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이 마음이 만드는 세상은 거짓이다.
인간이라는 종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경험을 한다. 그리고 경험한 것들은 시비 분별도 없고, 다만 경험 그 자체로써 받아들여진다. 세상에 처음 태어난 사람들에게 모든 경험은 좋고 싫은 것도 아니고, 옳고 그른 것도 아니다. 아무 시비나 분별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느끼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린 아이도 조금씩 경험에 시비와 분별을 붙이게 된다. 그런 시비 분별은 곧 신념을 만들어 낸다. 경험을 통해 신념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신념은 또 다른 경험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경험은 또 다시 그 신념을 뒷받침해주고 증명해 주게 된다. 그럴수록 그 신념은 보다 확고해지고 그 신념에 점점 더 집착하게 된다. 그런 방법으로 인간들은 온갖 신념을 늘려나간다. 신념들이 늘어갈수록 혹자는 신념을 지식이라고도 하고, 가치관이라고도 함으로써 신념이 올바른 것인 양 착각하게 만들고 신념에 집착하게 만든다.
요즘 마음공부와 명상이 사람들의 키워드가 되면서부터 온갖 종류의 명상 프로그램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어떤 곳에서는 바로 이 점을 악용하고 있기도 하다. 신념이 세상을 만들어낸다는 사실. 바로 이 하나의 사실만을 가지고 그 신념을 바꾸도록 온갖 방법으로 이끈다. 신념이 바뀌면 경험이 바뀐다는 사실, 믿는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 그 하나의 사실을 가지고 진리를 운운하면서 신념 바꾸는 프로그램을 많은 돈을 내고 참여하도록 독촉한다.
여기에는 크게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신념이 만들어내는 경험은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마음이 세상을 만들어낸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렇게 신념으로 마음으로 만들어진 세상은 가짜라고 하셨다. 신념으로 마음으로 만들어진 세상은 꿈이고 환상이며 신기루이고, 공空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 이전의 자리를 깨닫도록 이끄시지, 마음을 가지고 시비 분별을 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신념을 또 다른 신념으로 바꾸거나 덮어버림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지 않으시고, 신념 그 자체를 비워버릴 수 있도록 이끄셨다. 그 어떤 경험이든 그 경험에 신념을 부여하게 되면 그 때부터 그 경험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진 거짓의 경험이 되고 만다. 신념을 가지면 이 모든 진리의 경험이 그로 인해 삐뚤어지고 왜곡된다.
물론 부정적인 신념을 긍정적인 신념으로 바꾸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신념을 바꾸는 것이 본질적인 것은 아니란 말이다. 그런 수련을 통해 본질을 깨닫게 될 수는 없다. 생각을 다른 생각으로 덮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생각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것이다. 다만 생각을, 신념을 놓아버렸을 때만 신념 이전의 깊은 본질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부정과 긍정이라는 것도 내 스스로 만들어 낸 신념일 뿐이다. 과연 절대적 긍정과 절대적 부정이 있기나 한가. 그것도 내 판단 속에서의 긍정과 부정이다.
바람이 불고, 새가 하늘을 날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 내 앞에 펼쳐지는 일체의 모든 경험은 분별하지 않고, 신념으로 투영하지 않으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가 있는 그대로의 진리의 경험이 된다. 이미 이 우주 법계 삼라만상 그 자체는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불성이며 신성이고, 그대로 온전한 부처님의 숨결이요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항상 온전한 진리는 지금 여기 우리 앞에 늘 그렇게 나투고 있다. 다만 분별하지 않고, 그 어떤 치우친 신념이나 고집 없이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만 하면 지금 이 자리에서 진리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진리를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분별하고 나누며 자신 안에 신념이라는 틀을 만들기 때문인 것이다. 분별하지 말고 신념을 덮씌우지 말고 다만 모든 분별을 멈추고(止) 바라보기만(觀) 하면 본래의 평화가 찾아온다. 신념이나 분별 이전의 딱 끊어진 본래의 참됨과 마주할 수 있다.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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