해탈 하고 나면 따로 얻은 해탈이 없다. 그저 본래 있던 그대로일 뿐. 다만 괴로운 문제가 사라졌을 뿐이다. 괴로움이 사라졌을 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깨달음, 해탈, 열반, 견성성불에 대한 신비주의적이고, 비일상적인 어떤 상태를 상정하고 꿈꾼다. 그러나 선사 스님들은 그저 평상심일 뿐이라고 하지 않는가. 깨달음은 세수하다가 코 만지는 것만큼 쉽다고 하지 않는가.

불행한 사람이 어떻게 하면 행복해 질 수 있는 걸까? 불행이 사라지면 그 자리가 곧 행복이지, 따로 찾을 행복은 없다. 병에 걸려있던 사람은 병이 사라지면 그것이 곧 건강인 것과 같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있는 이대로가 바로 그것이다. 번뇌가 없을 때, 생각을 일으키지 않을 때, 문제가 없을 때, 괴로움이 없을 때, 추구심이 없을 때,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무엇이 있는가? 지금 여기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그저 할 일 없이 살아갈 뿐이다.

해탈 열반을 하면 깨닫고 나면, 범부들에게 안 보였던 세계가 새롭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미래를 환히 내다보는 것도 아니며, 늘 생각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아 고요함 속에서만 사는 것도 아니다. 째닫고 나면 지금처럼 번뇌도 있고, 망상도 있지만, 거기에 사로잡히지 않을 뿐.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