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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살은 청정한 불국토를 수행합니까?

장백산-1 2024. 6. 7. 19:44

어떻게 보살은 청정한 불국토를 수행합니까?


유마경에 "어떻게 보살은 청정한 불국토를 수행합니까?" 라는 질문이 등장합니다. 마음을 수행한다는 말은 들어 보았지만, 청정한 불국토를 수행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유마경에 "심청정국토청정(心淸淨國土淸淨)'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듯, 마음이 청정한 것이 곧 국토가 청정한 것임을 설하고 있습니다. 즉 마음이 곧 국토입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이 몸이 나이거나, 느낌, 생각, 의지, 의식이 나인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여기의 삶 자체가 곧 나이며, 이 국토가 그대로 나입니다. 나와 내가 사는 곳과 내가 사는 삶은 따로 따로 떼어내 생각할 수 없는 불이법, 둘이 아닌 것입니다.

화엄경에서도 융삼세간(融三世間)이라 하여, 중생세간과 지정각세간, 기세간이 원융무애함을 설하고 있습니다. 중생세간은 중생의 세계, 지정각세간은 부처님의 세계라면, 기세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국토를 말합니다.

사람들은 '나'와 '세상'을 둘로 나누고, 나와 너를 둘로 나누고, 정신과 물질을 둘로 나누는 등 끊임없이 둘로 나누는 분별만을 습관적으로 하면서 살아 왔기 때문에, 유마경이나 화엄경에서 말하는 이런 말을 들으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분별 너머의 진실을 설하고 있습니다.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며, 마음과 국토가 둘이 아니며, 나와 세상이 둘이 아니고, 나와 너가 둘이 아니고, 정신과 물질이 둘이 아닙니다. '보는 것' 즉 주관만 나인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 즉 객관도 사실은 둘로 나눌 수 없습니다. 십이처의 가르침에서처럼, 눈이 있으므로 색이 있고, 색이 있으므로 눈이 있다는 연기의 가르침은 곧 '보는 눈'과 '보이는 대상'이 둘이 아닌 하나임을 설하고 있습니다. 보는 것(주관)만 내가 아니라, 보이는 것(객관)을 떠나 따로 보는 것이 없으니,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이 둘이 아닙니다.

화창한 봄, 올해 새로 돋아난 나뭇잎들이 아침 햇살과 바람을 타고 살랑거리며 손짓하네요. 이것이 그대로 나입니다. 저 대지와 국토와 하늘과 바람과 구름이, 꽃 한 송이가 그대로 나입니다. 이렇게 둘이 아닌 불이법의 실상으로 바라볼 때, 유마경의 말씀처럼 '중생의 땅이 곧 보살의 아름답고 깨끗한 불국토'가 됩니다.


글쓴이 : 법상