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제법(諸法)과 승의제(勝義諦)

장백산-1 2024. 4. 29. 21:54

제법(諸法)과 승의제(勝義諦)

 
승의제는 제법 속하지 않는 경계

욕계·색계·무색계가 모두 제법, 중생 법이며 업에 의해 조작
승의제는 부처님 경계로 심오, 유식학 측면에서는 원성실성

 

 

지금 우리는 ‘해심밀경’의 내용들 중에서 요품에 해당하는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법용보살에 이어 이번에는 선청정혜보살이 부처님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기이합니다. 세존의 말씀대로 승의제상(勝義諦相)은 매우 세밀하고 깊어 제법의 성상(性相)과 같고 다름을 뛰어넘었으므로 통달하기 어렵습니다.”

 

앞의 보살들과 마찬가지로 선청정혜보살 역시 승의제상의 심심미묘성을 강조한다. 승의제상은 제법과의 관계에 있어서 같고 다름을 벗어나 있기 때문에 심심미묘하다는 것이다. 제법(諸法)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세상의 모든 존재이다. 오온, 십이처, 십팔계와 욕계, 색계, 무색계가 모두 제법(諸法에 속한다. 제법은 중생계의 법이고, 인연에 의해 생멸되 법이며, 업에 의해 조작된 법이다. 유식학적 측면에서는 오식, 육식, 칠식, 팔식의 의타기성(依他)起性)과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이다.

이에 반해 승의제상(勝義諦相)은 제법에 속하지 않으니 곧 부처님의 경계이다. 대열반, 제일의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능엄, 진여, 묘각 등 대신 이름한다. 유식학적 측면에서는 원성실성이다.

본문에 보면 성(性)과 상(相)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여기서 성이란 성질, 상이란 모습을 의미하는 것으로 제법과 승의제상에는 공히 성과 상을 갖추고 있기에 이런 용어가 설해진다.

계속해서 이와 관련한 선청정혜보살의 말을 들어 보자.

“세존이시여! 제가 일찍이 한 곳에서 여러 보살과 함께 뛰어난 분별과 이해로써 보살의 지위에 오르기 위한 수행을 닦을 때였습니다. 한 무리의 보살들이 ‘승의제상은 제행의 상과는 전혀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보살의 무리가 이 말을 듣고 ‘승의제상은 제행의 상과는 다르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나머지 보살들은 누구의 말이 진실이며 누구의 말이 헛된 말일까 하며 혼란한 모습들을 보였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이 모든 선남자는 참으로 어리석고 완고하구나. 승의제는 미세하고 심오하여 제행과 같고 다름을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구나’ 하였습니다.”

제행(諸行)은 제법과 같은 용어이다. 불교에서는 세상을 연기(緣起)의 소작으로 본다. 연기는 인연생기(因緣生起)의 줄임말로 원인과 조건에 의지해 일어난다는 의미이다. 불교에서 볼 때 세상의 어느 법도 스스로 일어나거나 홀로 일어나지 못한다. 무엇이건 생겨나려면 반드시 다른 것들에 의지해서만이 가능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세상 모든 것은 단일체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모습은 여러 개가 모인 하나의 모습이다. 마치 한 대의 자동차가 여러 개의 부속품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세상 모든 존재는 여러 개가 결합이 되어 나타난 복합체이다. 이처럼 제법은 연기에 의한 결합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결합의 의미를 지닌 행(行)으로 표현하여 제행이라고 한 것이다. 근본교설인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의 삼법인에서 제법, 제행, 일체는 그 의미에 별 차이가 없다. 교리적으로 행은 빨리어 상카라(sankhara)를 번역한 용어로 정확히 풀이하기는 어려우나 ‘결합하여 형성된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각설하고 본문에서 선청정혜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리고자 하는 내용은 진리에 해당하는 승의제상과 중생에 해당하는 제행은 서로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에 관해 밝혀달라는 것이다. 유식학적으로 좁혀 설명한다면 승의제상에 속하는 원성실성의 마음과 제행에 속하는 의타기성, 변계소집성의 마음은 서로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선청정혜보살은 왜 이런 승의제와 제행과의 동일성과 차별성까지 의문을 일으켜 부처님으로부터 답을 구하려는 것일까?

널리 알려졌다시피 불교 심리학인 유식의 목적은 전식득지(轉識得智)에 있다. 전식득지는 중생의 허망한 분별망상을 수행을 통해 전환시켜 부처의 지혜에 들게 함이다. 따라서 이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제행에 해당하는 식(識)과 승의제상에 해당하는 지(智)의 관계를 밝혀야만 한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726호 / 2024년 4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